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였다.
퇴근후 회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선배를 만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어제 통화에서 안나온다는 규흴 억지로 나오라고 했다.
시현이와는 그새 통화가 있었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런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 같았다.
20분 먼저 도착했다.
입구에서 동훈선배와 재혁선배를 만났다.
깔끔한 재색 턱시도를 입은 동훈선밴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시선 피하는 날 보는 재혁선배의 얼굴이 당혹하고 있었다.
오기전에 선배에게 몇번이나 주의을 들었지만......
쌓인 감정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사회를 맡아서 할 수 없이 참석한 거라고 했다.
발길을 돌려 예지 언니에게로 갔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예쁘게 차려 입은 선배들이 보였다.
우리 동기도 몇보이고....후배도 보였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예지 선밴.....예전보다 더 이뻐졌다.
인사를 건네는 날 보며 수줍게 웃었다.
연화선배와 소라선배가 부케와 과일바구니 담당인지 들고있었다.
신혼여행은 호주로 간다고 했다.
과일 바구니는 공항에서 압수당한다는 말에 연화선배가 안타까와 했다.
식이 시작되고 모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뒤로 보니 시현이와 규희가 보였다.
규희의 머리 자른 모습에 모두가 처음의 나 처럼 좀 놀라는
얼굴들을 했다.
짧게 웨이브를 줘서인지.....
처음 보단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 동기들과 같이 있었는데....
나만 선배들 틈에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기분이 좋았다.
피로연은 대학동기들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모두 나왔다.
사회를 봤던 재혁선밴...
시현일 데리고 먼저 나갔다.
걱정 스러운 얼굴의 규희에게 내가 다가갔다.
선배가 차를 빼오겠다고 자릴 비켜주었다.
"시현이....알고 있어....?"
규희의 얼굴이 며칠새에 더 상해있었다.
화장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榮鳴?하나....
누가봐도 규희의 얼굴은 편한 얼굴이 못되었다.
커피를 빼서 내미는 날 보며 규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말에 끄덕이는 걸 보니....시현이 알게되었나 보다.
"시현이 뭐래....?....말하기 힘듬....하지않아도 돼...."
맘 편하게 해주려고 내가 한 말이였다.
"모르겠어....재혁선배가 만났나봐....그제 시현이 찾아왔더랬어..난 그냥 헤어졌으면 싶어....다시 시작하기도 그렇고....잠시 여행이나 갔다 올까봐....."
"....책임회피 아냐.....? 재혁선배가 시현이 데리고 나가는것 같던데....둘이 싸우고 그러진 않았나봐...........?"
"안 싸우긴.....재혁선배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적 처음이래....더구나 한번도 치지 못하고...고스란히 맞아본적 없데....."
"맞을 짓 했잖아.....아무리 술기운 이라고 해도...."
"그만해.....나도 잘못이 있었는데......"
고갤 돌리며 규흰 입술을 물었다.
"그래서 ...시현인 뭐래...?"
"아직....아무말도 않해.....헤어지자는 내말에 화만 내고....그냥 묻어두재.....자꾸 말해봤자.....소용없다구....유리야....나 정말 미칠것만 같아.....시현이가 차라리 욕하고 날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렸으면 좋겠어.....악쓰며 헤어지자고 말하게....."
또르르....눈물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무슨말을 해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선배가 고개짓을 하고 있었다.
시현이도 보였다.
재혁선밴....갔는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갈래.....?"
일어서는 규희에게 물었다.
규흰 아니라는 고개짓을 했다.
시현이 놓아 둘 것 같지도 않지만....
정장 차림이긴 하지만....시현이 얼굴도 규희 못지 않게 많이 상해 있었다.
선배에게 잘가라는 말을 하곤 규흴 데리고 먼저 갔다.
규희 어깨에 손을 두르고 걸어가는 시현일 보자 웬지 ....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선배의 룸으로 향했다.
신승훈의 [널사랑하니까]가 나오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가슴을 애절하게 만드는 목소릴 낼수가 있는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의 풍경으로 얼굴을 내밀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운전에만 몰두 하는 선배의 옆 모습도 많은 상념에 젖어 있었다.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이번엔 내가 솜씨를 발휘했다.
