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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BY 액슬로즈 2003-04-09


4.

경인은 선애와 함께 백화점 신관이 보이는 맞은편 건물 1층 호프집에 앉아 있었다.
12월이라 그런지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케롤송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잠깐 들렀던 서점 진열장에는 온갖 무늬의 카드가 난무했다.

[야, 이렇게 갑자기 시내에 나오니 좋기는 하다만, 예고없이 가게를 비워도 괜찮을까? 단골 손님들 떨어지면 어떡하라구!]

선애답지 않게 걱정을 하자 경인은 웃어 넘겼다.

[게다가 니가 직접 진희까지 부르고...너 진희랑 화해하려고 그러지?]

선애는 싱글거렸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랴!

[경인아. 잘 생각했다. 사랑이야 끝나도 더 나은 사랑이 오지만 우정은 한번 깨지면 그걸로 끝인거야. 좋은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고]

주절이 주절이 선애가 쫑알대지만 경인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 보냈다.


땡그르르......
출입문이 열리고 진희가 들어섰다.
진희는 빨간 코트를 입고 있었다.
진희의 걸음을 따라 남자들의 시선이 어김없이 따라 붙었다. 외모며 패션이며, 어디 한군데 나무랄데가 있어야지...

나무 계단 두 개를 올라와 진희는 선애 옆에 앉았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 옆의 낮은 칸막이위에 걸쳐 놓았다. 여유롭고 당당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진희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왜 하필 이런 어수선하고 답답한 곳이야?]

짜증섞인 말이었다.

[왜, 좋잖아? 옛날 분위기도 나고...또 젊은 기분도 들고]

선애가 대꾸를 했다. 그러나 경인은 알고 있었다. 진희는 단지 어색한 상황을 모면코져 그저 해 본 소리라는 걸...

[별일이네. 경인이 네가 나를 다 불러 내고...]

늦은 밤 진희는 경인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었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었다. 통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진희는 전화를 귀에서 뗄수가 없었다.

[경인이가 그 김 민성이란 남자에 대해 얘기를 좀 하고 싶대]

무슨 비밀 얘기도 아닌데 선애는 들뜬 음성으로 대변하 듯 말했다.

[얘기할 게 뭐가 있니?]

[우선 뭣 좀 시키자]

진희의 톡 쏘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경인이 종업원을 불렀다.
생맥주를 시키고 포테이토를 시키고 셀러드를 시키고 골드 스페샬이란 걸 시켰다.

[민성씨 얘기라면 들을 것도 없어. 니들이 그 사람,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으니깐...]

생맥주가 나오자 한모금 쭉 들이키고 나서 진희가 담담하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만나도 내가 만나고 헤어져도 내 스스로 헤어질테니깐 잔소리들 하지마]

[야가 말하는 것 좀 봐라! 니 지금 그게 친구인 우리한테 할 소리가?]

선애는 섭섭한지 진희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보니 이 자리, 경인이 네가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 선애가 먼저 제안한 자리구나. 선애가 경인이 너한테 나를 설득하라고 그런 모양이지?]

[야가! 생사람 잡고 있네. 이 자린...!]

[아니, 내가 마련했어]

경인이 조용히 입을 열며 진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너와 나에 대해 얘기하려고, 내가 널 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