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커피향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지영은 빙그시 혼자 웃는다. "ㅎㅎ너말야~" "음?....." "사람 놀래키는 재주 있더라?.." "뭐? 하하하..미안하다.." "넌 그렇게 술을 마셔야만 용기가 나나보지?" "ㅎㅎ그런가봐~..난 왜그렇게 너앞에만 서면 주눅이 드는지 모르겠어" "칫~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게 말이다..하하..너 증말 오래간만에 제대로된 말 하는구나.." "뭐라구? 너 죽을래?" "그래..소원이다 너 손에 죽는거..." "어머머..쟤 말하는것좀 봐..." "하하하..." 둘은 모처럼 큰소리로 함께 웃는다.. "지영아~" "응?" "우리 옛날에 가봤던 곳 함 가볼까?" "어디?"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갔었던 시골저수지.." "어머..거기? 아직도 있어?" "그럼~." "그러자~ 나도 거기 함 가보고 싶었는데..ㅎㅎ" 둘은 모처럼 동규가 살았던 그 시골 동네를 찾았다. 해는 서서히 지고 붉은 노을이 저수지를 물들이고 있었다. 둘은 그때처럼 나란히 둑가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동규야~" "응.." "여긴 하나도 안변했구나.." "그래.." "정말 그대로네.." "음..우리만 이렇게.. 변해서 왔군...." "ㅎㅎㅎ그러네.." "동규야~" "응.." "옛날 생각난다.." "무..슨...." "너가 여기서 날 안아보고 싶다고 했었지.." "음..그랬었지..ㅎㅎ" "나말야..그때 너가 참 고마웠다?" "뭐가?" "내 말을 잘 이해해 주어서.." "ㅎㅎ내가 바보였지뭐.." "무슨소리야..너가 그만큼 날 아껴줬다는게 난 얼마나 고마웠는데.." "난....후회스럽다!....." "동규야~ 너 왜 그래.. " 자꾸만 동규는 말끝마다 어린아이처럼 심통을 부린다. "그렇게 널 아꼈는데...서랍속의...사과처럼...." 차마 다음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동규는 애매한 풀잎들만 하나하나 뜯어 허공에 뿌리고 있었다. 그런 동규의 모습을 보자 지영은 마음이 더 아파온다. "동규야.." "음......" "너한테..나라는 사람은.." "....." "서랍속의 사과밖에 안되나봐.." "......" "영원히..." "그게.. 무슨소리야 지영아!..." "나.. 이젠말야...널. 못..만날것 같아" "뭐라구??..왜??.." "이렇게 너 만나는거..내자신이..더 이상.. 감당할수가 없거든.." "지영아!! 왜그러는데..이렇게 만나는게 뭐 어때서..응?" "몰라..그냥..사실 ..내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한것 같고..... 용납이.. 안돼.." "지영아~.." "동규야..미안해.." "너..또..날 외면하는거니?" "동규야..우리..영원한 친구사이로 남자.." "친구? 하하하..." 지영은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이 바보야..그럼 이제와서 나보고 뭘 어쩌라는거야..` 지영은 그렇게 소리내어 말하고 싶었다. 소리내어 웃던 동규가 독백처럼 조용히 말을꺼낸다. "넌..나를..세번...버리는구나..." "........." "그때도 그렇게 너맘데로 가버리더니.. 지금 또.." "미안해...." "넌 정말... 나쁜 애야.." "그래..난 참 나쁜애인것 같아..." "넌 뭐든지..뭐든지..네 맘데로군.." "동규야...정말...미안해.." "ㅎㅎ아냐....미안하긴.." "....." 동규는 잠시 깊은 숨을 들어마시곤 애써 웃는다. "지영아~" "......." "그래도...그래도..난..행복하다.." "....." "내가 죽을때까지 너 하나만큼은.." "...." "내 가슴에 묻어두고 갈수 있으니까.." "....." "지영아..넌말야.. 나의 첫사랑이자..짝사랑...인 것 같다.." 지영은 소리없는 눈물을 몰래 삼키며 마음속으로 동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냐 동규야..나도..나도.. 너를..사랑하고 있었나봐.. 이렇게..이렇게.. 내 가슴이 아픈거보면..... "지영아..." "으응?" "너.. 그대신 나하고 약속..하나만 해줄래?.." "무슨...약속?" "다음생에..다음생에..다시 태어나면.." "........." "그땐 꼭 나하고 결혼해 준다고!.." "....." 지영은 차마 동규의 촉촉한 눈빛을 바라보지 못한채 고개만 끄덕인다. "너 꼭.. 약속하는거지?" "응.." "너 그때도 나 이렇게 또 버리고 떠나면.. 죽여 버릴꺼야..알았어?" "으응....알았어.." "지금처럼 똑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야돼..알았어?알았냐구 이바보야" "그..래....." 동규는 차마 흘리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큰소리로 외치듯 말하곤 지영을 소리없이 힘껏 안았다. 저수지 언덕위에서 동규는 그렇게 지는해와 함께 지영을 오래동안 안고 있었다. 이젠.. 다시는.. 보지 못할..사람이기에.. 이 생에선 다시는.. 안아보지 못할..사람이기에.. 죽어서..죽어서..다음생에서나..... 만날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에.. 빨간 노을보다 더 진한 서러움으로 동규는 그렇게 오래..오래 지영을 귀하게 보듬어 안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후 동규에게서 마지막 문자 메세지가 왔다. "나는 어제 당신의 친구로 전락 하였다고 슬퍼 하였는데.. 오늘 보니 나는 당신의 친구로 승격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