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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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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lesukkr 2003-03-03

난 물어물어 고아원을 찾아갔지만 들어갈수 없어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을때 어느분이 왜 여기서 서성이냐면서 젊은 신사분이 내게로 다가와 내용을 물어보기에 사실을 말하였더니 알았다면서 고아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옷을 가라입히고 목욕과 이발을 해주시고, 밀수제비 한그릇에 배를 채우고 났는데 나에 대한 신상기록을 하고 이날부터 원아가 되였다. 낫설은 고아원에 들어와보니 원아들은 백여명이 되는듯하였다. 그중 난 제일 막내가 되어 선배 원생들의 표적이 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심부름등을 해주워야 했던 것이다. 만약에 선배들 말을 잘 듣지 않았을 경우 에는 이 모퉁이로 저 모퉁이로 끌려다니면서 구타를 당하여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었다. 이곳에도 각기 분담조가 있기에 각각 배당된 일과에 조장이 있는데 그 조장의 말에 복중해야 한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바깥청소 및 실내안 청소등을 마쳐야 아침조식에 들어가고 식사라해야 악식이다. 풀기하나 없는 꽁보리밥에 무총잎 소금에 짜게 절구어 반찬으로 하고 짜디짠 짠지이지만, 그나마도 풍부하지 못한 관계로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반찬을 집어먹어야 하지 만일 이런거 하나하나가 선배들 눈밖에나서 좋을 것은 없기에 조심하는게 좋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막내들의 목시었다. 설거지 물도 더운물은 없고 깊은 옹달샘물을 떠서 설거지해야하는 반복되는 일이 매일 되었다. 추운날에 찬물에 설거지 청소등을 하다보면 손등은 갈라져서 피가 흘러서 딱지가 지고 아픔을 참을수가 없지만 주워진 일과는 해야만 했다. 잠시 이 고아원을 살펴보면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고아원으로서 보육비등 모든 것이 다 지원받아 교육, 기술등을 가르쳐서 기능에 따라 사회에 배출한다고 들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배워야하는 교실도 발견하지 못했고, 화목준비 및 기타 사역 일이 원아들의 목시였던것으로 보여왔다. 원아들은 매일처럼 반복되는 일과와 구타 당하는등 견디기가 힘들어 하는 원아들은 탈출을 하여 성공하는가 하면 탈출하다 실패하여 잡히면 가옥한 처벌과 근신등을 주워졌으며 명내안에서도 항시 감시 대상자로 감시 받는다. 그래도 탈출하는 사람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는 한다. 그래도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듯이 연일이 반복되는 생활에도 어연간 매서운 추위는 서서이 물러가고 아지랑이 감을거리는 일은봄. 그래도 상사들이고 선배들의 인정을 받았는지 참으로 힘든 역내 밖을 나갈 기회가 왔다. 매일 같이 탈출의 기회만 생각했던 나에게는 행운의 꿈이다. 역내밖을 나가려면 상사 및 선배들 인정을 받는 일만이 역내밖을 나갈수가 있는 것이다. 원생의 탈출 때문에 철저한 감시가 따른다. 아침 점호를 끝내고 조식을 한다음 하루 일과를 배정하는 시간이다. 삼인일조로 규정하여 조장 및 감시자등이 따르며 주워진 일과를 배정받아 그 일과를 책임을 다해 완료해야한다. 그래야 원내에 들어와도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는다. 엄격히 정해진 규칙 때문에...
그러나 난 탈출의 기회로 생각하고 배정받은 화목을 주으러 십신일조하여 가만이 한장씩을 걸머메고 조장을 선두로 하여 산으로 솔방울을 주으러 간 것이다. 서산시내를 벗어나 산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산으로 오른다음 조장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우선 무리에서 떨어지지 말것과 십신일조로 하여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라는 지시이다. 모든 지시에 따라 우리는 책임약에 들어갔고 조장과 감시자는 주변을 맴돌며 감시에 이르기에 바쁘다. 하지만 감시자라해서 눈돌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던지 우리들 눈안에 보이지 않았다. 난 옆에 같이 다니던 선배한테 " 형, 나 똥마려워 저쪽에 가서 똥 잠깐 놓고 올께 " 하니 그래 멀리가지말고 이 근처에서 똥 누어라 하면서 반대방향으로 피해준다. 난 이때를 놓칠새라 계곡과 숲속을 반복하면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 얼마나 산아래로 내려가니 산모퉁이 초가집 주변에 변소와 돼지집이 연결된 천정에 올라가 밀집방석을 둘러쓰고 숨을 죽이면서 숨어 있으려니 개만 짓어도 사람 발자욱소리도 공포에 대상이였고, 얼마나 지났던지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지기 시작 때 서야 숨어있던 곳에서 내려와 잠잘 곳을 찾아 길을 걷는다. 난 그 곳에서 해방을 위해 탈출은 했지만 선배들 , 아니 원아들은 모진 고초를 당하였을꺼야 내가 그 현실을 보아 왔기 때문에 죄스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도 이제부터 문전으로 문전으로 밤이면 잠자리를 찾아 이집 저집으로 구걸하며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면서 아이들에 표적이 되어 놀림에 대상이 되는 가 하면 심심 풀이 장난 처럼 던지는 돌팔매는 이마가 터저도 누구에게 호소 하지 못하는 기구한 어린 몸이었기에 나이가 지긋하신 부모같은 분들에게서는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약도 발라주시며 가엾어라 하시면서 달래어 주시는 어지신 분들께서도 계시였지.....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안계시냐 하면서 다정스러운 말 할 때 "아무도 없습니다. 형제들도 없니 ?
