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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BY 봄햇살 2003-04-10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주먹을 날린다.
밀려나는 그녀. 나는 얼어붙은듯 그광경을 보고있다.
뺨을 계속해서 맞으며 구석까지 밀려난 그녀. 더이상 피할곳이 없게 만든후 코너로 밀어붙인 복서처럼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이상하게도 표정은 없다. 그래서 더욱 차갑다.
그녀가 이런폭력을 당하며 살아왔을 세월이 가엾다.
그의 카리스마가 나에게 마법을 건듯 얼음조각처럼 서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건 그녀의 단말마적인 비명을 듣고서였다.
그녀는 애절하게 내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녀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럴때가 아니다.
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달려든다.
난 체육을 전공했고 제법 농사도 지었고 운동을 생활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웬만한 싸움에서도 져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른체구에서 믿어지지않을 만큼의 강한 힘을 뿜어내었다. 검사시절 범인을 제압하기 위한 어느정도의 무술도 익힌듯 기교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주먹에는 살기가 있었다.
매서운 살기. 이전 술먹고 길가다 시비붙어 싸우던 그런 시시껄렁한 싸움과는 다른 살기.
살면서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살기 가득한 주먹앞에 나는 약한 짐승처럼 무너졌다.
나도 악을 품고 덤볐으나 그는 너무나 강했다. 놀라울 정도로..
그의 엄청난 펀치를 맞고 정신을 잃어가며 그녀를 생각했다.
이런놈에게 그 긴세월동안 매질을 당하고 살았을 그녀..
눈물이 흐르면서 정신을 잃었다.
내가 과연 그녈 위해 해줄일은 눈물을 흘리는 정도밖에 없었던가..
어렴풋이 흐려진눈으로 그녀가 끌려가는게 보인다.
그놈에게 가도 죽지말아요. 당신. 내가 어떻게던 당신을 구할거에요.
그렇겐두지 않을거에요..
한참후 정신을 차리며 눈을뜨기전에 모든게 꿈이길 얼마나 바랬던가.
그러나 눈을 뜨며 나는 이 지독한 상황이 현실임에 절망했다.
그녀는 없고 그녀의 핏자욱만 남았다.
그녀의 핏자욱을 만지며 운다. 통곡을 한다.
그길로 서울로 다시 향한다. 강릉으로 오던 햇살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이제는 그 햇빛이 얄밉다. 아무 생각 없이 빛나는 햇빛.
태양을 죽이고 싶다. 할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비가온다면 나는 오픈카의 커버를 덮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으며 운전을 할거다. 그렇다면 좀더 시원할것같았다.
그러나 저 징그러운 태양은 지독히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죽이고 싶다. 저햇살을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죽여?
문득 나는 그녀가 나에게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이 떠오른다.
-제가 남편에게 벗어나는 길은 제가죽든지 그가 죽든지 하는거에요-
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를 위해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았다.
유일한 방법이 그놈이 죽는거라면 죽이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걸.. 나는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놈을 죽이면 내인생도 끝일줄 모른다. 아니 끝이다.
하지만 내인생이 끝이더라도 그녀만 행복해질수 있다면
나는 그길을 택할것이다.
그녀를 사랑한다. 이제 그녀를 위해 눈물만 흘리는 바보같은 인생을 끝내고 싶다. 그길이 내인생의 파멸이라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당신 기다려요. 당신의 힘든 날들을 이제 제가 끝내줄께요.
이제 행복만이 당신을 기다릴거에요.
그때까지 죽지말아요.. 제발 죽지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