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였다.
라면이 먹고 싶어 편의점으로 나왔다.
점심에 돈까스를 먹었더니...하루종일 속이 부대끼었다.
아주 매운 라면이 먹고 싶었다.
사다놓은게 없어 나온 거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선배였다.
"어디야....? 밖인것 같은데...."
"편의점....."
"거긴 왜...?"
"라면사러....저녁은 먹었어.....?"
"아직....너 저녁거리 사러 간거야....?"
"응...안먹었으면 같이 먹을까.....이리로 나올래..?"
선배와 내 원룸은 두정거장 좀 안되는 거리였다.
"뭐 먹을건데.....?"
"라면....다른것도 되고...."
"그럼 네가 이쪽으로 와...."
"....어디로...?"
"어디긴....너 내가 열쇠준 후로 한번도 안왔잖아....오늘 와 내가 라면 맛있게 끓여 줄게...."
집으로 가긴 좀 뭐한데.....
망설이는 내가 느껴지는지 선배가 다시 말했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오게 될거 아냐....? 오늘 와라....."
"나 ...화장도 다 지우고 ...옷도 대충 입었단 말야..."
"내가 너 맨 얼굴 본적 없냐....? 넌 아무거나 입어도 멋져....그냥 와...기다릴께....몇혼지는 알지..?"
전화를 끊고 잠시 망설였다.
그때 열쇠를 받은 후로 딱 한번 회사에서 말을 나누곤 오늘이였다.
내가 일찍 나온다는 걸 알고 선배가 3일을 연짝 일찍나와 하루가 걸린 날이였다.
내가 매일 일찍 나오는게 아니니까....사실 만나기를 작정하지 않으면 힘들었다.
핸드폰을 치면 되는데...선배도 나처럼 5년이란 시간을 훌쩍 뛰어넘기가 쉽지가 않나 보다.
몇번 전화하려고 했지만....만나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선듯 손이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선배의 전화에 같이 밥먹자고 한게.....
그런데...선배의 원룸은 좀 .....아직은 자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선배 말처럼...언젠가는 가게 될 텐데....
계속 밋밋거림....더 어색해 지지않을까.....
난 생각을 고쳐 먹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화장은 아니더라도 옷은 다시 입어야 겠다.
남친의 집에 가는데 츄리링은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오렌지 5알을 준비해서 선배의 원룸으로 갔다.
벨을 누르기전.....잠깐 신호흡을 하고 ....벨을 눌렀다.
"유리니...?"
선배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다크블루의 면티.....
예전에 내가 사준건데....색깔이 좀 바래있었다.
저걸 아직도 입고 있다니.....정말....
민트블루의 벽지와 청색의 가구의 조화 ....
남자방 이라는 느낌이 왔다.
선배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다비도프의 향수 쿨 워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이다.
사온 오렌지를 받아 냉장고에 넣고 선밴 끓는 물에 라면을 넣었다.
"앉아 있어....맛있는 라면이 될거니까..."
"좀 맵게 먹었으면 하는데....괜찮아...?'
"그럼....넌 원래 매운거 좋아하잖아...."
선배가 식탁을 차리는 동안 난 룸을 한번 둘러보았다.
더블의 음악이 퍼지는 아늑한 공간이였다.
단조로운 음악이 연속이어지는 더블의 나지막한 음성....
저녁을 아늑하게 만들어주었다.
진한 파랑의 침대위에.....낯익은 얼굴이 은색의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고교때 선배가 찍어준 사진....
보라매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였다.
아주 앳되어 보이는 사진.....
선배가 이때 내게 사귀자고 했었다.
중간고사가 끝이나서 규율부 전원이 여의도로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
겁이 많아 타길 꺼려하는데 선배가 뒤에서 잡아주며....가르쳐 주었다.
무더운 여름이였는데.....선밴 자전거를 안타고 계속 뒤에서 날 잡아 주었다.
다른 선배들이 잡아 준다는걸 괜찮다고 하면서.....
사실 그때 난 이미 선밸 마음에 두고 있어 선배 앞에서 실수 하기 싫어 더 긴장하고 있었는데...그런 내 맘도 모르고 선밴 자꾸 넘어지는 날 보며 나중엔 혀를 찼다.
운동신경 정말 둔하다구.....
난 그때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안그래도 신경 쓰여서 긴장하고 있는데....선배말에 발끈했다.
[그래...나 운동신경둔해......저리가서 놀아 이젠...나 혼자 할거니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
무안해하는 선밸 뒤로 하고 난 자전거를 끌고 저만치 갔다.
