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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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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BY 허브향 2003-03-22


14.

봄이 이제 우리의 삶에 일부분으로 다가 온 것 처럼 어젯밤의 기억이 내 삶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그걸 받아 들였고, 거기에 대해서 후회 하지 않는다.
다만 아빠에게 새엄마에게 그리고 나를 목숨과 바꾸신 하늘의 엄마께 죄스러울 뿐이다.

"속은 괜찮아?"
"괜찮아"

묵묵히 운전하는 주형을 향해 던진 한마디에 주형도 간략히 대답했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로 가면... 거기로 가면... 다시 새엄마를 다시 아빠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아무말없는 주형을 바라 보았다.
저 얼굴속에서 나는 어젯밤 주형의 외로움을 그리고 그의 향기를 맡았다. 어찌나 아름답고 따스하던지...
사람이 죽을 때 가장 아름다웠을 적을 생각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죽게 된다면 나는 어제를 기억 할 것이다.
다른 이와 결혼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사는 것보다 어제의 기억. 주형과 하나가 된 어제!
그 어제를 기억 할 것이다.

"우동 한그릇 먹고 가자"
"배 안고픈데..."
"아침도 걸렀잖어"
"..."

휴게소에서 간단히 우동을 먹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주형은 내게 예전처럼 웃어 보였다.

저 웃음의 의미가 무얼까.

"같이 부산갈래?"
"..."
"그쪽에 친구 있댔잖아"
"...폐끼치고 싶지 않아"
"같이 가자"
"..."

아무말 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각자의 짐을 챙겨 차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말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이 돌파구가 된다고 주형은 믿었던 걸까.

"병원에서 나오는 대로 연락 할게"
"그럴 필요 없어."
"..."
"신경쓸 필요 없다구. 할머니 병간호 잘 해드려"
"...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
"..."
"이러는 난 뭐 편한 줄 아니?"
"..."
"부탁이다."
"..."
"병원에서 나오면 연락 할께. 같이 갈때가 있어.
니가 친구한테 폐끼치는 것도 나 마음에 걸리구."
"주형아"
"어"
"대신 아빠한테 부산 내려온거 비밀로 해줘"


해운대 근처에 주원을 내려주고 부산 대학 병원쪽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를 시키고, 급히 병실로 뛰어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에 병실을 알아 둬서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임순자]라고 쓰인 병실에 들어서자 아버지와 부산에서 외할머니를 모신 외삼촌이 계셨다.
어머니와 외숙모는 저녁 준비를 하러 나갔다고 말씀해 주셨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주형은 가슴이 찢어졌다.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들이며 주형은 크게 웃어보였다.

"할머니! 주형이왔어요. 할머니 손자! 아시겠죠?"

아버지와 외삼촌은 자리를 피해 주셨다.

"우리 할머니 여전히 고우시네.
손자 보고 싶었죠?"

할머니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머니! 저 치과 의사 선생님 이예요
아세요? 저 가운입은 모습 보고 싶으시다고 항상 얘기 하셨잖아요?
증손자 보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이렇게 편찮으시면 어떡해요?
약속 어겼어요. 저도 약속 못지키겠으니깐... 우리 같은 거예요.
저 원망 하지 마세요. 하하. "

할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내비치셨다.

"주......형아..."
"네"
"잘....살아... 알...겄제?"

할머니는 쉰목소리로 힘겹게 내뱉으셨다.

"그럼요. 잘 살께요"
"결....혼...도 하고"
"..."

할머니 약손가락에 끼고 계시던 가락지를 빼어 내 손에 지어 주셨다.

"여자..."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주원영도 많이 기뻐할꺼예요"

이 반지는 할머니께서 내게 주시는 마지막 유산일 것이다.
주형은 금가락지를 들고 병실에서 나왔다.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쉬거라."
"네"

주형은 다시 급해졌다.
자신을 기다리는 주원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