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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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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BY 프리 2003-04-12

★24



나이트의 후끈한 열기와 달리 바깥의 공기는 너무 시원했다. 목련은 용하를 향해서 돌아보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술때문인지 조금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시원해. 상쾌해요 그쵸 선배?"

"목련아, 미안하다. 왠지 나때문에 분위기를 망친거같아."

"무슨소리에요 그게, 괜챦아요 보라도 다 이해했쟎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까. 고맙다."


낮에만 다녀서 잘 몰랐는데 밤거리는 참 화려했다. 색색깔의 네온사인들이 서로 자신이 더 낫다며
뽑내기 대회라도 하는듯이 번쩍거렸고, 술에 취한 수많은 젊음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목련과 용하는 그거리 한복판을 지나서 나왔다.


"선배, 많이 속상했나봐요. 아직도 희선선배를 잊지 못한거 같아요"

"흠.아냐 잊었어 다---- 다 잊어버렸어."

"피,그짓말."

"아냐 임마! 정말 다 잊었다니까. 차...내말을 못믿는구나"


말과달리 그의 얼굴,그의 표정위엔 그렇지 않은듯한 느낌이 퍼져있었다. 무엇인가를 떠올리는듯한 선배의 표정에서 목련은 그걸 읽을수있었다.


"하나 물어도 돼요? 왜 그렇게 좋아하면서 보낸거에요? 좋아하면 잡으면 되쟎아요"

"그래. 그러면 좋을텐데. 그녀도 나도 불행히도 바보가 아니지 뭐야. 우린 바보가 되기엔 모자란 사람들인가봐"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여만 하나요? 그래야만 사랑을 할수있는거에요?"


"훗. 이렇게 순수할데가! 이봐요 우물안의 공주님!! 세상은 말이죠. 이상으론 살수없답니다. 눈을감고 귀를 막지않고 사는 이상은 현실과 담을 쌓고 살순 없는거라구요 아시겠어요?"


용하의 말을 다 이해할순 없겠지만 목련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사랑은 결코 현실만으로 이룰수는 없는것이다...라는말이 왠지 가슴에 닿아왔다.


"말해줄래요? 둘사이에 있었던일들. 알고싶어요"

"후후...이야기해달라고? 어떤것을? 무엇을 알고싶은데? 이미 다 지난일을 새삼스레 다시 꺼내라는것도 왠지 우수운일 아닐까?"


"그냥요. 그렇게 지난일인데 말해주면 안되나요?"

"휴...글쎄..그래 어자피 다 지난일이니 말해버리면 차라리 시원해질까?"

목련은 용하를 간절한 눈빛을 담아 바라보았다. '말해주세요. 말해주세요 선배'라고.


"그녀 입학식날이였던거같아. 지나가는데 그런느낌인거 있지. 눈에 확 띄는-왠지 다가가고 싶은
맘말야. 혹시 느껴본적 있니? 내가 그랬어. 도저히 안되겠어서 친구를 통해서 알아봤지.
그녀에대해서. 무엇을하는지 어디사는지 그리고 누구인지를.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게되었어.
서로 마음이 맞았다고나 할까. 그냥..그런거쟎아 좋아지면 더 오래있고싶고 자연스럽게 미래까지도 생각하게되는-그랬던거같아."


"그런데요?"

"그런데...그런데말이지. 현실이란게 있더라고 우리가 결코 계산하지 못했던 그런거말야. 그녀와 난 넘 다르다는 그런거...이해할수있을까?"

목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아버지가 찾아오셨어. 많이 반대를 하시더군. 알다시피...그녀와 난 서로 너무 많이 달라.
그녀의 집안과 우리집안의 벽이 현실에선 너무 높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함께
부딪혀갈 생각이었는데...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녀 부모님이 오셔서 학교를 관두게 하셨어.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한거같아. 그후로 몇번인가 만나러 가본거같은데 번번히 거절당했지."


"그건 희선선배가 거절한게 아니쟎아요. 선배 아버님이..."


"그래,그랬다면 포기하는것도 없었겠지아마. 전화가 왔더군. 그녀에게. 우리이제 그만 헤어지는게 좋을거같다고 말야. 자긴 이미 결심이 섰노라며, 미련이 없이 그만 포기하겠다고...그동안 재미있었다고. 그녀가 그랬어. 그리곤 니가 아는 그대로야. 그녀가 돌아왔어. 약혼자와 함께 말이지..
하하...이젠 결혼을 앞에두고서 말이지. 하하하...내가 뭘 어떻게 할수있겠니...
난 그저 과거의 과거속의 사람일뿐인데."