정말 그땐 ....나도 속이 상했다.
잘 보이고 싶은 선배 였는데..뜻대로 되지 않아 속 끓이고 있었다.
눈에 맺힌 눈물 안들킬려고 애꿋은 하늘만 노려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청해서 선배가 데려다 준다고 했고...
집앞 골목길에서 선배가 자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였는데....
그날의 사진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있다니.....
감동이 밀려왔다.
"와서 앉아 ....다 됐어..."
식탁위엔 먹음직 스럼 김치가 가지런히 잘 담겨져 있었다.
깍두기 까지....
한 입 먹어보고 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익숙한 맛.....
선배도 나와 마찬가지로 [ㅈ]회사의 김치를 애용하나 보다.
내 웃음에 선배가 물었다.
"왜...맛 없어....?"
"그게 아니구...이 김치말야...어머님 솜씨 아니지...?"
"엇....너도 여기거 사다먹냐....?"
끄덕끄덕.....
잘 익은맛의 김치....
집에서 가져 먹는 것도 있지만....
라면엔 약간은 신 듯한 김치가 제격이였다.
가끔 볶은 김치도 사다 먹는다.
라면을 물리고 오렌지와 커피는 내가 준비했다.
선배는 예전에도 원두커핀 안마셨다.
인스턴트 커피....모카커피가 선배의 커피였다.
진한 커핀 ...별로 않좋아 하는 나와 커피 기호가 비슷했다.
음악이 더블에서 경음악으로 바뀌었다.
하모니카 연주....노르웨이 숲....
잔잔한 피아노와 어우러지는 하모니카가 듣기 좋았다.
민트색의 머그잔...
색이 바랜듯한 파스텔 색이 보기에 좋았다.
커피를 마주 하고 조금 어색한 웃음이 있었다.
선배가 건네준 .....얼큰이 십자수 쿠션.....바로 내가 만든 십자수 첫 작품이였다.
얼큰이란... 몸에 비해 얼굴이 너무큰 팬시용 그림이다.
가장 많이 하는 도안이고....좀 쉽다.
두개를 만들어 선물했는데..두개다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첫 작품들은 거의 선배에게 와 있는 것 같았다.
스텐실로 만든 시계도....포크아트의 액자도....파스텔로 그린 그림도 액자에 담겨 현관에 붙어 있었다.
"뭐야...다 내가 선물한거네....."
".....재혁이나 준원이가 나 더러 스토커 같다고 하더라..네가 보면 숨막혀 할거라구.....정말 그래...?"
"숨까진 아니지만.....좀 부담이 되긴 하네...."
"그럼 어쩌냐.....중독된 사랑인데...."
"뭐....?"
오렌지를 하나 입에 물며 선배가 웃었다.
회사에 올땐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지 잘 정돈된 느낌 이였는데...
지금은 앞 머리칼이 이마위로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었다.
회사에서완 다른 모습이였다.
편안해 보이는 부드러운 이미지....
"너 얼마전에 미팅했었지....?"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알아...?"
우린 미팅하는걸 남자 사원이 알까봐 쉬쉬하는 편인데...
"학교선배가 거기서 널 만났다더라구...."
"학교선배...?누구...?"
".....나 한테 네 얘길 묻더라....아주 맘에 들었나봐..."
혹시 ....이신재.....?
".....누군데....?"
"내가 너 잘 안다니까......그러냐며...자기 얘기 하지 말라구 당부도 하던데....네가 좀 심하게 대한것 같던데...말들어 보니까..."
내가 심하게 대했다구....?
누구지...?
내가 심하게 대한 사람은 없었던것 같은데......아...설마...?
그 느끼한 유부남.....?
알듯한 내 표정에 선배가 끄덕였다.
"김영태라고...동아리 선배형인데....그형....정략결혼 한거야...집에서 강제로 시킨거지....불쌍한 형이야...."
"...뭐...?...그 사람하고 친해...?"
"가끔 만나곤해....그형 아주 맘이 여린데.....너 한테 꽤 관심있어 하던데....얘길 들어 보니까....내가 다 미안하더라...왜 그렇게 심하게 대한거야...?"
".....심하긴...결혼2개월 짜리 신혼이....부인을 팽개치고 그런델 나온게 그게 심하지...어떤 결혼이건간에....."
".....암튼...내가 너 남친 있다고 확실히 못 박아 났으니까...더는 연락하지 않을꺼야....좀 불쌍하지만...."
