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는 이제 만날때는 마치 부부처럼 더이상 스스럼이 없었다.
헬스장안의 우리만의 비밀공간에서나 나의 아파트에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고 몇시간 안되는 시간만큼에는 적어도 우리만큼 다정한 부부는 없는것이었다.
햇살이 좋은 봄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피크닉을 제의했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니만큼 멀리는 못가더라도 가까운 공원에서 제대로 도시락도 싸고 놀고싶다는 말을 하는 그녀의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그녀는 들떠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런 그녀.. 우리는 그다음날 바로 공원으로 갔다. 그녀가 싸온 도시락은 정성이 가득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몸이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눈을감아도 밝은햇살을 눈이시릴만큼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두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뱀처럼 내몸을 휘감는 차갑고 공포스러운 느낌.. 눈을 뜨기가 두려울정도의 두려움 그러나 나는 눈을 떳고 햇빛을 통째로 막아버린 그를 보았다.
옆에 있어도 냉기가 돌정도의 그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미친듯이 떨렸다.
내가 왜이럴까. 그녀르 지키고 보호해줘야 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런 나쁜놈앞에서 내가 떨고있는걸까..
그러나 분명히 나는 떨고 있었다.
차갑고 말랐으나 분명히 잘생긴 그는 조용히 나를 쳐다보았다.
화난 얼굴도 아닌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 그러나 눈만은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나를 노려본 그는 조용히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의 떨림이 내게 느껴졌다. 내가 이럴때 그녀는 얼마나 두려울까..
나는 주저앉아 한참을 그놈에게 끌려가는 그녀를 지켜만 보고있었다.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눈물인지 느낀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바보처럼 나는 울고있었다. 나의 비겁함이 역겨워서.. 그녀가 가엾고 걱정되서.. 그놈이 죽이고싶을정도로 미워서 나는 울었다.
비겁한 나...
그리고 몇일이 흘렀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을 부여잡고 창밖만 쳐다보았다. 버티컬이 굳게 내려진 그녀의 창문.. 작은 틈새도 보이지 않았다.
일체의 외출도 없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창문만 부여잡고 몇일을 물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그녀만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미칠것 같았다. 이래선 안되었다. 그녀에게 가야한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놈이라면 그럴수 있을것이다.
그녀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확실히 지배했을때 이상하게도 배가고팠다. 생존본능일까. 그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밥을먹었다. 아니 퍼넣었다. 씹지도 않고 입속에 몸속에 음식을 퍼넣었다. 그리고 모두 토했다. 똥물까지 토하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밥을 끓여서 죽을 만들었다. 약간의 죽과 물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놈은 분명히 아침에 출근을 했다.
그녀 혼자 있을것이다.
그녀의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놈이 그녀를 대놓고 학대하기 위해 어딘가 맡긴것이 틀림없다. 지금이 기회다. 그녀를 구할 기회.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때 예상대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벨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수 있었다. 그녀와 나와는 무언가 통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있다는걸.. 간절히 내가 구해주길 바라고 있다는걸..
나는 열쇠공을 불러서 문을 땃다.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랑하던 그녀의 집. 늘 깨끗이 정돈된 그녀의 집이 마치 폭격을 맞은것처럼 엉망이 되있었다.그녀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바닥에 널려있는 유리조각에 발을 벴다. 오만집기가 부서져 있었다.
내등을 타고 흐르는 두려움.. 그녀가 무슨꼴을 당한것일까.
안방문을 열었을때 그녀는 그방에 있었다.
그녀는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다. 분명히 그녀는 누워있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