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긴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다시 모여든 지영이와 반 아이들.. 모처럼 만에 만난 소녀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교실안이 온통 소란스럽기만 하다. 순간 방학 때 캠프 다녀 왔었던 시골에 사는 선미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지영에게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동규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야!지영아..너 말야.. 미팅 안 할래?.." "미팅? 갑자기 왠 미팅?" "웅 실은..우리 동창 중에 동규라는 얘가 있는데말야.." "동규?" "응..걔가 그때 너 우리 동네에 캠프 왔었잖니.." "그런데?" "그때 동규가 널 보고는 첫눈에 반했나 보더라..ㅋㅋ" "뭐라고?.. 언제.. 날 봤데?" "웅~ 밤에 숙소에서 널 봤다든데..너 꼭~ 좀 만나게 해달래.." "참내..자쉭~ 동규라는 얘.. 눈이 꽤 높은 모양이지ㅋㅋ?" "웅~ 마쟈 걔가 좀 눈이 높긴 하지.." "야~ 얼굴은 어때? 키는 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어~ 공부도 꽤 잘해~" "그~~래? 음...그럼 만나봐?" "동규가 미팅하게되면 너하고 꼭 파트너 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ㅎㅎ그래 알았어..." 지영은 그렇게 약속한 며칠 후.. 가벼운 마음으로 선미가 전해준 미팅 장소로 향했다. 반친구 5명과 동규 친구들 5명은 시내에 있는 작은 제과점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잠시 어색한 침묵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순간 선미는 지영의 옆에 앉아 귓속말로 동규가 누군지 넌지시 이야기해 주었다. '음..시골 애 치고는 꽤 도시적으로 잘 생겼는데..' 지영은 동규의 첫 인상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선미가 말한데로 무척 큰 키에 서구적으로 잘 생긴 외모가 첫 눈에도 지영의 마음에 호감이 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지영은 동규라는 아이가 왠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왠지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마주앉아 소리없이 눈 인사만 주고 받고는 이내 모두들 서로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명성고등학교 2학년 김 동규입니다.." "안녕하세요..최 지영이예요.." 그렇게 다들 서로의 소개를 마치자 주선자인 선미가 나서서 여학생의 소지품으로 파트너를 정하자고 제의한다.. 탁자위에 여학생들의 소지품들을 올려 놓고는 남학생들이 그 소지품을 선택하면 바로 그 소지품의 주인과 그 날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이미 동규는 지영의 소지품이 볼펜임을 알고 있었다. 주선자인 선미가 이미 동규에게 귀뜸을 해 주었기에.. 남학생들은 잠시 그렇게 서로에게 기회를 양보하려는 듯 시선이 머물고 있던 그 짧은 순간에 그만, 동규 친구인 병찬이가 먼저 지영의 소지품인 볼펜을 집어 드는게 아닌가.. 당황한 동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영이와 선미 역시도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볼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시 하자.." 동규의 거침없는 제안에 모두들 아무 대답이 없다. 모두들 동규가 왜 다시 하자는건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머슥해진 동규는 소리없이 멋적게 웃으며 볼펜을 집은 병찬이의 팔을 툭 건들며 "얌마..내가 그 볼펜 잡으려고 했는데 너가 먼저 잡으면 어떻게 하냐?" "야~ 그런게 어딨냐.." "에이~ 그러지말고 다시 하자니깐.." 물론 병찬이는 모른다... 볼펜의 주인이 지영임을.. 그저 볼펜에 집착하며 괜시리 억지를 부리는 동규가 괘씸할 뿐이다. 하지만 이내 볼펜의 주인이 지영임을 알게된 병찬이.. 동규와 정반대인 내성적인 성격의 병찬이 역시도 여름 방학 캠프때 소녀들이 묵은 여관방 창문에서 동규와 함께 지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지영을 잊지 못하고 맘에 두고 있었다.. 선미의 말로는 병찬이와 동규는 어릴적부터 아주 절친한 친구라 했다. 순간 동규와 병찬은 서로의 엇갈리는 언쟁으로 둘은 잠시 자리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게 되자, 지영은 그런 모습들을 말없이 바라보며 옆에 앉은 선미와 함께 난감해 하고있었다.. 잠시후에 제과점 안으로 들어온 동규와 병찬의 어두운 표정을 보곤 지영이가 말을 건냈다. "우리 이런거 정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함께 이야기 나누다 헤어지기로 하죠.." 동규와 병찬이는 그런 지영의 말에 긍정의 대답인 듯 부정의 대답인 듯,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고 그렇게 그들의 어색한 첫 만남이 시작 되었다. 마치 동규와 지영의 엇갈린 운명을 예언이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