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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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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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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yks1121 2002-12-31

자고 가라고 했지만....
형부에게 안좋은 꼴 보이기 싫다며 규흰 12시가 다 되어서 갔다.
규희를 보내고 .....난 혼자 술을 마셨다.
맥주가 아닌 소주를....
안주도 없이 유리잔 가득 따라 연속으로 원샷을 했다.
가슴속의 통증이 가라 앉길 기다렸지만....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은것 처럼 속이 타고 아팠다.
정말....이게 무슨 일이람.....
어쩌다가....
규흰 .....어떻게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충동적이거나 감상적인 아인 아닌데....
더구나 재혁선밴.....
머리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거라고 마신
술인데....
몸만 축 날 뿐 머리속은 더 맑아졌다.

며칠전....규흰 친구와 신사동의 잘가는 나이트에 갔다가
친구들과 같이온 재혁선배을 만났다 했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어울렸고....
나이트에서 나와 호프집...노래방까지 가고....한참을 얘기하다
차가 끊겨버리고.....새벽까지 포장마차에 있었는데....졸음이 와서 잠깐 들어간 모텔.....정말 다른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노래방에서 나올때쯤 다른 친구들하고 헤어졌고....둘만 포장마차에서 얘길더 했단다.
오랫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그게 이런 일을 불러일으킬줄은 정말 몰랐다고....
재혁선배도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술기운에.....서로를 안았을 뿐.....다른 감정은 없었다고 했다.
시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겁도 나고...
자기에게 등돌리는 내 얼굴도 떠오르고....
그냥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고 했다.
그래서 위경련을 일으키고....병원에 이틀간 입원했다고 했다.
재혁선밴.....무슨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는지....
시현이에게 버림 받으면....자기에게 오라고 했단다.
시현이 만나기 겁나면 같이 만나주겠다며.....
얘기하는 내내 규흰 울었다.
나중엔 눈물이 더는 안나올 만큼....
시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냥 시현이가 자길 잊었으면 좋겠다고...그럼 맘이 편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알수 있었다.
얘기 듣는 중간중간에....나도 시현이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그 착하고 순진한.....정말....맘여린 시현이가 이 얘길 듣게 되면...어떻게 될까.....?
불안했다.
시현이에게 말하지 말자는 말이 나올정도로....
언제 어떻게든 알게 되겠지만......지금은 아니라고 ...내가
규희에게 말했다.
좀더 시간이 흐른뒤....그때 말하라구......

정말 속이 탔다.
둘이 얼마나 좋은 사이였는데....
재혁선배......정말 술기운 이였을까...?
여자버릇 나쁜.....선밴...알고서 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재혁선배에게 내가 알고 있는 나쁜 욕이란 욕을 전부
하고 싶었다.
규희가 술에 약한것 알면서....잘 알고 있었으면서....
정말 선배도 술 기운에 그런걸까...?
만약 아니라면.....단지 여자라서 그런거라면....?
무서워 졌다.
더이상 ...생각한다는게 너무 무서운것 같았다.
술 기운이 도는지....
머리도 띵한게 어지럽고....속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된것같았다.
위경련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이였다.
누군가 벨을 계속 울리고 있었다.
침대 위의 키티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이 아니고 .....낮이구나.....
어제 마신 술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황페해 있었다.
세수도 않고 ...양치질도 않한....꾀죄죄한 모습...
벨소리도 울리고 전화도 울리고...
동시다발로 모든 소리는 다 울리는것 같았다.
무선의 전화길 들고 현관으로 갔다.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건 우진선배였고.....전화도 우진선배 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선배도 핸드폰을 들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어주는 날 보며 선배가 인상을 썼다.
손에 비닐 봉투을 들고 있었다.
"냄새한번 죽이는데...? 규희는 아직 자는거야....?"
"아냐....어제 갔어....."
방안에 마시다만 술이 컵과 병에 담겨져 있었다.
소주 두병이 모두 따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닫으니.....바깥 공기가 들어와서 인지...
방에서 나는 냄새가 코로 스며 들었다.
굉장히 멋적은 기분....
선배손에 들린건 해장국이였다.
밥도 안했을 것 같아.....밥도 가지고 왔다고 했다.

