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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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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BY 액슬로즈 2003-03-27


유 경인과 강 재민.
강 재민과 유 경인.
두 사람은 그렇게 시간이 정지한 듯,
마치 세상엔 두 사람만 존재하는 냥, 그렇게 서로를 응시한 채 서 있었다.
많은 질문과 의문이 혼란스레 경인의 눈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재민의 눈은 그저 원망이 가득한 채 경인을 보고 있었다.

떡. 하니 굳어버린 경인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선애가 경인의 눈을 쫓아 시선을 돌렸다. 얼른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멀뚱하던 선애는 한참후에야 무언가를 알아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그머니나!]

외마디 내지르는 선애의 말에 의아한 눈을 하고 진희 또한 뒤돌아 보았다. 동시에 뒤돌아 보던 민성이 경인만큼이나 놀란 눈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민성의 움직임이 재민을 경인에게서 떼어 놓았다. 무심코 눈을 돌리던 재민은 민성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아니, 형이 여긴 어쩐일로...!]

재민의 놀란 음성이 먼저 세어 나왔다.

...형?...그럼 진짜 쌍둥이란 말이야?...

경인은 그렇게 속으로 내밭았으나 퍼뜩,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하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쌍둥이세요?]

신기해 하고 호기심 생겨 하는 건 선애 뿐이었다. 진희도 경인 못지않게 황당해 하는 눈치였다. 민성은 자신이 쌍둥이란 소리를 진희에게 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할 필요성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져 민성의 심사는 편치않았다.
재민이 먼저 움직였다.

[어이, 재민아! 여기야!]

안쪽 현기 선배가 외친 소리였다.
놀라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인을 정신없게 하고 있었다. 세상 좁다는 소리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경인은 진심으로 깨치고 있는 순간이었다. 강 재민, 그가 현기 선배와 동기라니...!
재민이 현기 선배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그의 눈이 경인에게 머무는가 싶더니 민성에게로 향해졌다.

[이런데서 형을 만나다니...]

[잠깐 얘기 좀 하자!]

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성이 재민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세상에, 세상에! 쌍둥이라니...진희 니는 알고 있었나?......몰랐나?...야, 우습다. 쌍둥이인데 어째 저리도 분위기가 다르냐?]

선애는 혼자 신이 난 듯 재잘댔다.
선애의 말에 경인도 진희도 동감을 했다.

민성은 세련되고 깔끔한 정장 스타일이고 재민은 자유스럽고 산뜻한 케주얼 스타일.
민성은 단정히 손을 본 짧은 머리에 안경을 썼으나 재민은 긴 듯한 굽슬한 머리를 그냥 손으로 쓸어 넘기고 있었다.
덩치는 재민이 큰 편이나 키는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민성은 근접하기 힘든, <관계자외 출입금지> 같은 기분이요,
재민은 <무사 통과> 같은 편안하고 개방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재민과 민성이 나감으로써 경인에게는 진정될 시간을 벌어 준 꼴이 되었다. 덕분에 그들이 다시 들어 왔을 때 경인은 다소 안정된 눈으로 재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재민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는 걸로 끝으로 현기가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선애와 진희가 얼떨결에 맞추어 답례를 했으나 경인은 그런 재민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어이없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뜨끔했다.
재민이 자신을 외면한다는 느낌이랄까?...

[갑시다, 진희씨]

강제적으로 민성이 진희의 팔을 잡아 일으켰고 진희는 아까와는 다르게 순순히 그를 따라 나섰다.

[전화할께]

많은 물음표만 남기고 재민과 민성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긴장감이 돌던 자리에 이제는 무언가 허무한 느낌만이 맴돌았다. 경인은 재민에게 등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선애가 앞에 와 앉았다.

[야, 쌍둥이라면서 무슨 표정들이 저러냐? 꼭 원수지간처럼...특히 김 민성, 그 사람 인상은 진짜 밥맛이지 않냐?]

반응이 없자 선애는 고개를 기울이며 경인을 빤히 보다 툭. 하고 쳤다.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꼭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나간 사람처럼...왜 그래! 나 모르는 무슨 일 있냐?]

경인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선애에게 한단 말인가! 두 번 다시 볼일 없겠다 싶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비밀스런 얘기를 고해성사하듯 다해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미친 듯 사랑을 나누었다는 걸...
그 남자를 다시 만났는데, 알고 보니 진희 약혼자와 쌍둥이라는 거...

경인은 아찔한 기분이었다. 마치 벌거벗고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느낌었다. 재민에게 한 얘기들을 다시 거둬 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 다시는! 다시는 재민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실했다.
선애가 뭐라고 뭐라고 계속 주절대고 있지만 경인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언니! 저 분이 언니를 찾으세요]

종업원인 정아의 말에 경인은 심장 내려 앉는 소리를 들었다. 찬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현기 선배야. 선후배 핑계삼아 서비스 어쩌구 저쩌구 할 게 뻔해]

선애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키들거렸다. 다행이라 여기며 경인은 선애를 대신 보낼까?...했으나 오히려 그것이 재민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강 재민과의 인연은 그날 하룻밤이 전부다!!!

경인은 게속 그 말을 되뇌이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미소를 띄며 경인은 현기의 고교 모임이 이루어지는 테이블로 갔다. 현기가 경인을 소개하자 모두들 올려다 보며 휘파람을 불거나 악수를 청하기도 했지만 재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충격 비슷한 감정이 일순 경인을 감성을 건드리고 지나 갔으나 이내 경인은 떨쳐버렸다.

...그래...서로를 위해서는 모르는 척 하는 게 최선이야...

재민 또한 자신과 같은 심정이란 생각을 하며 경인은 그 시간 이후로
재민에 대한 신경을 끊었다. 현기가 다시 자신을 부르는 일이 없도록 경인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선애의 수다도 재민을 외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난 인연이야 어찌 하겠는가 마는 그 인연을 그것으로 끝을 내는 게 잘못된 만남에 대한 정리가 아니겠는가.


10경에 선애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 갔고 현기의 일행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2차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나가면서 또 들리겠다는 말을 남기며 경인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경인과 재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고개만 약간씩 숙여 보이는 걸로 끝을 맺었다.

...이제는 정말...다시는 보는 일이 없도록 해요...

경인은 매몰차게 속으로 외쳐 보았다.



그 날 이후...
경인은 까닭없이 며칠을 앓았다.
지독한 몸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