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시던중 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던지.. 울지마라 하면서 불쌍하게 생각 하시던 분들 ...
저녁밥을 챙겨 주시고 춥겠다 하시면서 아이들이 입던 헌 옷 도 챙겨주시면서 우리 집엔 잘 곳이 없구나.. 잠일낭
다른집에 가서 자거라 하면서 내가 일러주는 곳에 가면 사랑방이 있으니..그곳에 가서 재워 달라면 좋은 분들이니 재워 주실 것이다. 하시면서 자상하게 말씀을 해 주셨다. 난 아주머님께서 가르처 주신 곳 을 찾아가 하루밤을 재워 달라고 하니 선뜻 들어 오너라 하시면서 문을 열어 주시었다. 방안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집일을 하고 있었다.집일이라면 새끼꼬고, 집그릇 등 짚신이며 멍석등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그러한 것 들은 생활 필수품이다.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물건들이지. 그러기 때문에 부락 동네 사랑방 한 두 곳을 지정하여 짚단을 가지고 모여서
이러한 것 들을 생산하게 된다. 오늘도 이자리에 계신 한 분 께서 말 하시기를 " 여보게 친구 자네 이 아이 데려다 아들 삼아 키우게 자네 집은 딸만 6형제이니 나이가 있어 더 나을 수 도 없고..."
그러다 그분께서 고개를 돌리시더니 "너의 아버지 어머니 께선 언제 돌아가셨니?"
"어머님은 언제 돌아 가셨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살되던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선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그동안 누구 손에 자랐니?"
"의부 손에 자랐습니다. 작년에 헤어졌어요."
묻는 말에 대답을 하니 그녀석 똑똑하다 하면서 칭찬도 하여주시고 방안 사람들은 참으로 안되었다 하면서 혀를 치시셨다. 그래 그만 그옆에서 자거라 하시더니 자기들끼리 말 하기를.. "일전에 서산고아원에서 아이 하나가 도망을 했아며 고아원 사람들이 찾아다니며 수소문 하더라며 혹시 네가 도망하지 않았니?"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아니요! 라고 모르는 척은 하였지만 심장은 두근거리는것은 어찌 할 줄 몰 랐다..
이튼 날 아침 밥까지 먹고나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갈곳 없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하루종일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걸어 간 곳은, 해저물 무렵에 서산군 성연면 왕소래 라는 마을에 온 것이나 아침밥을 대신한 배는
곱하지고 잠잘 곳은 말연하여 한참동안이나 헤메던 중 맞은 편에서 불빛이 보이기에 불 빛을 따라가 보았더니, 사랑방 이었다.. 하루 저녁을 재워달라고 하니 나이가 지긋 하신 아저씨께서 문을 열고 무어라고 했느냐 ? 하루밤 을
재워 주십시오. 우리집에 니들은 재워 주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가보아라!! 하시며 문을 닫는다. 할 수 없이 한집 모퉁이를 찾아가서 처마 밑에 섬겨를 깔고 가마니자락을 이불삼아 덮고 자려니, 배는 고프고 냉기는 올라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우고 나니, 아침 해는 솟아 내 몸을 녹여 준다. 그러나 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아침밥을 구걸 해야 했다. 어느집 대문 밖에서 "밥 좀 주십시오!" 하면서 소리를 내니 아주머니가 문밖으로 나와 대문을 열고는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춥겠다 하시면서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가 아궁이 불을 끌 어내어 불을 쪼여 몸을 녹여라!
"어제밤 어데서 잦기에 이렇게 몸이 얼어느냐?"
"바깥 추녀 밑에서 잤습니다."
"아이구! 어린아이가 방에서 자도 추을텐데 한디잠을 자면 얼어죽는다. 다시는 한디잠을 자지 말아라!" 하시면서 아침밥과 뜨거운물을 주시면서 찬찬히 몸을 녹이면서 먹어라 한참동안이나 내 얼굴을 바라보시더니.....
