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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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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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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액슬로즈 2003-03-10


[아니요...난 오늘 집에 가지 않아요]

느릿하게 한 풀 꺾인 음성이었으나 또릿하게 들려 재민은 한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경인은 그런 재민을 올려다 보며 싱긋이 웃었다.

[미안합니다. 모셔다 드리지 못해서...제가 택시비는 드리고 싶어요.아니, 그러지 말고 재민씨도 여기 호텔서 자고 가세요. 방값은 제가 지불할게요. 그리고...]

[경인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지 압니까?]

[네에...저 취하긴 했어도 정신은 아직 쓸만해요. 아! 오해하셨군요]

하면서 경인이 다시 싱긋이 웃었다.

[저랑 같은 방 쓰자는 게 아니고요...다른 방에서 각자 자고 아침에 로비에서 만나자는 얘기예요. 그 때 제가 약속대로 모셔다 드릴께요. 선택은... 자유에요. 하지만...정말... 지금은 운전을...!]

[압니다. 알아요]

재민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를 가만히 소파에 기대게 했다. 경인은 지금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휴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측은한 마음도 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도 생기고 무엇보다 유 경인이란 한 여자에 대해 남자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호기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녀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여자의 약한 면을 이용해 욕심을 채우기엔 강 재민의 도덕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우선 여기 방을 잡아보죠. 잠시만 기다려요]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으로 올라 갔다. 둘 다 말이 없었다.
15층의 두꺼운 연보라색의 카펫을 밟고 지나 재민은 1505호실 앞에서 멈추었다.

[들어가요. 들어가서 아무 생각말고 푹 자는 겁니다. 알았죠?]

문을 열고 안으로 경인을 들여 보내며 재민은 키를 내밀었다.

[재민씨는 몇 호실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씨익 웃고는 작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내 전화번홉니다. 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연락을 기다린다고 하면 너무 뻔뻔한가요?]

재민은 한번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희고 고른 치아가 보일 정도로.

[전화 줄때가지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어쨌던 다른 생각말고 잠을 청해요. 자고 나면 기분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깐...잘 자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재민이 돌아서자 경인은 뭔가 뭉쿨한 그 어떤 감정이 가슴을 한 번 휘젓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냥 우연히 만나 스쳐 지나 보내기기엔 왜인지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남자...
묵묵히 앉아 모르는 여자의 넋두리를 참을성 있게 성의있게 진지하게 들어주는 남자...
상대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남자...
강 재민.

[재민씨!]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이 입에서 흘러 나와 복도에 메아리를 남겼다. 돌아선 그가 어느새 그녀 앞에 와 섰다. 경인은 침을 삼켰다.

...내...가 왜 불렀을까...

금방 후회하는 마음이 경인을 당황하게 했다.

[내 걱정은 말아요. 남자 아닙니까... 괜찮으니깐 아무 생각말고 들어가서 자요. 문 닫아요. 잠그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그는 경인이 미안해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솔직했다. 그가 그녀를 안으로 밀자 경인은 살며시 그의 팔을 잡으며 조용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재민의 눈동자를 잡았다.
무언의 초대...!
재민이 그걸 읽고는 놀라는 눈치였다. 한동안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고 먼저 그 팽팽한 긴장감을 푼 건 재민이었다.
그가 천천히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서...자요. 우리 둘다 술을 마셨고 경인씨는 지금 혼란스런 상탭니다...훗, 영광으로 여기고 돌아가죠]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거에요.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경인은 진심이었다. 그를 잡고 싶었다. 단지 하룻밤이지만 재민을 그냥 돌려 보내지 말라고 마음속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어떤 거짓도 없이...한 여자가 재민씨를...유혹하고 있어요. 거절을 해도 상관...!]

그의 손이 그녀의 뺨에 가만히 닿았다. 따스했다. 그 온기가 그녀에게로 전해졌다.




그 시각.
<마리아>에선 두여자가 소파를 침대삼아 잠들어 있었다.
테이블위엔 음식물과 술병이 널부러져 있는 가운데 두 여자, 진희와 선애가 이불 한 장씩을 덮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