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혁선밴 저번달 모임이후 만나는 거였는데
머릴 아주 짧게 잘랐다.
군에서 제대한 병장 머리처럼 짧은 스포츠 머리
안그래도 키가 크고 목이 긴데....더 커보였다.
옆자리에 와 앉으며 자긴 오면서 간단히 먹었다며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후식으로 커필 시켰다.
요즘 유행하는 가요가 나오고 있었다.
보통 다른 카펜 거의 팝송을 많이 틀어주는데...
루비에겐 가요가 팝송인지....가요를 자주 튼다.
왁스의 여정.....가끔 매장 직원들과 노래방 가면 자주 부르는 노래다.
가사중에 [내나이가 몇인지..]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가 그 노랠 부르면 모두 웃고 난리였다.
노처녀 처럼 너무 외롭게 부른다며...
매장직원들은 거의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하니....
주로 자주가는 백화점 직원들이라....어찌보면 사무실
직원보다 더 자주 접하고 ...자주 어울린다.
나도 모르게 노랠 따라부르고 있었나 보다...
흥얼거리고 있는 내게 재혁선배가 물었다.
"좀 있음 백화점 세일 들어가서 많이 바쁘지...?"
"그건 벌써 끝냈어.....요즘은 좀 한가하지....근데 모두 모일거면서
난 왜 부른거야....?"
"너 저녁 안먹었을것 같아 불렀지......규희 얘기들어 보니까 너 만날거면 주로 저녁에 만나라고 하던데....저녁 안챙겨 먹으니까...챙겨먹이라구..."
선배의 말에 난 비소했다.
"간다던 유학 준비는 잘 되가..?"
연화선배가 물었다.
"그렇지뭐....호주에 작은집이 있잖아...거기서 다닐 것 같아.."
"집에서 약혼이라도 하고 가라고 한다며....그건 어떻게 됐어...?"
"우리집은 난리야....내가 혹 거기서 노랑머리라도 데려올까봐.."
"당연하지...네가 여자문제가 좀 복잡해야지...."
소라선배의 말에 재혁오빤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야 난 수입산은 별로야.....국산이 좋다구...."
"마치 우리가 고기가 된듯한 발언이야 너..."
연화선배가 쏘며 말하자 재혁선밴 잘못했다며 두손을 모았다.
"그래서 말인데....이젠 방황의 시간을 끝내려고....니들 중 나와 손잡고 같이 떠나고 싶은 사람있냐..?난 아무나 좋은데..."
[퍽!퍽!퍽!]
연화선배가 뒤의 쿠션으로 재혁선배를 때렸다.
매을 벌었다 아주....
매을 맞으면서도 재혁선밴 입을 놀렸다.
"니들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튕기려고하냐....유리너도 내년이면 얘들처럼 노처녀 클럽에 가입해야한다구....이 오빠와 손잡고 물좋고 공기좋은 호주로 날아갈 생각없냐...?"
"유리문젠....우진이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공기가 가라앉았다.
연화선배의 말에.....난 들고 있던 커피잔을 쏟을 뻔 했다.
더구나 모두들 갑자기 슬로우 모션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갑자기 화면이 정지된 모니터가 되었다.
소파에 등을 대고 깊게 앉아 있는 우진선배도....심각한 얼굴인지..
표정변화가 없었다.
불편한 공기..........
농담처럼 넘겨버릴 분위기가 아니였다.
우린 벌써....5년전에 끝난 사인데...왜 갑자기....
더구나 우진선배의 태도도 그렇고...
무거운 공기를 깨기 위해 아무도 안나서는 것 같아 내가 나섰다.
"선밴....사귀는 여친 정말 없어....?그런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잖아..?"
"없어....유리 넌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없니..?"
"아직은.....가끔 회사에서 연수를 보내주고 하니까....좀더 있다가 생각해 볼려구...."
"유린 공부 그만해도 돼....학교다닐 때도 얼마나 열심이였는데...4년 내내 장학금 받고 다닌앤 우리과를 통틀어 쟤하나였을 정도야..."