"아이구 너의 부모님께서도 기구하시지 너처럼 어린 자식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榜棅뼈犬? 그래 형제들도 없니?" "네.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은 네 나이가 몇살이냐?"
"여덜살이요."
"부모 밑에서 재룡이나 부릴나이인데 참으로 불쌍한 이로구나."
"애야! 이렇게 한디잠이나자고 배골치 말고 부잣집에 들어가서 불이라도 때주고 허드런 일도 도와주면서 살거라" 하신다. 난 인자하신 아주머니의 집을 떠나서 방향없이 얼마쯤 가다보니 이 마을 저 마을 지나서 대호지면 소대지까지 들어오게 되였다. 그처럼 매섭던 추위도 한풀꺽기여 고개를 숙이는듯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자니 졸음이 오고 따사로운 태양은 날 잠재우는구나. 이처럼 따사로운 봄이 빨리와준다면 명홋바지 홋저고리 걱정안해도 되고, 아무데서라도 노숙할수 있는 하절기가 빨리 와준다면 얼마나 나에게 해방이 였을까! 할미꽃 피고 진달래꽃 피면 진달래꽃 따목고 칙순들을 꺽어 먹으며 셩나무 꺽어먹을때 거치른 아이들 등살에 벗어나 은신하기 좋고 손등 발등 갈라지지 않아서 좋고, 좋은것이 나에게는 다소적을뿐 외지 할곳 없이 떠도는 몸은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두산리라는 부락에서 몇날을 떠돌던 중 끼니을 때우기 위해서 한집을 찾아가 한 끈이를 구걸하였더니 우리집은 점심이 감자 밖에 없다시며 몇개의 감자를 내주셨다. 감자로 허기를 채우고 났는데, 너 어디에서 왔으며 너의 성은 무엇이고 부모형제는 어떻게 ?榮쨀캡庸?친절하게 물어주신다. 난 있는 사실을 다 말하고 나니.
너 우리집에 이 할머니하고 같이 살면서 며칠지나면 좋은 집에 아들로 보내줄터니 우리집에서 같이 사자고 하시기에..... 네! 하고 대답을 하고 하루밤을 지내고 난 이튼날 아침. 아침밥을 주는데 쌀과 보리 콩과 감자 혼합하여서 밥을지였는데 쌀이라야 찾아볼수 없다. 그래도 때거리를 걱정하지 않는 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났는데, 헌가마니 하나를 가지고 산에가서 솔방울등 땜감을 주어가지오라 한다. 난 헌가마니를 가지고 산에 다니면서 땔감을 주워나르는 일을 일과로 알고 살아가던중 어느날인가 하루는 아침밥을 먹고 났는데 오늘은 산에가지말고 할머니하고 갈데가 있으니 같이 가자면서 말씀하시기에....
난 할머니를 따라 한참동안 갔더니 한 토담 초가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자 오십대 전후반되는 아저씨께서 나오시더니 반가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이분들이 너의 부모님이시다. 하면서 절을 하라기에 아무것도 모른체 절을 하고 나니 네가 이분들의 아들이며 이분들은 너의 부모님이시니 앞으로 말 잘듣고 잘 살아야 된다면서 모를 이야기를 하더니 주객간의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고하시더니 나머지는 수일내에 준다는 말을 한다. 모든것은 얼마후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튼 난 아무것도 모른체 앉아 있었고 점심이나 드시고 가라면서 점심상을 차려 내왔는데 쌀밥에 돼지고기국을 끄여서 푸짐한 점심을 받고 팔년만에 이런 밥상은 처음으로 받아 보았을 것이다. 점심상을 끝나고 나서 할머니는 집을 향하여 떠나시고 난 낫설은 이집에 남게 되었다. 참으로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식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집에서 있기로 했다. 세월은 어느덧 진달래꽃, 할미꽃도 낙호가 되여버리고 들녁엔 갈풀등을 꺽어서 논에 거름하기에 바쁘고 여기저기에선 소모는 소리, 논갈이에 바쁜 나날들이다. 잠깐! 이집에 대해서 알고 넘어 가기로 하면 이집 대주께선 고봉운씨이고 외동딸이 있는데 나보다 한살 아래 고명순....
어머니는 청각은 좋으나 반 벙어리 장애인이고 토담초가집에 논밭해서 팔백평 정도 땅을 가지고 사는 농부로서 고명딸과 살아가던중 아들을 두지 못하여 아들 하나를 데려다 키우려고 수소문하던중 그 할머니와 알게 되었던가 보다. 아무튼 아들 아닌 아들로서 이집에서 살아가야 했다.
잠깐 여기에서 몇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실은 양부께서 날 당신의 자식으로서 입적을 하려했으나 집안내에서 반대하여 동의를 해주지않아 입적을 할 수 없었다며 승산리에서 떠나기전에 양부께서 넌 어디가던지 누구의 아들이 되더라도 그곳에 호적을 올려달라 해라.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는 것을 보았다.
