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는 언제나 그렇듯 손님이 많았다. 사장이 젊어서 그런지 이삼십대의 손님이 대부분이고 와중에 드문드문 사십대 손님들도 찾아 들었다. 그리고 모두 술맛을 알고 술에 관한 예의를 아는 손님들이었다. 그 흔한 시비 한 번 없었던 곳,
<마리아>......
나즈막하고 허스키한 음성으로 tiffany 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kiss you all over... 리메이크 곡이다.
경인이 좋아하는 곡 중의 한 곡이다.
카운트에 있던 선애가 진희를 보고는 대뜸 구석진 자리로 끌고 갔다.
[니, 말해 봐라. 너거 둘이 무슨 얘기가 오고 갔길래 경인이가 말도 않고 휑하니 나갔노?]
[경인이...나갔니?]
뜻밖이란 음성으로 진희가 입을 열었다.
[야가! 지금 니 술 마시고 오는 길이가? 무슨 일이고 도대체! 나도 좀 알자. 니는 이 시간에 술에 취했고 경인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갈 정도로 심각한 얘기가 뭔데?]
[어디로 ...갔는지 몰라?]
[몰라. 휴대폰도 꺼놨어. 걔가 이런 경우가 어디 흔했나]
무거운 한숨이 진희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아늑했다.
<마리아>의 주인은 냉기가 흐르는데 <마리아>는 늘 변함없는 따뜻함과 친근함으로 손님을 맞아 주었다.
[선애야, 양주 한 병 갖고 와라]
[미쳤냐, 니 지금도 취했어!]
[[갖고 와라]
등받이에 기대며 진희는 눈을 감았다. 선애는 입을 열려다 말고는 자리에서 일어 섰다.
경인의 부재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진희는 선뜻 정하지 못했다. 경인이 태연했다면 분명 미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인이 나갈 정도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자 마시고 속 차려]
선애가 진희 앞에 내 놓은 건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냉수였다.
[왕따 당해 죽은 애가 있다는 소리, 들어 봤지? 나 장례 치르기 싫으면 둘 사이에 오고간 모종의 사건 전말을 다 털어 놔!]
두 말 않고 진희는 냉수를 들이켰다. 목구멍을 시작으로 발 끝까지 찬 기운의 짜릿함이 타고 흘렀다.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나 잠깐만 내버려 둘래?...그리고 경인이한테 연락 한 번 더 해봐]
[야들이!......좋아, 조금있다 영업 끝낼테니깐 너 그 때까지 있어라. 얘기 듣기 전에는 너 못 가!]
guns & roses 의 don't cry 가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좋군요, 분위기가]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경인이 말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결혼한 것 같지는 않은데...그래도 모르니깐...결혼 했습니까?]
[상관이 있나요?]
[있지요. 결혼했다면 술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 한 잔으로 끝내고 댁으로 모셔다 드려야지요. 아니면...!]
[남자 문제는 아니니깐 걱정마세요. 유부녀라면 처음 본 남자한테 술 한 잔 하자고 청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그런데 재민씨는 어때요? 혹시라도 제가 오해를 받을 그런 상황은 아닌지...?]
[확실한 솔롭니다]
[다행이네요...그런데 좀 의외예요. 여자분들이 따를 것 같은데...]
[많지요. 하지만 마음에 든 여자가 없더군요]
하면서 재민은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소리내어 시원스레 웃었다.
[어이구, 농담입니다. 사실...일에 쫓기다 보니 데이트할 여유가 없더군요. 이렇게 처녀총각이 우연히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술이나 마십니다. 그런데 둘 다 술에 취하면 운전은 누가...?]
[택시 타죠 뭐... 아니면 새벽까지 마시든지...도중에 가셔도 되고...]
[모처럼 비는 시간인데 도중이라뇨! 까짓것 마셔 봅시다. 참, 주량이 어떻게 됩니까?]
[웬만한 남자 저리 가라니깐 걱정마세요]
[좋습니다. 이거, 오랜만에 마음 통하는 친구를 만난 기분입니다]
둘은 맥주를 가득 따른 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야, 경인이 연락 안돼. 포기해. 걔 성격 몰라서 그래? 지가 연락오기 전에는 어림도 없어]
선애는 <마리아>의 간판 불을 내렸다. 모두들 퇴근하고 카페안에는 진희와 선애 둘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양주 한 병과 과일 안주, 새우튀김과 야채 샐러드, 땅콩 등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선애가 따르기도 전에 진희는 자신의 잔을 채워 먼저 원샷으로 비웠다. 과일 한 조각을 집다만 선애가 어의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연거푸 두 잔을 후딱 비우는 걸 보고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얼씨구, 잘 한다 잘 해. 나도 한 잔 주고 퍼마시든지 해!]
[나, 그 때가 그리워]
선애의 잔을 채워주며 진희가 애잔한 추억의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일 없던 그 때가 너무 그리워]
[지랄... 또 그 놈의 소리. 이젠 지겹지도 않니? 돌아가면? 돌아가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한데? 다 끝난 일 가지고 언제까지 그럴거고? 니, 경인이한테 또 그 얘기 들춰낸기가?]
선애는 잔을 비웠다.
[잔잔한 가슴에 와 또 돌을 던지노? 니가 자꾸 그러니깐 경인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잖아. 아직도 경인이가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게 그 남자 때문이 아니냐]
[알아...안다구...선애야, 나 결혼한다]
[그래 결혼해라. 결혼 해...! 뭐? 겨, 결혼? 니 결혼이라 했나?]
[음...나 좋다는 사람 있어. 나랑 결혼하고 싶어 죽겠대. 그래서 결혼하려고]
[그 얘길, 경인이한테 했냐?]
[놀라지도 않더라. 소름끼칠정도로...웃으면서 축하한다고 하는데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고 서운하든지...]
[축하할 일이네 뭐. 넌 그럼 결혼않고 평생 혼자 살려고 했니? 잘 된 일이네. 좀 뜻밖이긴 하지만...경인이도 그래도 나갔나?...]
[예전에 내가...경인에게 한 말이 있잖아...]
[.....!]
[그 때 내가 그랬어...다른 남자와는 죽어도 결혼 않는다고...경인이에게 또 다른 남자가 생긴다면 똑같은 일이 생기게 해 주겠다고...]
[뭐, 뭐야?!]
하마터면 선애는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 뜨릴뻔 했다. 둘 사이의 일은 다 알고 있다고 장담했건만 ...!
[제가...재밌는 얘기 해 드릴까요? 듣기에 따라서 지루할 수도 있고 유치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경인과 재민은 12시에 카페에서 나와 새벽?膚沮?영업을 하는 호텔바를 찾아 들어 갔다. 의외로 그 시간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도 있고 연인같은 사이도 있고...
둘은 고급 위스키를 한 병 주문했다.
[아주...오래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