고추장+케첩+청양고추 붉은색+그리고 붉은 피망.....
아주 매콤하고 케첩탓에 조금은 달짝 지근한 맛....
조개+오징어+새우+양송이 버섯+양파+그리고 마늘....월계수잎...
스파게티는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요리였다.
쉽게 끓이는 라면 보다 더 잘하는 요리였다.
붉은 포도주도 옆에 놓고......테이블 셋팅까지 했다.
전에 사다놓은 예쁜 그릇에 담았다.
내가 만들고 맛있다고 말하긴 뭐하지만....정말 맛있었다.
선배가 엄지를 세워 굳이라고 말했다.
콘테스트에서 트로피를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듯 난 일어서서
고개까지 꾸벅 거렸다.
선배가 웃음을 크게 날렸다.
월요일 아침 ....
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배불뚝이 부장님이 내게 미소를 띄웠다.
웬지 느끼한 미소.....
진한 에스프레소가 생각났다.
아니 ...진한 원두커피 원액을 그대로 마시고 싶었다.
부장은 내게 무슨 서류 비슷한걸 건넸다.
탁자위에 놓여진 노란 봉투....
"요번에 우리회사가 매장을 몇개 더 확장 한다는 얘긴 들어서
알고 있겠지...."
"네......"
"청담동에 지었던 빌딩이 다음달이면 완공이야....일층에 매장이 생기고..2.3층은 사무실겸 창고로 쓸 계획이지....."
"그래서 말인데.....그 매장 책임자로 한유리씨가 적임이라고 위에서 말이 있어.....소품디자이너 팀장으로 일해볼 생각 없나...? "
정말 파격적이다.....
난 이제 겨우 3년차이고.....나이도 아직은 ......
조금 당황이 되었다.
위의 선배들의 얼굴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소품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긴 하지만....
난 매장 디스플레이에 더 매력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서 완성품을 보는게 더 좋았다.
소품에 대해선 사실 관심이 있긴 했지만......
전력투구 하고 싶진 않았다.
"전....아직은 배울 것도 많고....아직 그런 큰 책임을 맡기엔....조금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분명한 의사표현이 필요할 것 같아 내 속을 보였다.
부장은 잠시 날 보더니 자셀 조금 고쳐 앉으며 더 놀라운 얘길 했다.
"그럼 ..머천다이징 공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나....?"
"....네....?.."
"두가지 제안이 내려왔어.....새로운 매장의 팀장이냐 아님....회사 차원에서 해외로 연수를 보내 공불 시키자는 거지...한유리씬 결혼보다 일을 더 우선시 하는거 모두가 다 아니까....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는 거지.....인적자원을 키우자는 거야....."
"해외연수라면....?"
"....이태리로 한 2년 쯤.....우리 회사와 제휴를 맺고 있는 ....에스프리....잘알지.....거기서 머천다이징[엠디]을 공부해봐.....아직 정확히 결정 난건 아니니까.....한번 잘 생각해 보라구.....회산 자네의 실력을 높이 사고 있거든...."
부장의 말에 가슴이 콩딱 거렸다.
작년 가을 2주 연수교육으로 에스프리 본사에 갔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까지 의류사업이 주먹구구식인 우리나라에 비해 이태리 본사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다.
상하 지위를 막론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우선으로 해주는것....
또한 세계에서 색감표현이 가장 뛰어난 나라 라는 말이 말 뿐이 아니라는것 또한 내 흥미을 자극했다.
어떻게 하면 저런 색상을 낼 수 있는지...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색상을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거의 구십퍼센트는 내고 있었다.
2주라는 연수기간이 너무 짧아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나중에 사비를 들여서라도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였다.
그런 곳에서 2년동안 근무하면서 공부라니.....
말 만이라도 황홀했다.
얼굴에 웃음이 감도는 걸 막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게 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뭔지.....?
내가 막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기획실장....윤세진과는 어떤사이야.......사적인 질문 같지만.."
윤세진이 여기서 왜 나오는지......
깜짝놀랐다.
의아해 하는 내게 부장은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기획실장도 함께 갈꺼야....그쪽도 거기서 실력을 쌓고싶어 하거든....한유리씨.....높은 자리에 오르면 나 잊음 안돼...."
