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하는 현민일 보며 나도 일어섰다.
격한 감정 탓에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는 현민이였다.
늦은 밤 공원은 인적이 드물었다.
이런 순간까지 남의 이목이 신경쓰이는 나.....왜 이러나 싶다.
"너랑 그러고 나서 내가 하고 다녔던 일들.....다 알고 있겠지...?눈으로 직접 본것도 있으니까...."
"..............."
"....다빈이 자식....사실 아직도 용서가 안돼..."
그때가 생각이 나는지 현민인.....다시 벤취에 앉으며 손으로 머릴 쓸었다.
많이 괴로운듯한 표정이였다.
그럴 만도 하겠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인게....얼마나 충격이였겠어....
"끝이 보이지 않은 바닥으로 다 떨어지는 기분이였어.....이젠 다신 돌이킬수 없을 거라구 생각했었으니까......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추함을 모두 보여준거니까......그런 내가 어떻게 네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설수가 있었겠어....?"
".....그래도 ....그때 나한테 한말은 너무 했어...내가 얼마나..."
"넌 가슴만 아팠겠지.....!난....돌아서서 나오는 난....내가 얼마나 비참하고...절망스러웠는지.....넌 몰랐을꺼야...."
"........"
"평생.....널 가슴에다 묻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하루에도 몇번씩...네가 안떠오르는 적이 없었다구.....너 내가 너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맨 정신으로 잠든적이 몇번이나 있었을것 같애....?한번도 없었다구.....알아.....?"
나는 뭐 힘 안들었나...?
자기 못지 않게 얼마나 힘든 나날이였는데.....
".....하지만...너 내가 네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거 눈치 쳇다면서 어떻게 일을 여기까지 오게 한거야......?"
좀 따지듯이 내가 묻자....현민인 ....허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몰골을 보이고.....그런 모진 말 까지 했는데.....네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설수 있을 만큼 난 대가 크지도 뻔뻔하지도 않다구...날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서는 널 보는 내 가슴이 어땠는지 알아..?"
".....너만 피해자 인것 같이 말하지마....나도 너 만큼은 괴로웠다구...네 차가운 얼굴.....찬바람이 돌것 같은 그런 눈....나도 참기 힘들고 괴로웠다구....."
".....나 만큼은 아냐....절대로...."
".......난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었다구.....네가 나이트며....다른 여자애들 만나고 돌아다니는 시간에 난 눈물로 지새웠다구..."
마치 신세한탄을 하듯이 되어버린 대화 였다.
그때의 그 절망감이 살아난듯.....눈가가 뜨거워 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절망의 시간들.....
눈을 뜨고 있어도.....감고 있는냥.....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때...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가슴도 미어졌다.
현민이 좀 놀라며 다가와서 날 품에 안았다.
싫다고 도리질 치는 날 꽉 안아주었다.
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참이 지난후 였다.
어느정도 감정이 가라앉은 후였다.
자정이 깊어지면서 공원은 조금 추웠다.
차다는 체감 온도가 느껴져....현민이 차로 갔다.
차문을 열자 연하게 나는 익숙한 향이 있었다.
엄마에게서나 가끔 맡아 볼수 있는 향.....
바로 'opium'이였다.
향에 민감하다는 현민이였는데.....
의아해 하는 날 보더니 현민이 멋적게 웃었다.
"중독이잖아....한세련 이라는 늪에서 헤어날 수가 없잖아....."
분명 내 얼굴이 많이 붉어 졌으리라....
벨트를 매고 차을 출발시켰다.
한남대교를 따라 한강을 돌았다.
"다희네 집에서 오늘 놀기로 했다면서.....너 찾으면 그쪽으로 데려오라던데......어디로 가야해....?"
"......잠실쪽....."
잠실쪽으로 방향을 틀며 운전하는 현민일 잠깐 곁눈질 했다.
까맣던 머리가 거의 은회색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첨엔 .....달라진 모습에 좀 놀랐지만....까맣던 머리가....좀더 인상이 쿨해 보였는데....지금의 모습은....아직은 내게는 생소한 얼굴이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본적은.....오늘이 첨이니까....
스치듯 잠깐 씩 봤을땐....현민이의 모든게 아픔으로 다가왔는데...역시...이렇게 봐도 너무 핸섬한 현민이였다.
각진 턱선이며....오똑하게 솟아 있는 콧날....쌍거풀 없이 커다란 눈....동공이 아주 진한 다크블루 였고....흰자위도 아주 선명한 흰색이였다.
머리가 맑고 명석한 사람들의 눈이 .....진한 색으로 보이는것은 ...그 만큼 그사람의 정신이 살아 있음이라는 얘길 책에서 본것 같았다.
"그만좀 봐라....얼굴 뚫어 지겠어...."
순간의 쪽팔림....
이 무슨.....
얼굴에 불덩이가 닿아 있는것 같았다.
금방이라고 가슴이 뜨거워 터질것 같았다.
옆눈으로 큭큭 거리는 현민이 모습이 보였다.
이런....두더지가 되어서 차 바닥이라도 뚫고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틀어논 시디에서 나오는 음악뿐.....
김건모의 청첩장은 .....가사말이 너무 슬펐다.
비오는날 받은 청첩장 이라니....가슴이 무너지는 가사였다.
"유성 빌라지.....? 다 왔어..."
앞에 다희의 집이 보였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 답게....크고...예뻤다.
다희의 아버진 건축가 셨다.
우리나라 에서 다섯손가락 안데 드는 실력있는 건축 설계사 시다.
이 빌라도 다희 아버님 솜씨였다.
차에서 내리려는 날 잠시 잡는 현민이였다.
오는 내내 얼굴을 계속 돌리고 왔던 나 였다.