선배의 말에 잠시 맘이 싸아 했다.
그래서 방황하고 .....미팅에 나온거였나...
그때 이후로 들은 얘기론 그 사람은 D전자 계열 간부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필 ....선배와 그런 관계였다니...
입안이 썼다.
오렌지를 씹었다.
상큼하고 새콤함이 입안을 채웠다.
"미팅에 곧잘 나간다며....?예전엔 그런것 안좋아 했잖아..?"
"선배들의 압력에 나가는거지....앞으론 안나갈 거야....취미에 맞지도 않고.....기분도 늘 다운되서 들어오고....선배 알면 맘 상할거잖아..."
"당연하지...그날도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현장조사 나갔다가 들어왔더니 옆자리의 김대리가 투덜거리는 거야......너 미팅갔다구.....내색을 할 수도 없고....정말 가슴이 쿵 내려 앉더라...열쇠준후로 연락 한번 없지...이건 정말 벽에 머릴 쾅 부딪친 느낌이였다구....다신 미팅 같은것 하지마.....제발....."
선배의 말에 난 진심으로 미안해 했다.
투덜이 김대린 언제나 내 스케줄에 관심이 많았다.
내게 관심이 있는것 같은데...점심한번 같이 먹은적이 없는...숫기없는 동료였다.
"내일 뭐 할꺼야....?무슨 약속이라도 있어....?"
내일은 토요일이구.....격주로 5일 근무이기 때문에...쉬는 날이다.
선배도 그랬다.
"아직은.....규희나 만나볼까 했는데......."
"약속한건 아니지...?"
"....응...."
"그럼 나랑 영화보러 가자....반지의 제왕 ....괜찮다고 하던데.."
"좋아 나도 그 영화 보고 싶었거든...여신도 나온다며...여름 컨셉연구도 할겸....."
"그렇게 일이 좋냐.....?뭐하면 뭐 하고 금방 일하고 연관시킬 만큼"
"재미있잖아.....난 잠시도 생각을 않거나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몸에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것처럼 간질거려....."
"매일 연필 잡구 있어 손가락 기형적이라구 걱정하면서도 그리는 너니까....말해 뭣하겠어...."
선배의 한탄에 웃음이 나왔다.
대학 신입때....
과제물에 치어 사는 내게 ...
고3땐 수험땜에 거의 만나지 못하구....대학 들어와선 자주 보겠다며 좋아했더니.....이젠 과제물이냐며....만날 때 마다 불평이였다.
명동으로 압구정동으로...카메라 가지고 다니며 사진 찍어대고...스케치 수첩에 그림을 그리는 날 보며....선밴 ....힘들어 했다.
결국 그것이 우릴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내 질투나 관심을 끌어 보려고 선밴 다른 많은 여자친구를 만들었고.....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선밸 다그쳤던 난 급기....선배에게 헤어지자고 통고하고.....그때 처럼 불평하는 선배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10시쯤 바래다 준다는 선배와 같이 나왔다.
이젠 5월이여서 인지 바람이 딱 좋게 불었다.
바람이 좋아서 걸어서 갔다.
빨리 헤어지기가 아쉽기도 했고.....
선배와 둘이 거릴 거니는게 .....기분이 좋았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도 나즈막히 들리는 허스키 보이스도 .....
날 보며 웃음짓는 미소도 .....작은데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처럼 ...난 이제 행복을 ?은 건가...?
입구에서 헤어지려는데 선배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
내 원룸은 20층 높이 였다.
난 11층 이였다.
닫힘 버튼을 누루고 돌아보며 선배가 말했다.
"라면 먹고 입맞추면....역겨울까...?"
"좀....라면+커피+오렌지=....선밴 어떨것 같은데....?"
"난 괜찮을 것 같은데....어떤 맛인지 한번 확인해볼까...?"
우회적인 선배의 말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11층은 금방 이였다.
선배가 1층을 눌렀다.
동시에 서로 에게 다가간 입술이 만났다.
가슴의 떨림이란.....?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
선배의 입술이 처음이 아닌데....
마치 고교때 처음 입맞춤 할 때 처럼의 두근거림...
머뭇거리며 내 안으로 들어오길 망설이는 선배도 나 만큼이나 떨리고 긴장이 되나 보다.
입맞춤을 끝낸 후 선배와 난 서로 눈 맞추며 웃었다.
새로운 기분이였다.
선밸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이 왜 이렇게 행복한지...
정말 오랫만에 좋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