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가...니한테 어떤 소리 했는지 들었어]
[......]
[진희는 지가 결혼하면 경인이 니...!]
[그런 얘기라면 그만해]
담담하니 경인이 선애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나 선애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 나한테는 너도 진희도 똑같이 소중한 친구다. 그래서 친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구. 넌 진희가 이 결혼을 하려는 까닭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구경하듯 뒷짐지고 보고 있어. 진희가 불행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말려. 후회하지 말고!]
[넌 진희가 만난다는 남자, 본 적이 있니?]
빈 잔을 내려 놓으며 경인이 나즈막히 물었다. 시선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제리에게 고정시킨 채.
[만나보고 싶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진희를 사랑하는지...궁금하지 않아?]
[......!]
[난 보고 싶어...진희가 택한 남자...한 번 데려 오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경인은 솔직히 진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인에게 있어 진희 또한 선애만큼 소중한 친구인 건 사실이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친구...그러나 선애만큼 허물없는 친구는 아니었다. 선애가 기분좋은 친구라고 하면 진희는...가슴 쓰린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사실...궁금하기는 해. 난 진희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라고 속으로 염려를 많이 했거든. 그렇다고 잘못된 결혼으로 인생을 망치는 건 볼 수가 없어]
[...알어...하지만 무턱대고 말리는 것도 우습잖아. 그 남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진심으로...]
[내가 전화해서 데려 오라고 해볼까?]
경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선애는 이미 카운트로 가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음악이 바뀌었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야야, 조만간에 들르겠대. 같이!]
호들갑을 떨며 선애가 다시 앞에 와 앉으며 말했다.
[니들 이 기회에 묵은 감정, 아픈 감정 싹 정리하고 털어 버려라. 모든 건 다 운명으로 돌리고 말이다. 진희는 그 교생이 지 땜에 죽었다고 후회를 많이 하더라. 악몽에도 시달리고...!]
[그 얘기라면 하지마!]
단호하게 경인이 경고했다. 선애는 경인의 시선에 흠칫했다.
[알았어...기집애, 눈초리가 무슨 얼음 쪼가리같이 차냐? 얼어 죽겠다. 이럴땐 친구가 아니라 웬수같어, 웬수!]
[......]
[그건 그렇고 니 현기 선배 알지? 그 선배가 자기네 고등학교 동창회를 여기서 하고 싶다네]
[...남자들, 이런 까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텐데]
자연스레 화제가 다른 길로 넘어 갔다.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친구들은 아니래. 그대신 늦게까지 있어도 되냐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는데, 니 생각은 어때?]
[상관없어...언제로?]
[응, 이 번 토요일. 그 선배 친구들 중에 결혼 안한 사람이 많다네. 야, 혹시 아니? 숨은 킹카가 있을지...]
하면서 선애는 혼자 좋아서 킥킥 거렸고 경인은 그런 선애를 흘겨 보며 혀를 찼다. 늘 소녀같은 분위기를 잃지 않는 선애를 보면서 경인은 가끔 잃어버린 동심의 활력을 찾곤 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는 그 점에 매력을 느꼈다는 선애의 남편은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선애의 웃음 앞에 무너져 내린다는 게 선애의 말이었다.
행복은 늘 작은 것에서부터,
사사로운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사람들은 가끔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산다...
토요일 오후.
가느다란 은색을 띈 가랑비가 한 줄 두 줄...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겨울비다.
창문쪽, 전망이 좋고 방해를 제일 받지 않는 곳을 골라 예약석을 만들었다. 현기 선배는 오후 2시쯤 들어 섰다. 그를 기점으로 한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페 안, 다른 자리도 거의 다 찼을 무렵 빨간 투피스를 곱게 차려 입은 진희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녀 뒤로 안경을 쓴 키가 훌쩍하니 큰 남자가 경호원처럼 붙어서 있었다.
[저 남잔가 보네...]
선애가 경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흥분과 호기심이 찬 음성으로...
진희가 또박또박...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