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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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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BY 허브향 2003-04-10


19.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주원의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한 주형은 옷장에서 정리된 속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은 청결했고, 주원의 향기가 가득했다.
선반위에는 주원이 쓰는 바디로션이며, 로션, 빗, 샴푸, 깨끗하게 말린 수건 그리고 생리대까지...

주형은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더운물이 피로를 쫓아 내듯 온몸을 휘감으며 떨어져 내렸다.
주원이 사용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바디로션을 몸에 바르고,
주원이 사용하는 치약으로 치아를 닦고,
마지막엔 주원이 개켜둔 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뿌연 수증기로 가득찬 거울을 손으로 슥슥 문질러 닦으며 면도까지 했다.

욕실에서 나가자 주원은 침대위에 누워 큰눈을 껌뻑 거리며 말했다.

"일찍도 일어났네"
"나 원래 잠이 없잖아"
"...그래두. 피곤해 보이는데..."
"체력하면 나라구! 걱정 붙들어 매고.
오늘 진해나 가볼까?"
"관둬요! 아저씨. 가는 교통길이나 알어?
요즘 벚꽃 놀이 때문에 복잡해. 길 잃어버린 양 되지 말고 우리 집에서 쉬자구요"
"야, 그런것도 모두 추억이야."
"... 나 오늘 몸 컨디션 꽝이야"

주원의 옆으로 주형이 조심스럽게 누웠다.

"많이 안좋아? 감기 몸살인가?"
"그냥. 속이 좀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네"
"집에 약 없어? 약사올까?"
"아니 관둬. 그냥 쉬면 될꺼야.
어디 나가고 싶으면 태윤 아빠 한테 연락 해봐.
주형이 너랑 바다 낚시 한번 하고 싶다던데...
그쪽으로는 태윤 아빠가 전문간가봐"
"너없이 무슨 재미로"
"피! "
"아마 나 없이도 낚시와 회맛에 입이 연신 귀에 걸릴껄"
"...너 있음 몰라도 그렇지 않고는 싫다"
"철거머리같애"
"그래도 난 좋아"
"그런데 주형아"
"응?"
"넌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냥."
"나? ... 내가 외아들이니깐 아들도 좋구. 애교 많은 딸도 좋구.
솔직히 둘다 있음 좋겠다. 욕심이 많은건가?"
"많은거지! 요즘 여자들 그런거 안먹혀.
너 장가갈 때 니 와이프 될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요구 하지마"
"..."

가끔 이렇게 주원의 말로 상처 받을 때가 있다.
주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얘기 한 것 이겠지만...
아주 가끔 미래에 대해 얘기 할 때 서로의 배우자를 제 삼자로 지목 한다는 것. 얼굴도 이름도 어느 아무것도 모르는 이로 지명 한다는 것.
아주 사소할 수 있지만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세상 사람들은 잊고 살고 있다.

"면도했지?"
"응"
"깔끔해 보인다"
"그래?"

주형은 장난스럽게 주원의 뽀얀 피부에 자신의 얼굴을 부빈다.
주원은 간지럽다고 연신 깔깔 거리며 손으로 거부한다.

"따갑다"
"다 그런거야."
"예전에 미국 살 때 아빠 술한잔씩 하고 들어올때면 꼭 내방에 들어오셔서 내 볼에 입맞춤을 해주곤 하셨는데...
그때 아빠 얼굴이 내 얼굴에 닿을 때 마다 얼마나 따가웠는데.
아빠 무안해 하실 까봐 따갑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냥 눈 꼭 감고 자는 척하긴 했는데. 다음날이면 얼굴이 붉게 되고"
"그게 다 딸사랑인거야"
"... 알지"
"나도 나중에 그런 아빠가 되야 겠다"
"그래. 넌 정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