나와 소라선밴 같은 학교 같은 과 였다.
소라선밴....지금 아동복 디자이너로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바뀐것 같아 ....다행이였다.
아까 같은 분위기 였음 .....먹었던 저녁이 꽉 숨통을 조르고 있었을 거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0시 좀 안되어서 나왔다.
그후에 비어를 한병씩 가볍게 마셨는데...차를 가져왔다는 우진 선밴 마시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먼저 빠질려는 내게 연화선배가 잠시 불렀다.
모두와 조금 거릴 두고 선배옆으로 갔다.
"넌 우진이랑 같이가....우린 따로 갈게..."
"나랑 우진선배 방향이 틀려.....나 데려다 주고 가려면 한바퀴 돌아야해....."
"내말 들어....너 우진이가 왜 하고많은 회사중에 하필 네가 있는곳에 들어갔는줄 생각이나 해봤어.....?"
연화선배의 말에 난 말문이 막혔다.
선밴 잠시 날 올려다 보더니 말했다.
"5년전....넌 다 정리하고 끝냈는지 모르지만....우진인 5년전...그날저녁이후...아직이야...."
"........."
"오늘 재혁이 만난다니까....나온거야....무슨말인지 알지...?"
계산을 하고 나오는 재혁선배가 보였다.
차를 주차장에서 빼서 나오는 우진선배도 보이고...
알수 없는 내맘은....바람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곧 꺼질것 처럼 위태우태하게....
재혁선배가 내게 오는걸 연화선배가 잡고 소라선배와 먼저 간다며 가버렸다.
둘만 남게되었다.
앞 창문이 열리고 우진선배가 얼굴을 내밀었다.
"뭐해....안타...?"
전기에 감전된듯.....선배의 말에 움찔거렸다.
가방을 등뒤로 돌리고 조수석으로 올랐다.
예전에....이차의 시승식은 ....내가 했었다.
대학들어 갔다고 선배의 부모님이 뽑아준 차였다.
헤어진 뒤론 ....한번도 타보지 않은 차였다.
백미러엔 내가 달아준 드라큐라 백작이 아직도 붙어 있었다.
음료수을 얹을수 있는 받침대도 내가 준것 그대로고.....
블루와 핑크의 골덴으로 만든 강아지 인형도 그대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퀼트배울때 만들었던 ...내 첫 작품이였다.
이게뭐야......
갑자기 눈물이 났다.
시내를 달리는 선배의 차안에서 눈물이라니.....
음악도 없는 차는 무거운 공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말 않고...운전만 하는 선배...
연화선밴....왜 날 이렇게 곤혹스럽게 만든건지....
5년동안 ....굳게 닫고 있던 내 성은....단단하게 지어져 있다고 믿고 있었던....내가 만든 쇠창살의 성을 .....이렇게 쉽게 무너지게 하다니.....
선배가 갑자기 차을 돌렸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에 드라이브로 잘 왔던 곳인데.......
차를 파킹하고 선배가 내렸다.
앞엔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한강이 보였다.
아무런 파장없이 흐르고 있는 강...
내 맘속은....이렇게 파도치고....번개도 치는데.....
눈가에 맺혔던 울음을 손등으로 훔쳤다.
선배가 나오라고 눈짓을 줬다.
4월이긴 하지만....저녁이여서 인지....바람이 좀 찼다.
양팔을 엇질러 어깨을 안았다.
"저 앞에 초록색 건물 보이지.....새로지은 거 말야..."
다리 건너 앞의 카키색에 가까운 15층쯤 되는 건물이 보였다.
"내 오피스텔이야....올초 졸업하면서...독립했어....."
"어머님이....나가게 뒀어....?"
선밴 3남매중 막내였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다.
어머님의 막내 사랑이 극진했는데....어떻게 내보낼 생각을 하셨는지..
"갱년기 증상이 다시 도졌는지....우울증으로 많이 고생하시더니...요즘은 아주 바빠....복지회관에 다니거든....불쌍한 이웃들 돌보며 자원봉사활동 하시느라 아주 바빠......"