세수하러 들어간 사이 선배가 방을 치었는지.....깨끗해졌다.
양치질을 두번이나 하고 가그린도 했지만....
안에서 부터 올라오는 냄샌....정말 역겨웠다.
마치 아침 출근길에 뒤에 서있는 아저씨에게 나는 술 고랑내...
입을 봉인하고 싶었다.

해장국과 밥을 상에 차리며...선밴 깍두기도 사왔다.
정말.....대단한 정성이다.
집에서 막내이면서....어찌이리 자상할 수 있을까....
여자 친구보다..더 섬세한 마음씀씀이을 보이는 선배가 ...
고맙게 느껴졌다.

"어서 먹어....둘이서 마신거야...?"
"....아니.....나혼자...."
"뭐..? 너혼자 두병이나 마신거야.....?너 괜찮냐....?"
선배의 말에 수저을 내려 놓으며 난 인상을 썼다.
선배를 보자 갑자기 재혁선배가 떠올랐다.
선밴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뜨거울 때 먹어....혼자서 두병이나 다 마셨음...지금 속이 굉장할 텐데.....뭐 속상한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선배....정말 몰라....?"
"뭘.....?"
"재혁 선배가 아무말 안해...?"
내가 정색을 하며 묻자 선밴....잠시 날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아침을 안했는지....선배도 같이 먹고 있었다.
수저를 내려놓으며....선밴 컵을 들었다.
선배의 행동이 부자연 스러운것 같았다.
내가 규희랑 같이 있는걸 알면서.....
아침부터 찾아오고.....
재혁선배랑 가장 친한 사람인데.....재혁선배가 아무런 말을
안했을리가 없을것이다.

"알고 있었지.....?"
내가 다시 묻자 선배가 말했다.
"어제 알았어.....너 전화 끊고 재혁이에게 전화가 왔거든....
녀석도 많이 힘들어해.....정말 술기운이라고...다른 감정 없었다고...변명 같지만....커다란 실수라고했어...."
"그게다야...?"
내 목소리에 격한 감정이 많이 담겨져 있었나 보다.
선배가 날 보며....조금 굳어진 얼굴을 했다.
"이건...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를 따질 문젠 아니라고봐....재혁이 혼자만의 잘못이아니니까....."
친구라고 선밴......재혁선배을 옹호하고 있는것 같았다.
갑자기 섭하고 화가 났다.
"선배가....정말 ...아무리 술기운 이라고 하지만....상대가 누군지는 알았을거 아냐.....규희완 달리 ..그런 분위기가 어떤지 재혁선밴
잘 알것 아냐....그런데..."
"말이 좀 심해....재혁일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진 모르지만....재혁이 그렇게 인간 말종은 아냐...소문대로 아무나 가리지 않고 건드리는 그런사람은 아니라구...."
"누가 꼭 그렇데.....? 나두 너무 화가나....믿었던 선밴데....규희도 밉고....재혁선배도 밉고....둘다 너무 이해가 안가...."
정말 이였다.
첨 보는 사람도 아니고....그냥 조금 아는 사이도 아닌....
벌써 알고 지낸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들인데....
그렇다고 서로 연정을 품은적이 있었던 사람들도 아니고....
정말 이해가 안갔다.
나도 선배도 할말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말 못하고 있었다.
선배도 충격이 큰지....더는 내게 말을 못하고 있었다.

몸의 컨디션이 않좋은 날 위해 선밴 약을 지어왔다.
약을 먹고 자겠다는 내 말에 선밴 .....나중에 일어나면 전화 하라는말을 남기곤 갔다.
재혁이도 많이 괴로워 한다며....
자기가 저지른 죄의 댓가에 피할 생각은 없다며.....
정말 규희만 좋다면 이번 유학길에 데려갈 수도 있다고 했단다.
시현이에겐 죽을 죄를 졌지만.....
나중에 만나면 자기가 말 할 거라고 했단다.
약을 먹어서 인지 한결 속이 편하고 머리의 아픔이 조금 가셨다.

