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목련은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지나가다보니 상우네집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아줌마신가 인사를 드려야겠다'싶어서 목련은 안쪽을 바라보았다
낯선 할아버지가 마당한켠에서 흙을 만지고 계셨다 무얼심으시려나...
목련의 시선을 느꼈는지 노인은 목련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거의 얼떨결에 인사를 건넨 목련이었다.
"음. 자넨 누구지?"
"옆집에 사는 한목련이라고 합니다."
'한목련..어디서 들은거같던 이름인데?'
노인은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냈다
'아! 상우녀석이 그렇게 말하던...'
노인은 목련을 조목조목 훑어보고있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아저씨?"
"에이 요즘 할아버님들 아저씨라 불러드려야 좋아하시쟎아요. 더군다나 할아버진 아직
뒷방을 차지하고 계실 그런분으론 보이지 않는걸요"
목련의 말에 노인은 허허...웃고말았다.
"그렇게 보이나, 그건 참 고맙군. 난 상우할아버지야."
"아, 그러시군요. 상우한테 할아버지가 계시단말은 못들었어요 솔직히 이사온지 얼마안돼서
잘 모르기도 하고요"
목련이 솔직하게 털어놓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당분간 여기서 지내고있어. 심심해서 마당이나 만져볼려고 하고있었지."
"뭐하시는건데요?"
목련은 노인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노인의 말에 귀기울이고 듣고있었다.
봄이라 씨앗을 심어보는거라고...
"전요...할아버지가 안계세요.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상우가 부럽네요."
밝지만 어딘지 쓸쓸한 목소리에 노인은 왠지 끌렸다.
"괜챦다면 나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해. 그리고 언제든 내가 필요할땐 찾아와도 좋아."
"정말요?"
"이렇게 이쁜 손녀딸이 생긴다면 내쪽에서 더 이익일테니까 말야 허허."
이렇게해서 목련은 최근 여기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그녀는 너무 좋았다. 자연스럽게 목련인 할아버지와 친해졌고, 그리고 엄마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털어놓을수있었다.
'흠..상우녀석 결국은 헛다릴 짚은거로군. 짝사랑이라 이거지."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꼈다.
"할아버지 무슨 생각하세요?"
"아냐 아냐...아무것도...그보다 우리 무슨이야길 했었지? 나이가 들어서인가.
정신력도 자꾸 떨어지는거 같아."
옆에서 열심히 조잘거리는 목련일 향해서 노인은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 조심스레
결정을 하고 있었다.
'흠..슬슬 서두를때도 되었어.'
★
저녁무렵 식사하는 자리에서 권노인은 아들내외를 돌아보았다.
"나는 낼 떠날 생각이다."
"네?"
상우의 아빠도 엄마도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할아버지 왜 빨리 가세요?"
"빨리라니...천만에 그동안 많이 쉬었다. 알다시피 내가 지금 쉴 상황도 사실 아닌데...
그건 아마 니가 더 잘 알거다."
노인은 아들을 건너다 보았다. 아들역시도 더이상은 만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계속 여기 머무를 생각이니? 같이 갈 생각은 없는거니?"
"죄송합니다."
아들내외의 푹 숙인 고개를 보면서 노인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휴..그래...그게 어디 다 뜻대로 되더냐. 알겠다. 더이상은 강요않으마"
"할아버지 집으로 가시려구요?"
노인은 아까와 달리 부드러운 시선으로 상우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래야할거같다. 아마 우린 조만간 또 보게될거야."
걱정스레 상우의 부모님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당연하죠. 얼마만에 생긴 할아버지신데...걱정마세요 상우가 자주 놀러가고 그럴게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고맙구나."
네사람은 아무말없이 각자 생각에 잠겨서 음식을 의무적으로 떠넘기고 있었다.
노인은 상우아빠를 잠시 보자며 마당으로 나갔다.
"성준아-"
상우아빠는 오랫만에 듣는 자신의 이름에 뜨거운 감정이 목구멍에 솟는걸 억지로 억눌렀다.
"예, 아버님"
"상우는 내가 데려가고 싶다."
[쿵]
예상은 했었지만 성준은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녀석은 너와달라. 그동안 지켜봤다. 잘해낼수 있을거란 판단이 든다."
"아버님 그것은..."
"안다 알아 나도 잘 알고있어 너때도 겪었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겠니. 나도 당분간은 좀
기다릴 생각이다. 그리고 상우만 좋다면 나서볼 생각이고..."
성준은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나라 공화국의 군주다 너무나 절대적인...찬성을 하면 상우의 앞일이 걱정이고,
반대를 하자니 자식된 마음이 괴롭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상우에게 결코 강요할 생각은..."
노인은 손을 들어서 그말을 제지했다.
"물론이야. 내가 단서를 주지 않았니. 나도 상우가 원할때 하겠다는거다.
내가 미리 말해두는것은 너도 그애의 아버지니까. 알고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더이상은 그어떤말도 용납치 않을 분위기라서 성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허허..오늘밤은 참...별빛이 좋구나..."
