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미소는 너무도 당연한 만남이라는 듯 차분했다.
아름다운 여자다.
살포시 들어 가는 보조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두근거리게 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러나 남자는 고개만 약간 숙여 아는 척만 했을 뿐 다시 고개를 바다에 고정시켰다.
여자가 옆으로 와 섰다.
상큼한 오렌지 향...
남자의 가슴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고 지나갔다.
숨막히게 사랑했고 뜨겁게 사랑한,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를 사랑하는 그녀에게서도 오렌지 향기가 풍겼다.
작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재민씬... 경인이 밉지 않나요?]
[......!]
[난요, 많이 미워요 너무 미워서 어떨 땐 자다가 일어나 내 가슴을 치곤 해요]
[너무...사랑한 탓이겠지요]
재민의 음성에 그리움이 묻어 있다는 걸 진희는 알았다. 그러자 또다시 가슴이 꽉 막혀 와 한동안 말하는 것도 잊었다.
사랑?
하얀 포말을 일으키다 사라지는 파도를 보며 진희는 되뇌었다.
사랑?...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경인은 행복할겁니다. 사랑해 준 사람이 많았으니까...]
[반면 경인은...그 사람들에게 주는 사랑이 인색했죠]
[진희씨는 그렇게 생각 합니까? 경인이 누구보다도 따듯한 가슴을 가진 여자라는 걸 진희씨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었는데...]
[표현치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경인이 그랬어요 그게 얼마나 여러 사람을 아프게 했는 지 재민씨도 알잖아요]
재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갈매기가 운다는 거 아십니까?]
화제를 돌렸다.
[평생에 단 한 번 눈물을 흘린다는 겁니다. 그게 언제일까요? 무엇때문에?...아십니까?]
[......?]
[저도 모릅니다]
재민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그가 웃으면 얇은 입술이 멋지게 위로 말려 올라간다. 웨이브 진 머리는 항상 목덜미에서 부드럽게 물결치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형사라는 직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수려했다.
[경인이 해준 얘깁니다. 경인이도 눈물이 없었죠. 아니 최소한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을거란 얘깁니다. 경인은 다시 태어난다면 갈매기로 태어나 마음껏 바다위를 거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죠...그랬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진희는 눈물이 많은 여자였다.
소리없는 눈물이 곱게 화장한 진희의 뺨위로 조심스레 굴러 내려왔다.
보고 싶었다.
사실은 경인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재민은 경인이 그리웠다.
말할 수 없이 그녀가 그리웠다.
1.
유 경인.
나이 서른. 까페 <마리아>의 주인.
경인은 오늘도 손님들이 들이 닥치기 전의 여유로움을 커피 한 잔으로 즐기고 있었다. 밖은 아직 싱싱하고 활달해 보였다. 점심 시간을 넘긴 시간대라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동차가 세상 사는 것이 얼마나 숨가쁜지 대신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