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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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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BY 허브향 2003-03-26

15.

"나 해운대 앞이야. 나와"

가디건 하나 걸치고 급히 뛰어 나왔다.
주형은 두 눈을 꼭 감은채 시트에 기대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차창을 두드렸고, 창이 내려졌다.

"타"
"들어가. 경혜 기다리고 있어"
"빈손인데..."
"이 앞에 슈퍼가서 간단하게 사오면 되지. 빈손도 괜찮구"

1층 양옥집은 꽤 넓었다.
깨끗한 푸른빛의 도배지가 사람의 피로를 풀어 주는 듯 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서주형입니다. 약소한데..."
"한경혭니더. 이런거 안챙겨 주셔도 되는데."
"하하, 빈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요"
"우리 그이 지금 마당에서 바비큐 하고 있는데 못 봤습니꺼?"
"그래요?"
"우리 남편이 좀 약한데... 주형씨가 좀 도와주이소"
"예 힘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주형이 마당에서 경혜의 남편과 바비큐를 굽는 동안 거실 창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홍차 한잔을 마셨다.

"뭐하는 사람이고?"
"치과의"
"어머, 기집애! 능력 좋다. 사람 성격도 좋아 보인다.
태윤 아빠 내성적이라 낯을 좀 가리는데... 저렇게 잘 어울리는거 보면 신기타"
"경혜야. 한 남매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자다 봉창 두드리나? 장난 하나?
한 핏줄 받고 태어난 남매가 사랑은 무슨 놈의 사랑"
"그럴 수도 있을 꺼야. 한 핏줄이 아니면 그럴수도 있을 꺼야. 그지?"
"주원아... 니 무슨일 있나?"
"나 어쩜 좋아. 무서운데 어쩜 좋아"

다 말했다.
속 시원하게 말했다.
경혜니깐... 믿고 말했다.
경혜는 1년 뒤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그동안 부산에 있으면서 독립을 하고,
주형과 주말이면 만나면서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혜는 주원의 작은 어깨를 두들려 주었다.

엄마 같은 친구다.
항상 곁에 있어주는...

"걱정 말그라.
내가 다 해주구마. 니 힘든거 다 안데이.
니 인생이 와이래 꼬이노? 어?
내 속이 다 탄다. 서울 올라가지 말그래.
여서 쉬면서 미국 갈 준비 하자"
"..."
"알?M제? 다른말 말고. 내랑 가는기다.
내 이번에 가면 안나올 작정이다.
우리 태윤이 교육도 있고, 어학원 정리하면 꽤 많은 돈이 나올 것 같은데... 내가 니 첼로 공부 다시 시켜주구마."
"니가 왜?"
"내가 너거 아버지 한테 신세 많이 졌다 아이가?
내가 시켜주께. 그 정도는 해줘야 내 맘이 편하다"
"첼로...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못할께 뭐 있노? ... 다시 해야 된다.
그래야 너 혼자서 미국에서 살아 갈꺼 아니가?
나는 우리 부모님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갈껀데... 니는 학교 땜에 뉴욕으로 가야 겠제?"
"그때 뭐라고 하지?
내가 주형이 한테 또 얼마나 큰 상처를 줘야 하는지 무섭다.
나 몰라라 하고 떠나면... 나는 편하겠지만 주형이는 그게 아니잖아"
"...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 사이 주형이 바비큐를 들어보이며 나오라고 손짓 했다.

"나가자. 뱃속이 든든해야 머리도 굴러 간데이"

저녁 식사 자리는 꽤 유쾌했다.
술자리로까지 이어져서 미국 생활 이야기 까지 흘러나왔다.

"그럼 뉴욕에서 주원이를 만난거예요?"
"그러믄요. 주원이는 얼굴도 이뻐서 백인들 한테도 인기도 많았으예.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데..."
"하하, 그럼 저는 복받은 사람이네요"
"하므요. 주형씨는 복받은 사람이지예."
"주원이가 첼로를 어깨에 메고 복도를 지나가면 남자들이 하나둘 쓰러 질 정도였어예.
내가 늦게 유학을 가서 영어가 좀 힘들었는데.... 그때 주원이가 개인교습 형식으로 영어도 가르켜 주고... 우리 부모님이 샌프란시스코에 계셔서 주원이 집에서 하숙했다 아닙니꺼?"
"저도 기회가 된다면 뉴욕에 가고 싶네요.
주원이 손을 잡고, 자유의 여신상에 서서..."
"서서 뭐 어쩔낀데예? 키스 세례라도 퍼부을라고예?"
"경혜야~"
"와이 가시나야. 니도 원하는거 아이가? 하여간 내숭은..."
"키스세례도 좋죠. 하지만 먼저 우리에게도 자유를 주세요!라고 크게 외칠껍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