수요일 점심시간 이였다.
점심후 상암지역 매장엘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폰이 울렸다.
회사에선 거의 핸드폰을 끄고 있는데.....
선배와 다시 만나고 부터는 사내전화가 부담스러워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 켜 놓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 터였다.
안으로 들어서며 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한유리씨....?윤세진 입니다..."
아....기획실....윤세진....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아네.....안녕하세요....?"
"안녕못하는데요.....? 제가 몇번 메모 남겼는데....못 보셨습니까..?"
"....좀....제가 바쁘잖아요....시즌이라 할 일도 많고.....실장님도 바쁘시지 않으세요....?"
"아무리 바빠도...전화 한통은 해줄줄 알았는데.....제가 너무 맘을 놓고 있었나 봅니다....."
"......."
"....오늘 저녁 스케줄 어떻습니까.....? 좀전에 보니까...매장에서 바로 퇴근한다고 적혔던데...퇴근후의 시간은 비어져 있는 겁니까...?"
"......네.....아직은....."
"그럼...저녁 같이 합시다...상암지역 이면...두군데 뿐이니...일 다 마치면 전화 하세요....기다릴 테니....괜찮습니까.....?"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어차피 한번은 만나야 할 테고....
저녁에 우진 선배에게 전화가 올지도 모르는데...
내가 매번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운다며....저녁은 되도록 이면 만나서 같이 먹자고 그랬다.
어젠 회사 동료들과 회전 초밥을 먹었기에....
오늘은 같이 먹자고 연락을 할 텐데........

일단은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끊었다.
정말 부담되는 사람이였다.
지금 29이랬나....?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따고 회사로 들어온지....
이제 3년 조금 넘은것 같다.
첨엔 의례히 그렇듯이 평사원으로 시작했지만....얼마지나지 않아
기획실로 가더니 실장자릴 맡았다.
말뿐인 실장이 아니라 꽤 실력이 있다는 평이다.
젊은이 답게 추진력도 있고....신 기술 개발에도 관심이 많고...
비서과의 얘길 들어보면...다른 제벌2.3세들과는 좀 다르다고 했다.
여자들의 전화도 별로 없구...
근데....난 ...별루다.
웬지 너무 강해 보이는 타입같아서.....
같이 있으면 힘들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입관이 너무 강한가....
암튼...내겐 이미 선배가 있으니....
선배외엔 다른 사람을 받을 여유 같은건 없다.
확실히 다짐을 하고 매장으로 나갔다.

저녁을 같이 못한다는 내말에 선밴 또냐며 섭섭해 했다.
매장으로 찾아오겠다고 해서 안된다고 했더니....
수상하다며.....누구랑 같이 먹냐고 물었다.
나중에 말해 주겠다고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려 올까봐 전원을 눌러버렸다.
아....정말 죄짓는기분이였다.

약속장소인 일식집'가빈'에 윤세진은 벌써 나아 있었다.
깔끔한 재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역시 세련된 댄디 보이....
들어서는 날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목레을 했다.
뒤에서 의자를 빼주는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간단하게 초밥을 시켰다.
7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3층의 창가 자리....
내가 들어오는걸 보려고 룸을 잡지 않았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도 괜찮다는 내말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가볍게 느껴지는 향.....사파리 같다.
사향이라고 불리는 남성적인 향기....
이미지와 맡는 향을 쓰는것 같다.
재킷을 벗은 와이셔츠 안에 숨겨져 있는 근육탓에...
셔츠의 여유분 폭이 알맞게 펴져 있었다.
직업정신인지...
남자건 여자건 ....만나는 사람마다 ....샘플처럼 보게 된다.
어떤 향수을 쓰는지....어떤 악세서릴 했는지....어떤 옷을 어떻게 매치해서 입었는지....그 안의 몸의 사이즈는...저런 체형엔 이런 옷이 더 잘 어울릴텐데.....여러가지 생각을 혼자서 하는 것이다.
가끔 그러다가 상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멋적다 못해 무안하기 까지 했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는지.....난처한 경우도 몇번 있었다.
요즘엔 신입이 아닌 ...프로[?]라서 그런 경우는 이제 거의 없지만...

초밥이 한가지 종류가 아니였다.
여러가지 생선으로 덮은 밥....
연어도 몇개가 썩여 있었다.
일인분 치곤 좀 많은듯 한 양.....
모양도 아주 예쁘고 맛깔스럽게 보였다.

