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라" 대장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침대에는 잠을 잔 흔적이 전혀 없다. 여자로서 해 내기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데 뭇 남자들도 혀를 내둘러정도이다. 그 어렵다는 우주비행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간의 항해경력을 돌아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사실 이번 탐사의 리더로서 대장을 꼽는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그 만큼 그의 화려한 이력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다.
잘 정돈된 침상과 사물함. 여자로서의 깔금함과 섬세함이 느껴진다. 항해사는 주인이 없는 잠자리에 대신 누워본다. 여자의 체취를 맡아볼 요량이었나. 정말 얼마만인가. 남.녀를 떠나 오직 일에만 매진해 온 탓에, 항해사는 그 냄새에서 막연하게나마 사람을 느껴보고 싶었고, 떠나온 고향과 가족들을 떠올려본다. 도중에 깬 잠탓에 살며시 잠에 빠지는 듯한데,
꿈속에나마 그리운 이의 얼굴을 대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가슴이 벅참을 넘어 답답함마저 느낀다. 목이 점점 차 오른듯 싶더니, 얼굴로 피가 몰린다. 그 때 항해사는 눈을 번쩍 뜬다.
겨우 뜬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대장의 얼굴이었다. 아니 대장의 얼굴이 아니다. 그건 악마의 얼굴이다. 머리에서 흘러 나온 듯한 물질이 얼굴과 목을 타고 흐르더니, 자신의 가슴에 덩이째 떨어진다. 구더기처럼 대장의 머리에서 기어나온 것들이 꿈틀거리며, 액체와 함께 흘러내린다. 대장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다. 눈은 빨갛다 못해 검은색을 띠고, 자신의 목을 찧누르는 대장의 손에는 무지막한 힘이 남자의 힘보다 몇배는 강한듯하다.
'대장...음.. 흑..' 비명은 입안에서만 외친다. 도저히 몸부림으로 적을 제압할 수 없을 듯하다. 의식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