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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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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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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BY 허브향 2003-04-02


18.

"누구세요?"
"..."
"주형아. 나중에 연락할께. 누가 왔는데..."
"빨리 문열어! 주원영!"

현관 밖에서 그리고 인터폰을 통해 주형의 목소리가 또렷히 들려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주형이가 내 눈앞에 서있었다.
노란빛의 프리지아와 양손 가득 생크림 케익이며, 피자 그리고 과일 바구니 까지...

"들어가도 되는 건가?"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되긴... 병원 마치고 이렇게 내려온거지"
"... 연락도 없이"

급히 현관 앞의 거울 앞에 섰다.
핀으로 겨우 고정되어 있던 머리를 정리하는 찰나 허리에 손이 감겨 오는 따스한 느낌이 전해 졌다.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 듣기에 나쁘진 않네"
"보고 싶었어"
"나도. 그래도 내일 오지 그랬니"
"왜 와서 별로야?"
"별로라기 보다 무엇보다 너 피곤하잖아"
"어차피 일요일 아침이면 빨리 올라가 봐야 되는데..."
"집에는 뭐라고 하고 온거야? 설마 나 만난다고 하진 않았지?"
"걱정 붙들어 매. 연수 가야 한다고 했으니깐"
"꼬리가 길면 밟힌다. 매주마다 뭐라고 하고 올껀데?"
"연수간다. 여행간다. 친구 만나러. 또 한달에 한번쯤은 너 만나러 간다고 하면 되는 거구."
"차라리 부산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하지 그랬니?"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내일 우리 하루종일 집에서 비디오나 보구, tv보구 또 피자 먹구 과일 먹구 생크림 케익 먹구 백수 생활을 즐겨 보는 거야. 어때? 내 아이디어 좋지?"
"그래. 굿아이디어야!"

주형이 샤워를 하는 동안 와인을 준비했다.

"웬 와인이야?"
"내려 오느라 고생 했지? 이거 마시고 피로 좀 풀라구. 긴장도 풀고"
"그래야 겠다. 요즘 병원 인수 받는다고 좀 스트레스 받은게 아냐.
은행 대출 이자도 걱정이구"
"아빠한테 부탁 하지"
"... 내 힘으로 벌어서 너 먹여 살릴라구"
"눈물겹게 고맙다"
"그러니깐 한눈 팔지 말고. 내맘 알지?"
"농담이었지."
"빨리 침대에 눕고 싶다"
"시트 정리도 안했는데... 나는 내일 아침 천천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나저나 내일 병원 문 안열어?"
"수정이 있잖아. 같은과 동기!"
"그 예쁘게 생긴 의사?"
"수정이가 예쁜 얼굴인가?"
"그 정도면 빠지지 않지. 동업하는 거야?"
"아니. 한달정도 도와주기로 했어. 그리고 난 뒤 수정이도 압구정동에 치과 하나 낼 생각인가봐"
"... 그렇구나"
"왜 질투나?"
"질투 아냐."

침대까지 상황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이렇게 말꼬리 물고 늘어지다가는 밤새도록 얘기만 해야 될 것 같아 먼저 침대에 누웠다.
침대 시트에서 아주 은은한 주원의 향이 흘렀다.

"좋다. 너도 여기와서 누워라"

주원이 조심스럽게 내 옆에 와서 누웠다.

"부산 생활은 적응 할만 해?"
"그저 그래. 근데 말투가 좀 웃겨.
경혜가 쓸때는 몰랐는데... 글쎄 대형 매장 가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야. 경상도 사투리가 좀 억센면이 있잖아"
"난 사투리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정감 있어 좋더라"
"그건 그래."
"다른건 없구?"
"경혜가 있으니깐 많이 도와주지. 태윤아빠도 그렇구"
"서울 올라가기 전에 인사 드려야 하는데"
"인사 안해도 이해 할꺼야"
"... 그래두 사람 도리가 그게 아니지"
"나 졸려"
"그래. 내가 팔베게 해줄께. 이리와"

조심스럽게 내 가슴으로 머리를 대보는 주원을 가슴 깊이 사랑함을 주형은 다시 깨닫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내내 주원 생각 뿐이었다.
하루에 서너번은 통화했지만 그래도 걱정 되었다.
누군가 집착이라 말한다 해도 나는 강하게 부정할 수 있다.
사랑이니깐... 걱정 되고 함께 있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사랑이니깐...

"주원아 자니?"
"음..."
"잘자 주원아"

잠이 오질 않았다.
주형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서 인가. 아님 이 상황이 너무 웃겨 믿기지 않아서 일까.
주형이 한테 어떻게 얘기 하지.
내가 경혜 눈치 때문에 생리대를 사긴 샀는데...
이젠 쓸모가 없어졌는데... 아마 내 생각에는... 맞는 것 같은데...
난 주형이를 사랑해. 그래서 ... 이런 일이 벌어졌어.
근데 난 불행하게도 아빠도 너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