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께선 큰언니를 끔찍히 싫어하셨다.
어린 내 기억속에서도 아버지와 큰언니의 사이를 떠올리라면
전부다 그런 것이었다.
그 이유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막연히 아들을 너무나 기다리다
맞은 딸이라 그러겠지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이유를 나름데로
믿었었다.
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가댁에서 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왜 큰언닌 외가댁에서 컸지? 그건 순전히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엄만 어릴때 부터 아버지에게 미움 받은
큰언닐 정말이지 애처롭게 사랑하셨으니깐....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린 네딸과 남게된 엄마에게
언니의 자발적 제안은 많은 고민과 함께 받아들여지게 되고
우린 방학때가 되면 큰언닐 보게?榮?
어릴적 마당 한가운데서 아버지가 큰언니 머리를 무섭게 밀었다.
큰언닌 울고 있었고 아버지 입가엔 보일듯 말듯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예전 6.70년대 드라마에서 보이는 '간난이'머리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큰언니의 뒤통수가 파랗게 보일정도로 아빤
밀어버렸다.
큰언니가 그때 초등하교 5학년때쯤... 큰언닌 참 예뻤었다.
아버진 위암 수술을 두번이나 받으셨지만 돌아가셨다.
어떤이들은 나을 수 있다는 강한 정신력으로 병을 정복하고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데 왜 우리 아버진 그러지 못했나 하고
속으로 많이 원망했었다.
아버진 큰언니를 무섭게 미워했지만 그외 세딸들에겐 너무나
멋있고 재미있는 아버지였었다.
내나이 스물하고 중반에 들어섰을때 동생이 비밀스런 목소리로
내게 일러준다.
내 동생은 나보다 결혼을 먼저해서 인지 항상 어른티를 낼려고
했으며 나 또한 그런 동생한테 큰 거북함이 없었었다. 어렸을때
부터 나이차도 많지 않아서인지 우린 단짝처럼 잘 붙어다녔었다.
다만 동생은 어릴때부터 엄마의 '귀밝이','눈밝이'그러면서
막내 대접을 톡톡히 받은 애였고 그래서인지 엄마랑 온갖
비밀스런 얘길 나누곤 했었다.
그런 동생이 내게 들려준 얘긴 정말 오싹했었다.
큰언닐 낳기 위해 엄마는 외가로 갔었다.
엄마의 친정은 엄마가 결혼해 살고 있는 곳과 너무나 떨어진
곳으로 그 당시만해도 버스타고 하루종일 달려야 도착하던
곳이었다.
그곳 이름도 특이했다. 전라도 효자동 만절리...
첫애길 그곳서 낳고 외할머니의 산후조리를 받느라 엄만 한동안
그곳에 있었다.
아버진 그때 대구에서 포목장사를 하고 있어 엄마 떠나 보낸후
일주일 후쯤 휴일에 엄말 찾아 오게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엄마의 사랑스런 애기는 갑자기 숨을 멎었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