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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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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액슬로즈 2003-02-27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핸들에 엎드린 채 경인은 미동도 않고 조용히 숨만 내쉬었다.
자신의 안전보다 상대편 사람-사람들일 수도 있었다-을 먼저 떠올렸다.

...많이...다친 건 아닐까?...어쩌지...어떻하면 좋지?...

무얼. 먼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경인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남자다.
다소 인상이 강해 보이는 남자였다.
긴장감이 경인의 온몸을 한 번 흔들고 지나갔다.
심호흡을 하며 차에서 내려 남자와 마주 섰다.

남자는 180은 훌쩍 넘을 것 같은 키를 하고 경인을 뚫어져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키에 압도당한 것으로 이미 주눅이 들었는데 남자의 인상은 그보다 더했다.
가죽 재킷의 남자는 얼굴선이 뚜렷한 게 강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고 눈동자는...!
남자의 눈동자는 움푹하니, 깊고 강렬했다.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경인은 왜인지 불안한 기분이었다.

이 남자. 강 재민. 서른 셋.
그는 경인이 호기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자신을 가만히 살피자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띄었다.
당돌한 여자다. 겁먹은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여자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눈동자가 보여주는 우수.
진눈깨비를 연상시켰다. 눈처럼 차가운 정열과 봄비처럼 포근한 우수를 함께 지닌 여자다.
무시하고 싶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여자다.
검은색이 그녀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상체는 다소 약해 보이고 하체는 튼튼해 보이는, 남자들이 딱! 좋아할 몸매를 하고 있었다.

[평가는 끝났습니까?]
재민은 알고 있었다.

...어떤 놈일까? 뭐 하는 놈일까?... 경인이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재민은 어렵지 않게 눈치를 꼽았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반면 경인은 움찔했다. 정확히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는 남자가 솔직히 두렵기까지 했으나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습니까? 이곳은 일방통행이라는 거. 다시 말해 아가씨가 잘못을 했다는 겁니다]

설마 하면서 경인은 간판을 살폈다.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100퍼센트 경인의 과실이었다.

[운전중 딴 생각을 한다는 건 명을 재촉하는 것과 동일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만도 천운입니다]

남자의 말투로 봐선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게다 싶어 경인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미안합니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으니 보상은 하겠어요. 우선 경찰과 보험회사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경미한 사고로 신고를 해봤자 더 복잡해 질 뿐입니다. 보험회사도 그렇고...]

[......?]

[사실 제 차는 13년이나 된 찹니다. 정비소에 가봤자 페차하라고 할 겁니다. 벌써부터 페차 권유를 받았으나 오래 타다보니 정이 들어서 스스로 수명이 다할때까지 타고 다니자 했습니다. 근데 이제 수명이 다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멎었거던요]

남자가 자신의 차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냥 보기에도 페차 직전의 차 같았다.

[견인차를 불러 끌고 가라고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겁니다]

[그래도 보상은 해야...?]

[됐습니다. 정 보상을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죠]

[어떻게...?]

[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걸로]

[당연히 그래야겠죠. 하지만...!]

[길게 왈부왈부 하지 맙시다. 한 입으로 두 마디 하는 그런 남자는 아니니깐 걱정은 하지 마십시요. 못 믿겠다면 각서라도 써 드리죠]

[그런건 아니지만 제가 너무 죄송하니깐...]

남자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강 재민이라 합니다. 통성명 정도는 괜찮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