용하의 웃음소리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렸다. 사랑을 하지만 이루지 못한 서글픈 남자의 표정이
목련의 맘을 아프게했다. 왠지 그 슬픔이 목련에게 전해져 오는거같았다. 왜 끝나버린 사랑을
아직도 절허게 아퍼하는지에대해서도 알게되었다. 그래서 더 맘이 안됐다.
목련의 눈가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이런..널 울리려던게 아닌데..미안..."

"왠지 선배가 안됐어요. 선배가 넘 불쌍해요."

"괜챦아. 괜챦아 목련아. 솔직히 지금은 감당하기가 조금 벅차다. 아직 다 아문상태는 아니어서 그런가봐. 내게 첫사랑이었어. 남자에게 첫사랑은 아주 특별하단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적어도 내겐 그랬어."

"선배..."

"괜챦대두 그러네. 목련인 인제보니 울보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미..미안해요"


"아니...뭐라는것이 아냐, 다만...그런 니가 넘 따스해서..그래서 그래.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모습보여서 참 많이..못났지? 보기보다 나...엄청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그럴거야."


"아니에요 선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목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용하를 향해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선배. 그런말이 있대요 혹시 들은적 있어요? 사람은 말이에요 '인연법'이 있대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인연이 닿아야지만 이룰수있는거래요. 인연이 없으면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아무리 바래도 결국 헤어지고 만대요. 이경우도 그럴거에요 선배와 희선선배는 서로 인연이 달랐던거 뿐이라 생각해요"


"그럴까?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라서 그럴까? 그런걸까?"

"네..네. 선배. 그래요. 그래서 그럴거에요"


"누가 그런걸 만들었다든? 만약 있다면 조금은 그사람 찾아가서 따져볼수라도 있을텐데. 당신이 뭔데 내인생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냐고 화라도 내볼수있을텐데..."


"세상에 사랑은 아주 많대요 형형색색의 빛깔로 세상에 온대요 마음을 열면 그것을 보고 잡을수있지만, 닫으면 그럴수 없대요. 중요한건 마음의 차이래요. 선배? 선배도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자신을 믿어요 그러면 틀림없이 좋은인연을 또 만날수 있을거에요"


"그래. 목련이처럼 미안하다. 나 오늘만...오늘만 용서해줘. 나도 내맘을 지금 콘트롤할수가 없구나.미안..미안..."


한손으로 눈을 지긋이 가린채 주저앉은 용하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남자들도 저렇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언제나 남자는 강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인지 울고있는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목련은 그것을 무시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걸거야.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내고...그것이 더 자연스러운걸거야'라고.


용하선배가 나즉히 흐느낄동안 목련은 그저 옆에서 지켜 보고 서 있었다. 목련의 눈가에도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지만 그녀가 할수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목련은 비로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마주 대했다.


안타깝지만 목련이 할수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편하게 잠시 지금이라도 맘껏 울수있도록 그저 침묵을 지켜주는거 곁에 있어주는거...그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목련은 기꺼이 자신이 할수있는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련아. 미안하다. 너에게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용하는 한참후 일어섰다.아마도 자신을 이제 추스릴수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는 목련의 집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대문앞에서 목련은 용하를 향해 웃으며 마주보고 있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워요. 내앞에서 울어준거."

"그게 무슨 말이야?"


"울수있다는거 말이에요 아무앞에서나 못하는거 맞죠? 더군다나 선배는..더 그럴거같아요. 그건 제가 그만큼 편하다라는 의미도 될거같거든요? 물론 술의공로가 컸다고 생각하지만...아닌가요?"


"호,제법인걸. 어리다고 생각만했는데 목련이에게 이런면이 있을줄은..."

목련은 용하의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대응했다

"선배. 나 어리지 않아요. 이미 나도 성인이라구요"

"그랬나?"

놀리는듯한 용하의 표정에 목련은 샐쭉해졌다.


"잘 들어가. 좋은꿈 꾸고..그리고 오늘은 고마웠다."

"조심해 가세요. 선배도 좋은꿈 꾸고요 악몽은이제 떨쳐버리기 바래요"


용하는 목련의 얼굴 근처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눈이 동그래진 목련의 얼굴을 보더니 이마에 살포시 키스를 해주었다.

"그럴게. 굿나잇-"


용하는 목련을 향해서 손을 크게 흔들더니 골목어귀를 돌아서 어둠속으로 빨려갔다. 목련은 그의 모습이 안보일때까지 바라보다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니, 어휴 기집애. 이게뭐야 너 술마셨어!"


놀란 엄마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리자, 목련은 화들짝 놀라서 하마터면 넘어질뻔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쇼파를 잡고 잠시 놀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엄마! 놀랐쟎아요!!"

"아휴 아휴 못살아 정말! 지금이 몇신데 이제 들어오니?"

"엄마 기다리지 말라고 자라고 그랬쟎아요 오늘 보라 송별회라고...늦을거라고 말했는데!!"