연어초밥을 한개 입에 넣었다.
겨자가 살짝 십혔다.
혀로 살짝 돌려 매운 맛은 피했다.
"....괜찮죠....? 여기 주방장이 일본에서 요리학 학위를 받은 사람인데....솜씨가 좋죠.....?"
"네....다른 데 하곤 격이 다른것 같네요....실내 장식도 그렇고.."
"....아까부터 저를 비롯해서 .....모든걸 꼼꼼히 보던데....만족하십니까....?"
"........네...?"
"다른 디자이너 분들과도 몇번 식사를 같이 한적 있었는데....모두가 한유리씨 같진 않던데.....유리씬 좀 다른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인가....?
요즘엔 거의 들키는 일이 없었는데........
순간적인....무안함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방금 삼킨 연어가 무사히 장을 타고 내려 갔을까....?

"혹시....이거 기억납니까....?"
윤세진이 탁자위로 만년필 비슷한걸 올려 놓았다.
짙은 와인색의 광택이 나는 만년필....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재 작년인가.....?
졸업시즌을 맞아 내 놓은 소품중에 하나였는데....내가 만든 거였다.가격이 좀 높아 몇개 안나갈 거라고 해서 200개 한정품으로 만든거였는데....의외로 인기가 높았다.
더 만들려고 했지만...한정품이라는 말을 했기에...들어오는 주문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윤세진이 가지고 있다니....
재킷 윗주머니에 끼워놓고 있었나 보다....
기억해냈다는 내 얼굴에 윤세진은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마음을 쳤다.
머리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위험.....위험을 알리는 소방차 비슷한 차가 마음을 달리고 있었다.
뭐지 ....저 웃음은....
시선을 확 잡아 끄는 듯한 웃음.....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재 작년....잠실의 매장에서 봤는데......첨엔 해외 명품브랜든줄 알았습니다.....우리회사 로고가 새겨있는 걸 보고...사실 속으로 좀 놀랍기도 하고....기분도 좋았습니다.....유리씨 작품이란걸 알고...한번 만나보고 싶었죠....근데....정말 만나기 어렵더군요..."
윤세진의 말에 난 희미하게 미소 했다.
그땐 사무실에 붙어있는 적이 거의 없었다.
나와 비슷하게 회사일을 시작한 윤세진씨완 거의 만날일이 없었다.
더구나 부서도 서로 다르니....
현장에 나가서 흐름을 알기위해 몇달씩 돌아가며 매장근무를 했었고....디자인을 하기위해 공장이며...포토폴리오 만들기까지...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유을 보이며 하라고 했지만...
한 번 몰두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니까....
혼자 바빴다.
주위의 곱지 않은 눈총도 무시하면서....
"인사과 선배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봤지만...너무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라...쉽게 이 만년필 디자이너라고 생각되지 않더군요....뭐랄까...굉장히 도회적인 여성....도도하고 ...자기 관리가 잘되어져 있는 프로페셔날 한 느낌이랄까.....근데 실물을 대해보니....내 생각이 전혀 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그렇게 촌스럽게 보이나요..?무척 실망했다는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실장님의 매너 점수도 깍였어요.....?"
좀 볼멘 소릴 하는 날 보며 윤세진은 당황해했다.
얼굴에 웃음기가 있긴 했지만....
"실망했다는 말이 아닙니다....제 생각이 너무 허황?榮鳴?느꼈다는 거지.....사실...가끔 복도나 회사 로비에서 마주친 유리씬...제 시선을 몽땅 거두어 갈 만큼....미인입니다."
뭐하자는 거야....?
만나자마자 고백이라니....?
샤프하게 봤는데...그게 아닌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윤세진이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유리씨....사귀는 남친 있죠.....?"
갑자기....남친은.....?
조금 당황되는 기분이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날..,망설이고 있는데 윤세진이 말했다.
"아닙니까....? 제 보기엔...상당히 오래 사귄 남친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걸...물어보는 저의가 뭔지 궁굼하네요....?"
"저의라....제가 한유리씨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알고계시죠....?"
단도직입으로 묻는 윤세진의 말에 난 쉽게 응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으니까.....피한것 아닙니까......?"
"꼭 ..피하거나 하진 않았어요.....정말 바빠서도 그렇고.....사내에
말도는것도 신경쓰이고....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다른 이유라뇨..?"
"늘 신입 남자사원이 들어오면...제 별명 아시죠...얼음공주와 가시공주.....모두들 한번씩은 관심을 가지더라구요....사무실에 가끔씩 유령처럼 나타나는 내게 ......관심을 가지는게...연레행사처럼 느껴졌어요....첨엔 관심을 가지더니....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관심들이 사라져 버리구....그래서 실장님도 그러려니 했어요....실례가 되는 얘긴 줄 알지만...달리 드릴 말이 없네요.."
"....듣고 보니...그럴수도 있겠나 싶군요.....꼭 별명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암튼....그래도 제 관심은 좀 길다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사실 좀 그랬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윤세진의 관심은 길었고.....모두가 알만큼 앞에 드러나 있었다.
전엔 우리부서 과장님이 회식자리에서 물어본적도 있었다.
윤세진과 사귀냐는.....
우진선배도 알고 있고.....