윽....입안에 버터가 가득 들어차있는 기분이다....
윤세진도 함께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거 모두 윤세진이 시킨 것 아냐....?
분명 거절의 뜻을 비췄는데....
그 후로 별다른 말이 없어 뒤가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혼란이 왔다.
정말 회사에서 내 실력을 인정해서 날 인적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두 가지 안건을 내 놓은 건지....아님...윤세진이....
개인으로 안되니까.....회사를 등에 업고 내게 접근을 하려 함인지...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저녁에 선배에게 만나자는 문자 메세지를 남겼다.
며칠전 부장의 얘길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윤세진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면 .....
내겐 참으로 기쁜 소식이였을 텐데.....
그러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날 만나려고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는 선배....
다시 시작한지 이제 겨우 두달이 좀 넘어가는데....
만약 내가 연수건을 택한다면....
다시 2년동안 이별을 해야 한다.....
과연 선배가 용납을 할지...
소품 디자인으로 새 매장으로 나갈겨운.....
지금처럼 퇴근후 만나면 되지만....
내가 관심있어 하는 건이 아니니....그럴수도 없고.....
두개다 무시하자고하니.....다시 이런 기회가 올것같지 않고....
지금 처럼이면...너무 현실에 안주해서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고....
며칠동안 생각에 생각만 했더니...머리가 터질것 만 같았다.
선밴 천안공장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도 내가 먼저 일이 끝날것 같아 장를 봐서 선배네로 갔다.
7월 중순이라 날씨가 아주 무더웠다.
말 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던데.....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는지...침대가 어질러져 있었다.
다른건 깔끔하게 정리되어져 있는데......
만진 물건은 사용후 바로 제자리에 두는 습관을 가진 선밴....
늘 깔끔한 모습이였다.
정리가 잘 되어져 있는 느낌.....
아까 점심시간에 급탕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선영이 말했다.
윤재영이 선배에게 프로포즈 했다가 딱지맞았다구......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해 하던....윤재영이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데 무심하게 반응하는 선배에게 자신이 먼저 대쉬를 했다가 보기좋게 차였다고했다.
선배가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단다.
다른 여직원들 사이에도 그 소문은 퍼저 은근히 선배와의 만남을 기대하던 여직원들의 가슴에 돌을 던진 격이라고 했다.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사귀는여자친구가 있고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라고 못을 박았다 했다.
윤재영이 이번엔 장난이 아니였는지...하루종일 심란한 얼굴이였다고 전하며 선영이와 지흰 고소해 했다.
선배의 확실한 반응이......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선배에게 지금 내개 닥친 고민을 상담할 생각이였다.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선배가 들어섰다.
차를 안가져 왔는지.....선배에게서 옅은 알콜냄새가 났다.
술자리에서 이렇게 일찍 나왔을린 없을 텐데....
씻고 나오는 선밸보며 내가 물었다.
"뭐야....?술 냄새 풍기는데....술자리에 있다가 온거야....?"
"...응....몸이 않좋은것 같아서 강대리에게 맡기고 온거야...."
"어디 아파...?...."
"핑게지 ....아프긴 내가 어디가 아프냐...?너 만나려고 얼른 달려 온거지....."
능청스런 웃음을 지으며 선배가 다가왔다.
차려진 식탁에 앉으며 선배가 물었다.
"너 어쩜 해외연수 갈지도 모른다며.....?"
"어...? 어떻게 알았어......?"
"아까 강대리에게 잠깐 들은 얘기야.....회사에서 널 키워주려고 한다고.....인사과에서 벌써 말들이 있었다구 하던데....넌 알고 있었던거야....?"
"...응....아직 확실한건 아니구....생각좀 해보라해서..."
"그래...?...실력이 정말 있긴 한가보다 .....여자들은 사실 잘 안 키워주는게 우리나라 현실인데...."
시원하게 끓인 모시 된장국을 떠서입에 넣으며 선배가 말했다.
선배의 말에 인상을 써보였다.
여성을 비하시키는 듯한 말투......
내 시선에 빙긋이 웃는 선배의 모습에.....
가슴 한쪽이 시려옴은 왜인지....
어떻게 얘길 꺼내야할지.....
난 정말 연수는 꼭 가고 싶었다.
윤세진이 걸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