집앞의 가로등 불빛이 얼굴을 비출것 같아 가방으로 얼굴을 가렸다.
"좀 바봐....."
얼굴에서 가방을 떼어내려는 현민이였다.
절대 안되는 일이였다.
아까 공원에서 울어서....이젠 떼 국물자국 까지 흘러있을 것이다.
절대 안되는 일이라듯이 얼굴을 가린 팔에 힘을 주는데 현민이 두손으로 내 손을 잡아내렸다.
얼른 다시 손을 들어 가리려는데....갑자기 현민이 말했다.
"왜 이러는 건데....공원에서 부터 계속...얼굴 돌리고...내내 신경이 쓰였어...왜 그러는 건데...?"
절대 말 못하지....
잡힌 손을 빼려고 버둥 거렸다.
내가 버둥거리는 힘이 가해지면 현민이 손에서도 힘이 가해졌다.
시선 피하는 날 내려다 보면서 현민이 얼굴을 찌뿌렸다.
그때였다.
잡힌 팔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음을 보고 있는데....얼굴이 들려 지는가 싶더니 현민이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끼는 그 순간....무언가 물컹하는 느낌.....희미한 레드 비어의 향이 코 끝에 맡아지는 그 순간.....현민이 입술이 느껴졌다.
놀랄 틈도 없이 순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깜짝 놀라 도리질 하는데.....내 팔목을 잡았던 두손중 한손을 풀어주며 그 한손으로 내 머리 뒤로 돌렸다.
갑자기 키스가 .....강도가 더해져 갔다.
전엔....살짝 ....닿기만 하다가 떨어졌는데.....
이번엔 심장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쿵쾅거렸다.
현민이가 살짝 입을 떼었다.
숨이 찼다.
숨을 한번 들이쉬는데....또 다시 내려온 입술이였다.
오늘 ....윽....
이번엔 아까완 다른 느낌이였다.
아까의 키스가 마치...뭔가 부족한 무언가을 채우기 위한 간절한 키스였다면.....지금의 키스는 좀더 부드럽지만 .....뭔가를 더 바라게 되는 그런 농도 짙은 키스였다.
내 안에 들어온 혀가 여기저기를 샅샅이 ?고 지나갔다.
이런 경험은 첨이라....온몸에 힘이 순식간에 밑으로 다 빠져 나갈것 같았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듯.....
내가 휘청 했나 보다....
현민이 손이 등뒤로 가며 날 부등켜 안는 자세가 되었다.
입술을 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난 좀 얼떨떨해 있는 상태였고....현민인...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보이지 않아서 알수가 없었다.
키스를 이렇게 잘하다니.....
역시 경험이.....보통 많은게 아닌가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난 ....생전 첨인데....현민인....
이미 나 말고도....여러 여자애와 이런 기분을 느껴봤을 꺼라는 생각이 들자....너무 속상하고....현민이 미워졌다.
내 쏘아보는 시선을 눈치 ?는지....현민이 멋적은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미안.....갑자기라 좀 놀랐지....?"
"........."
"....근데....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너 그때 머리모양 바뀌어서 나타 났던날.....그날 이후로 부터 난 계속 열에 들떠 있었어.....그후로도 마주 칠때마다....널 향한 ....터질것 같은 이런 느낌....지옥속에서 살고 있는 나날이였다구.....너 왜 이렇게 섹시해진거야...?"
뜬금없는 소리에 ......기가 막혔다.
"예전에도...가끔씩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에 가슴이 뛰곤 했지만....그땐 자제가 되었는데.....요즘의 넌 볼때마다 내 심장을 달궈....날 폭발하게 만들지..."
어떻게 저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건지.....
난 금방이라도 불붙은 종이 처럼 활활 타올라 없어질것 같은데....
잰 말하는 입이 뜨겁지도 않은가......?
"뜨거운 불길에다 기름붓는 격이라구.....심장한 복판에 폭탄 투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구..."
"그만해.....지금 뭐하는거야....?그렇다고 기습키스 한거 용서할 줄 알고...?"
"내가 그럼 잘못한거야...?"
"....당연....하..지..."
갑자기 말은 왜 이렇게 버벅거리며 나오는 건지.....
"그래 ...어차피 용서가 안되는 일이면 더 큰 사고을 치는게 낫겠군...."
그러면서 다시 내게 달려드는 현민이였다.
장난스런 입맞춤으로 날 놀렸다.
인상을 쓰는 내게 현민이 웃었다.
"이것도 용서가 안돼...?"
정말....
엉망인 얼굴을 감추려고 하다가 된통으로 당한 기분이였다.
차에서 내려 다희에게 전화를 했다.
집앞이라도 말하곤 ....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현민이 말했다.
"이제...더는 가슴 아픈짓 하지 말자....우리 너무 힘들었잖아..."
"....."
".....가슴에 묻어 두고 잊으려 했는데.....눈앞에서 안보이면 잊어질까 했는데.....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는걸 깨닫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더군..."
"나두....."
둘다 멋적은 기분이였다.
잡았던 손을 나주며 현민이 그만 들어가라고 했다.
내게 웃음지으며 현민이 말했다.
"너....들어가서 거울좀 봐야 겠다....모두 에게 놀림을 받지 않으려면..."
"......."
"왜 자꾸 얼굴을 가리려 했는지....ㅋㅋ 이제 알것 같다...ㅋㅋ"
정말....
돌아서서 가는 현민이 뒤에다 주먹을 쥐어 보였지만....
이미 등을 돌리고 가고 있었다.
손을 들어 보이고선.....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가관이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입술 주변으로 번져있는 리스틱 자국....분명 모두 알것이다.
내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가방에서 물 티슈을 꺼냈다.
입술을 딱는데.....아까의 그 키스가 떠올랐다.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었던.....그 순간...
갑자기 호흡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