약간은 떨리는듯한 노인의 소리가 마당한켠에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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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상우는 사진반에서 원성을 사고 말았다 자신의 동아리보다 아무래도 목련일 보느라 그쪽을
더 많이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화가난 선배들이 전시작품 준비하라며 무조건 좋은작품을 찍어오라 성화였다. 결국 상우는 사진기를 매고서 교내를 이곳저곳 기웃거리고있었다.
사진기로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사각의 네모안에 세상 여기저기가 들어온다
그냥 볼때와는 분명 뭔가가 다르다. 상우는 여기저기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있는 나무의 새순과
보기좋은 꽃들을 상대로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가 막 다른 대상을 찾으러 눈을 돌렸을때, 환하게 자신을 보며 웃고있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안녕...혹시 니가 권상우니?"
낯선 여잘 보면서 상우는 왠지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보라야. 서보라. 반가워"
그녀는 덥썩 손을 뻗어 악수를 제의했다. 안하자니 상대가 무안할것이고 그렇다고 덥썩 잡을수도 없어 난감하기만했다. 그러는사이 그녀는 상우의 손을 잡더니 얼른 악수를 마쳤다.
"그런데 날 어떻게 알아? 혹시 우리 어디선가 만난적 있니?"
상우는 기억너머의 추억들을 뒤졌으나,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난감한 상태였다.
"훗 그럴리가. 우리가 만났다면 니가 날 기억못할리가 없을걸. 우린 분명 지금 첨 만난거야"
황당한 얼굴로 상우가 보라를 건너다 보았다.
"권영길 할아버지 아니?"
"엇 우리 할아버지신데"
"맞아. 너희 할아버지랑 우리 할아버지...친구시지. 그래서 내가 널 잘 알아."
그제서야 막혔던 눈앞의 시야가 다 사라지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반갑다. 그렇구나."
"음...그러니 우린 아마 자주보게 될거야. 혹시나 담에 만났을때 날 기억못한다거나 하면안돼
그건 아주 곤란하니까 난 그런건 절대 못참으니깐말야"
장난스럽게 웃는 보라를 보며 상우는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럴리가...아마 절대 그럴일은 없을거야."
"사진찍고있니, 나도 한번 찍어줄래?"
상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뭐 별로 어려울것도 없는데."
상우는 포즈를 취하는 보라를 향해 자세를 잡은후 셔터를 눌렀다.
★
"목련아-!"
상우의 목소리에 목련은 웃으며 뒤돌아봤다. 또 무슨 장난을 걸려고...
그러다 상우의 곁에 서있는 여자에게 눈길이 멈췄다. '도대체 누굴까?'
그녀는 성큼성큼 목련을 향해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안녕? 상우친구니? 난 보라라고해. 반갑다."
얼떨결에 목련은 손을 잡고 악수를 했지만 내심 그녀가 누군지 궁금이 일었다.
"어...울 할아버지 친구분 손녀딸이래."
상우의 말에 그제서야 목련은 고갤 끄덕였다.
"아,그래 반갑다. 난 목련이라고해."
"음...그래 우리 보아하니 나이도 비슷한거 같아. 친구로 지내자. 괜챦지?"
보라는 막힘이 없고 그리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같았다. 상우처럼...
목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잘지내자."
"야 상우야 뭐해. 목련이도 한방 찍어줘야지? 오늘같은날 조명도 받쳐주는데 안찍으면
넘 억울한거야 얼른찍어봐"
보라의 말에 상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련이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오케이...됐어!"
"근데 너말야, 실력은 있는거야? 혹시 우리 다리만 찍었다던가 머리만 찍었거나 아님
빈공간을 향하고 찍은건 아니겠지?"
"당연한 말씀을!"
상우는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후후 알았어 알았어. 고만해라. 잘하면 이참에 붙어보자 하겠다. 뭐 그래도 난 별로 상관없지만..."
보라가 웃으며 상우를 제지했다.
"어 아니야. 날 뭘로보고...이래뵈도 나 에티켓 정도는 안다."
"그래? 그거야 뭐 지켜보면 알게되겠지."
보라는 쾌활하고 경쾌한 웃음소리를 냈다.
"날도 좋은데...오늘 진탕 한번 놀아보자 우리 만난 기념으로 말야."
"난 안되는데...지금 선배들 미움을 잔득 사버려서 자칫하면 난 쫓겨날판이라구"
울먹이듯한 상우의 목소릴 들으며 보라가 등을 한대 쳤다.
"야야...쫓겨나면 쫓겨내라고해 다른데로가면되지 . 동아리가 거기 하나냐."
보라는 막무가내로 상우를 밀고있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까짓거 뭐 그래보지 뭐!"
"잘생각했어 권상우, 음...조금 맘에 드는데!"
목련은 주거니 받거니 치고받으며 웃음을 짓는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자기만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