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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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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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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액슬로즈 2003-03-02


3.

조심스레 재민이 내민 손을 잡았다. 따스했다. 투박해 보이는 것 같은 그의 손이 의외로 따듯해 선뜻, 경인은 빼고 싶지 않았다.

[유...경인이에요]

경인의 작고 하얀 손을 힘있게 잡으며 재민은 흰이가 보이게 미소지었다.
남자는 여자를 그렇게 내려다 보았고 여자는 남자를 살피듯 올려다 보았다. 둘은 그렇게 마주보며 첫 만남을 가졌다.
재민에겐 가슴 저미는 사랑이,
경인에겐 가슴 아련한 사랑이 그렇게 오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 리 없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시내쪽으로 갑니다. 여기선 좀 거리가 멀죠. 다른 바쁜 볼일이 있다면 굳이 데려다주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라...!]

재민의 솔직하고 시원스런 말투가 경인을 편하게 하고 있다는 걸 그때까지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많은 남자를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경계심없고 부담감없이 다가온 남자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믿기지 않지만 재민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아뇨, 전 괜찮아요. 그냥...좀 답답해서 무작정 나온건데 일이 이렇게 됐어요.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감사하구요... 근데, 시내쪽에서 일하세요?]

[직장도 집도 그쪽입니다. 일때문에 나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가 되어 그냥 퇴근하는 중이엇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내일부터 당장 차가 없어 불편하실텐데, 정말 죄송해요. 차를 고칠수 있다면 고치는 게...?]

[소용없습니다. 사실, 벌써 그 놈을 쉬게 해주어야 했는데,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모르죠. 당분간 동생 차를 뺏어 타야지요,뭐]

경인은 흘낏, 재민을 훔쳐 보았다. 옆선이 참으로 강인하고 뚜렷했다. 정면으로 보면 두려울 정도로 남성적인데 반해 옆면은 또다른 부드러움을 보이고 있었다.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얼굴이었다.

[저어...바쁘세요? 괜찮다면...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그냥...!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죄송합니다]

갑자기 나온 말에 경인은 당황했다. 그래서 말을 더듬게 된 것이고 재민이 혹시나 오해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얼굴마져 화끈거리는 게 아닌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지극히 위험하고 무례한 초대를 하는 게 아닌가!
왜 그렇게 쉽게 그런 소리가 나왔는지 경인은 속으로 욕설을 뱉았다.

[저기, 제 말을 그게...!]

[오늘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군요]

걱정하는 어투로 그가 경인을 보며 말했다.

[술 친구가 필요하단 소리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되어 드리죠.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깐. 때론 가장 절친한 친구보다 모르는 사람이 마음 편할때도 있습니다. 경인씨가 지금 그런 상황인 것 같은데?]

뜨끔했다. 재민이 뭘하는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다. 마음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는, 길잃은 청소년을 선도하는 것처럼 방금 말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사실 저도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했는데, 술 친구든 얘기 친구든 되어 드리죠. 갑시다]

자신에게 황당하고 당황하면서도 경인은 웃고 말았다.
그랬다. 경인은 지금 절실히 누군가가 필요했다.

수성 유원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조용히, 분위기있게 술 마시기엔 그곳이 제격이었다. 마음 같아선 바다를 향해 달리고 싶었지만 경인은 애써 그 기분을 참았다.

잠시 둘은 둑길을 따라 걸었다.
11월이라 이렇다할 볼거리는 없었으나 답답한 가슴을 달래주듯한 시원한 강바람과 한적한 그 고요가 머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경인을 재민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가만히 살피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는 않았다.
그 얼마 후 그들은 버섯 샤브샤브란 간판이 세워진 곳으로 들어 갔다.

[난 서른 셋입니다. 나보다 많지는 않은 게 확실한데...]

주문을 끝내고 재민이 말문을 열었다. 경인이 격없이 웃었다.

[맞춰보세요. 재밌을 것 같은데...?]

[스물...]

경인이 더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재민의 가슴 한 쪽으로 익숙지 않은 통증이 스며들었다. 무언가 쿵. 하는 기분이랄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웃으니까...더 어려보여서 가늠하기가 힘들어 지는데...]

[생각하는 나이에 아마 두 세살을 보태면 답이 나올 거에요]

[그럼...스물 일곱?]

[에?...]

경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민을 바라보았다. 순간, 웃음이 터질 것 같았으나 참았다. 재민은, 내가 너무 많이 불렀나?.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아부하시는 거에요? 아니면 젊게 봐주는 건가요? 인심 더 쓰세요]

[스물...여덟?]

[...서른]

[......! 농담합니까? 서른살 아가씨가 들으면 화낼겁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경인은 미안한 듯 수줍은 듯 피식 웃었다. 이번엔 재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라? 언제 그렇게 많이 살았습니까?]

[예?!]

재민이 소리내어 웃었다. 건강하고 밝은 웃음이었다. 따라서 경인도 나즈막히 소리내어 웃었다.

둘은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남녀가 그렇게 웃으며 밥을 먹으러 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믿지 않을 것이다. 차를 마신다거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다면 모를까...하지만 친해지는데는 밥상만큼 좋은 자리도 없을 것이다.

경인은 재민과 둘이 앉아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더할수록 편했다.

밥을 먹으면서 그들은 세상 돌아 가는 얘기며 사람 사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가볍게 식사를 마친 둘은 자연스레 까페를 찾아 들어 갔다. 강이 보이고 유원지가 보이고 아름드리, 유혹하듯 불빛을 빛내는 호텔이 건너다 보이는 곳.


시계를 보았다.
밤 9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진희는 밤공기를 저항없이 들이마시며,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취하라고 마신 술이 오히려 정신을 말똥하게 만들었다.
밤하늘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것 같았다.
한참을 섰다가 발걸음을 뗐다. 비틀했다.
운전은 포기하고 택시를 잡았다.

[드림월드 아파트로 가주세요...]

전화가 울렸다.
김 민성. 이란 이름이 떴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글자를 진희는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끊겼다 다시 울렸다. 받지 않았다. 다시 끊겼다.

[아저씨, 중앙로로 가주세요. 죄송합니다]

진희는 바테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