"정말....궁굼한데....사귀는 사람 있습니까...? 친구처럼 지내는 남자말구...."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다.
수정과와 식혜도 있었지만.....우린 커필 시켰다.
직접 갈아 탄듯한 원두커피...향이 진했고 맛도 진했다.
에스프레소 수준은 아니지만....
"....사귀는 사람 있어요....꽤 오래된......"
잠깐 눈빛이 흔들린것 같은 .....착각인가.....?
얼굴이 조금 굳어졌지만...곧 처음과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포거페이스라고 하나....?
자기 감정을 잘 숨기는 얼굴.....
가면을 하나쯤 늘 등뒤에 숨기고 있는 .....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입니까....?"
"...아마도....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그런 사람이 있어요..."
"역시....생각대로 확실하네요...제겐 ..그럼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말인데....좀 ....서운한데요....."
".....한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적 없어서....."
".....좀....마음이 아픈데요.....혼자서 키워온 마음이 좀 오래됐는지...갑자기 커다란 통증이 밀려오는군요....."
장난인지.....혼자서 연기하는건지.......
윤세진은 갑자기 침묵하고 있었다.
식어버린 커필 한 입에 털어놓고 윤세진은 일어서자고 했다.
좀 어색해진 기분이였다.
지은죄도 없는데 ...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드는건지.....

주차직원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윤세진이 내게 물었다.
".....술 한잔 하고 싶은데....괜찮습니까....?"
"....차는 .....?"
"..여기에 두고 가죠....자주 오는데니까....불편하심 그냥 가셔도 됩니다....억지로 잡진 않겠습니다....."
밤이라서 인가...
더운바람이 불었다.
어둠에서 .....가로등 불빛에서 본 윤세진의 옆 모습은 좀 쓸쓸해
보였다.
같이 있음 분명히 더 불편 할 텐데...
이미 내 뜻은 다 밝혔는데....
무슨 할말이 더 있다고.....술을 하러 가자는 걸까....?
그냥 가기도 그렇고...따라 가기도 그렇고....
불편한 밤이였다.
직원이 차에서 내리며 키를 건넸다.
날 한번 흘깃 보더니 윤세진이 말했다.
"타세요....술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데려다 드릴께요..."
"....아녜요....전철타면 돼요..먼저 가세요..."
"...타세요.....마지막이 될지 모르는데....모셔다 드리고 싶은 제 마지막 청 거절하지 마시고...부담가지실 필요 없습니다.....마음 정리 끝낼거니까.....타세요......."
계속 입구에 서있기도 뭐해서 일단은 차에 올랐다.
다행이 집하고 가까운 거리였다.
맘이 불편했지만....윤세진이 아무말 없이 운전에만 열중을 해서
불편 했던 맘이 조금은 가셨다.

오피스텔 입구에서 내려 주며 윤세진이 말했다.
"좀 성급한 면이 없진 않았지만....고백하고 나니까 속은 후련하네요...들어가세요..."
".....네....실장님도 운전 조심하시구요....저녁 잘 먹었습니다..."
문을 닫아주고 돌아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쪽으로 걸었다.
내 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희미한 복도의 미등으로 그 누군가가 보였다.
우진 선배였다.
핸드폰이 안되니...
바닥에 앉아 있는 폼이 아닌걸 보니...어쩜 차에서 내리는 날
봤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웬지...좀 위험한 상황이 아닌지.....
날 보더니 벽에서 몸을 떼고 다가왔다.
무어라 변명거릴 찾으려 머릴 굴리는데....우진선배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거야....."
".......?"
".....자고 갈꺼야...."
뭐....?
뭐라구.....?

"뭐해.....?문 안열구.....?"
바람이 가슴 한 가운데을 펑하니 뚫고지나 간것 같은 기분이였다.
뭔가 단단히 결심을 한듯한 우진선배의 얼굴....
왜지.....?
왜....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