"좋은일 하시네......"
그러곤 말이 끊겨 앞의 한강을 봤다.
가로등이 켜져있는 한강의 풍경은 .....마치 뉴욕의 맨하튼의 밤 풍경처럼..이색적이고....아름답게 보였다.
바람이 차서 추웠다.
선배가 들어가자고 하면서 자켓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민트색의 작은 동전 지갑모양을 하고 있는걸 내게 건넸다.
"내 오피스텔....열쇠야.....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소리야.....정말...
"어서받아...추워..."
"왜..이러는건데...지금와서....이게 무슨 소리냐구.....!"
내 감정이 격화되었나....?
소리가 좀 높았다.
머리와 가슴이 뜨거운 불길에 치어 터질것 같았다.
생각회로가 정지가 되어버린 상태....
정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불길이 밖으로 모두 내 몰리게....
"우리 예전에 끝난 사이 아냐...? 선배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가.."
"잊었나 본데.....난 너랑 끝낸적없어..."
"그게 무슨소리야.....지금 껏 아무소리 않다가....이제와서.."
"네가 힘들어 하는것 같길래....그냥 내버려 둔거야..난 너랑 끝낼생각 없어....일방적인 네 행동...여기까지야...."
"뭐..?일방적인 내행동..?그게 무슨말이야..?내가 끝내자고 했을 때 선밴 아무 말도 없었잖아....그랬잖아...잊었어.....?"
"네가 미쳐버릴 까봐....아무런 소리 못한거야....너 그러잖아...한번흥분하면...분에 못이겨....기절하고....너 그때너무 흥분되어 있었잖아...잘못될까봐...가만히 있었던 거지....네말에 동의 한건 아냐..그리고 너 바로 삐삐번호 바꾸고 일본으로 언어연수 떠나고...돌아와서도 한동안 연락안하고....내가 연락해서 만나자면 피하고....너 그랬잖아....그래놓고....우리 끝났다구....?너혼자 감정정리 하면...남아있는 난......나도 거기에 따라야 하는건가...?내 감정은 내 건데..."
"선배....왜 내가 선배에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몰라....?"
"알아....변명같지만 그땐...너무 어렸고....감정조절이 서툴렀고...철이 없었다고 해두자...하지만 너 한테도 잘못이 전혀 없는건 아냐..?"
".........?"
"여친인 넌 어땠냐...?넌 한번도 네 감정 솔직하게 보인적 없었지...늘 과제물 때문에 바쁘고....한번 무슨일에 빠지면...주위의 모든건 눈에 아들어 올 만큼 집중력을 보이고....네가 날 더 부채질한 거야."
선배의 말에 난 아무런 대꾸도 할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까다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아니까...
하지만....이제 다 지나간 일 아닌가....
벌써 5년전 일인데...
선배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시동을 걸며 날 봤다.
사실 타고 싶지 않았지만...가방이 안에 있어 할수 없이 들어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선밴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규칙적이지 못한 내 생활탓에 나도 학교를 졸업할 무렵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했다.
한번도 데리고 온적 없는데....선밴 내 오피스텔을 알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을 세우며 선밴 내 손에 열쇠를 쥐어주었다.
"다시 한번....기회를 줘....난 너 없인 안돼....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고....많은 맘고생...육체적 고생 이루 말할수 없이 당했어...죄값다 치렀다고 생각하고 받아줘.....이젠 감정 아무데나 흘리고 다니지 않을께....."
선배의 말에 착잡해지는 기분이였다.
선밸 아직 까지 못잊고 있긴 하지만...
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너무 잊고 있었던 감정인데....다시 시작하자구....
선배의 시선이 너무 진지해 ....열쇠는 받았다.
안도의 숨을 쉬는 선밸 보며....왜 웃음이 나는건지...
복잡한 심정....머리는 왜 또 정지하고 있는건지...
하루가 아주 피곤하고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