목련은 그런엄마의 행동이 어쩐지 섭해서 먼저 큰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너같으면 니딸 안들어왔는데 두발쭈욱 뻗고 들어오던지 말든지 잠이 오겠니?"


"엄만 딸을 믿어야지 누굴믿어요? 암튼 정말 못말리는 엄마야!!"

"허, 뭐 묻은넘이 더 난리라더니 딱 니가 그꼴이다 얘, 잔말말고 얼른가서 씻기부터해"


"알았어요 알았어. 들어왔으니깐 걱정말구 엄마 이제 두발쭈욱 뻗고 주무세요 네?!"

목련이 화장실을 향해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목련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정말 요즘은 딸키우기 힘들어...엄마노릇하기가 왜그리 힘드냐. 고달퍼죽겠다."



목련은 치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고마웠다. 이시간까지 안자고 기다려준 엄마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맘과달리, 목련은 퉁명스럽게 대하고 말았다.
엄마와 딸사이는 너무 가까우니까 그렇게 되는거같다. 목련은 양치질을 마치고 수건으로 입을 닦은다음 밖으로 나왔다.


방에 들어가시랬더니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휴...

"너 이리 앉아봐!"

"왜요?"


"이시간까지 뭘하다 왔는지 소상히 보고해!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하면 알지? 엄마가 절대 용서 못하는거"


목련은 한숨을 내쉬고 엄마곁에 앉았다 그리곤 조목조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열심히 목련이 하는 말들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가며 퍼즐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그 용하란 선배 기분맞춰주느라고 여적 있었단 말이니?"


말을 다 맞치고서야 목련은 '아차'싶었다 그부분은 빼려고했는데...모든걸 엄마와 이야기하던 습관때문에 결국 다 불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와서 부인해야 무엇하랴...원망할라믄 이 못난 입을 원망해야지.


"네."

"결국 넌 그선밸 좋아하는데 그선밴 다른 그녀를 좋아한단 말이지?"

"네."

"못났다 참."

"엄마!!"


목련은 엄마의 말에 참지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목련엄마는 소리지르는 목련이 때문에 잠시 두손으로 귀를 막았다.


"엄마 귀 안먹었어 조용조용히 이야기해. 그리고, 너말야. 때려쳐라!"

"네?"

"때려치라고 안들려? 넌 무슨애가 자존심도 없냐?"

"좋아하는데 자존심이 뭐가 중요해요?"


"에휴,에휴 못살아 정말!! 내가 왜 널 배아퍼 낳는지 모르겠다. 정말 챙피해서... 엄마말좀 들어봐. 이 답답한 따님아! 정말 그렇게 죽고 못산다면 어떻게든 연결해서 잘 살게 해줄 생각을 해야지, 그래 거기가서 인연법이 어쩌구하면서 갈라놓을 생각을 했냐?"


"아!"

그제서야 목련은 엄마가 하는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자고로 사람은 말이여. 이 맴보를 잘 써야하는거야, 그래야 복을 받어! 그렇게 죽고 못살면 어쩌냐. 그리고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어. 중요한건 서로의 맘인거지. 다 받아들이게 돼 있단다. 게다가 아직 결혼을 한것도 아니고, 약혼인 상태라며? 골키퍼 있다고 골 못넣냐. 그거 다 마음문제고 실력문제지"


목련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보니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정 안되면 니네들 잘 하는말있지? 확 저질러 버리는거야!"

헉. 목련은 엄마의 말에 잠시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저런 말씀을 하실줄은...


"기집애 차라리 상우가 낫지. 보는눈도 없어가지고..."

엄마는 목련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고 계셨다.

"엄마 피곤해요 고만 잘께요. 먼저 올라갑니다."


목련은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를 등뒤로 느끼며 자신의 방안으로 왔다 그리고 이내, 풀썩 침대에 몸을 던져버렸다. 잠을 자려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럴수록 정신은 더 말짱말짱해져왔다. 목련은 자꾸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게 죽고 못산다면 어떻게든 연결해서 잘 살게 해줄 생각을 해야지, 그래 거기가서 인연법이 어쩌구하면서 갈라놓을 생각을 했냐'던 말. 왠지 그말이 가슴한복판에 와 박혀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어떻게해야하지? 아, 난 정말...어떻게 해야하는게 맞지?'

목련은 내내 잠을 못이루고, 고민에 빠져 날을 세우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의 생애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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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편을 올립니다.
헛 갈수록 태산이군여^^;;
목련이가 넘 힘든사랑을 하네요.

사람의 마음이란게 쉽게쉽게
좋은쪽으로만 움직여주면 참 좋을텐데요
그게 그렇게 잘 안되니깐 문제가 되는거겠죠^^;;

곧25편도 올리겠습니다.
즐독해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