이할머니와 한달가까이 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의 모든것을 알게 된 할머니로서 모든 사실을 고봉운씨한데 전가하여 사실을 알게 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넌 내자식으로 입적할 것이며, 학교도 보내여 주겠다고 하였지만, 모든것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주워진 것은 일뿐이다. 지게를 걸머지고 다니면서 나무나 해오라하고 따라다니며 논밭일에 도와주며 살아가던중 어느날 두산리 할머니가 찾아와서..
용세야! 이리오너라. 하기에 다가갔더니 우리집에 같이 가자며 손목을 잡아 당기면서 저분들은 네 부모가 아니며 우리집에 가서 나오 같이 살자. 하면서 잡아당긴다. 그러자 고봉운씨 다가오 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남은것은 얼만간에 여유를 달라면서 말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데려가겠다며 내 몸을 잡아당겨 끌고가고 난 끌려가게 된다. 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는 신세가 되였던것이다. 며칠동안 할머니와 지내는데 명순 모친께서 다시 찾아와 돈 다 줬으니 우리집으로 가자. 하면서 잘 알아 듣기 어려운 말을 하자 할머니 그래 가서 잘 살아라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난 또 다시 이분과 사성리 부락에 다시 오게 되고 내용을 알고 보니 날 담보로 하여 백미 두가마 주기로 하고 그중 한가마는 선불로 주웠으나 나머지 한가마는 주지 않아 그 돈을 받을려고 수작을 부린 할머니가 야속하다 못해 원망스러웠다. 어린 생각이지만 참을 수 없도록 원망스러웠지만 어린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걸 지금까지 이집에서 사라가는 동안에도 애정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은 없었니 명순이라는 아이와도 매일처럼 싸움이다. 거리에서도 당하던 수모적은 말들을 이아이도 하기 때문이다. 이집에 까지와서 수모적인 말을 들으면서 지내기엔 어렵다고 생각된다. 부모가 된분들은 하지말라는 주의 한마디 없이 듣는 나에게만 잘못이라는 생각인가 보다. 사실상 자식이라고 생각했다면 편견적인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오라버니로 인정하게끔 가르처주면서 가정적 훈계를 하여 잘 잘못을 갈라주면서 충고 할것은 하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무슨 일이던지 날 보고 참으라 한다. 나이 차이도 한살 아래이고 왜 나만 참아야 하는지. 친자식이라서......
나는 주어온 놈이라서 일만 해야 하며 하루도 지게 놓고 놀아본적 없이 어쩌다가 나무집을 채워 가저오지 못하면 들어올수 없이 주위에 뱅뱅돌면서 꾸중을 피하기 위해서 움추리며 눈치를 살피면서 집안으로 들어갈때 심정은 어디다 비할수 없이 비참한데도 세월은 가는구나!......
눈물처럼 쏘아지던 눈과 혹한의 북풍과 같은 한숨속에서도 세월은 가고 오는지 어느새 다시 찾아오는 봄....
봄햇살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고 그 태양아래 온 대지를 비추울때 새싹들의 새생명을 주고, 또다시 파릇 새싹은 솟아나면 꽃도 피고 모든 만물들은 다시금 숨을 쉬면서 자라나게 되겠지. 그러치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 없이 매년 매일처럼 반복되는 생활여건.....
그리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가보다 학교도 입적도 이집과 약속은 이루지 못하여 한가닥의 희망은 없어지게된다. 아마도 모둔 여건상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처럼 하는일 매일처럼 해야하는 생활에 변화가 있어야 할턴데도 아무것도 보이지않은 나로서는 이곳을 안식처를 삼아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는가보다.
한도안 집을 짓는일에 도움을 아니 일손을 도와 모든 준비등을 심부름으로 새얼을 새끼 꼬아 준비하면서 집 짓는데 봄한철은 지나고 들력엔 각종 농사에 전염하던때 어느새 보리와 밀밭은 타작의 손길을 재촉할때 난 이곳을 떠나게 되였다. 다시금 행선지 없이 이집문전을 떠나 들고 산길을 따라 나서게 되였다. 만물은 소생하여 녹음을 이루어 산천 초목은 푸르러서 울림은 푸르름이여 여름들력 개구리 울음소리 음매거리며 엄마 찾는 송아지 울음소리 한가로이 풀을 띠끼는 목동은 소고비 검어지고 한가로이 바라보는 네 모습이 부럽구나. 계절따라 발길따라 청산을 넘어로 반겨줄 사람없이 가다보니 보리타작하는 집 찾아서 점심한끼 구걸하니 잠시 뒤면 먹는다며 보리토매 날아 달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