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큰 것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 중간에 이르름은 느낀다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혜영의 회사는 코 앞에 다가온 15주년 이벤트에 바쁜기색을 이곳저곳에서 느낄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이벤트는 항상 100%를 자랑하는
체육대회였다
부서별로 조를 나눠 상금과 상품을 거는 체육대회에선
많은 이들이 누구라도 할것 없이 참석률도 높지만
그 대회하나로 인한
사원들의 사기며.. 서로애를 느낄수 있기에
출발은 사장의 명령조로 시작하긴 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사원들의 자발적인 참석률이
이제는 100%에 이르게 되었다
혜영의 부서인 전산과에서는
부서사람 모두 참석하는 에어로빅을 하기로 했다
부서에서 젤로 잘할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해서
가장 성적이 우수한 부서엔
금돈 한냥과
문화상품권
또 보너스로 특별휴가를 쓸수 있는 3일의 기회를 갖을수가 있다
모든 부서의 사원들이 눈에 불을 키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혜영의 부서역시 마찬가지로
상금과 상품에 눈 먼 자들이기에
늦은 저녁까지 에어로빅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도 역시 힘든 연습을 하고 파 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혜영은 일찍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중이였다
태훈은 혜영에게 말하지 못한
부모님 설득작업에 들어갔고
그 전에 미주의 행방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퇴근후 미주와 마주쳤던 그 길을 매일 매일 출근도장을 찍듯히
배회를 한다
<한번쯤은 우연이라도 만날수 있겠지.... 이렇게 항상 기다리는데 ... 그 중에 한날은 걸리겠지...>
그치만 우연을 가장한 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어쩐일인지 아무리 일찍 도착하든 조금 늦게 도착을 하든
미주의 모습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았다
거리의 가로수 들은 벌써 단풍이 지는가 반면
낙엽이 무수히 떨어지고
그 나무 아래로 쉬임없이 쓸어데는 청소부의 모습만 눈에 띄게 보일뿐
미주의 모습은
그 청소부 아저씨의 모습처럼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오늘도 아닌다 보다...>
태훈은 항상 그러하듯
오늘도 허사라는 생각을 하고는
헤영의 집으로 차를 몬다
"혜영아 집앞이야 나올래?"
인근 공중전화해서 음성을 남기고 바로 집앞으로 이동을 하니
막 대문을 열고 나오는 혜영의 모습이 보인다
"빵빵~~~~~"
머리를 둘둘 꼬아 위로 올린 혜영의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하다
"왠일이야 오빠?"
"응... 주위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네 얼굴 보고 가려고"
"그랬구나..."
"에어로빅은 잘 하고 있어?"
"말도 마... 아무리 알려줘도 남자들은 왜들 그런거야?"
"크크크... 왜? 어떤데?"
"아휴~~~~ 이거 원 답이 안보여서.... 순서를 외우기는 커녕 제대로 율동도 못하고 맨날 야식먹자고만 하니...."
"남자들이 그렇치.. 아무래도 여자들만 못하잖아"
"그래도... 등수에만 들면 눈앞에 왔다 갔다 할 상품들을 생각해야지.."
"야야~~~ 넌 단지 상품만을 위해 하냐?"
"뭐.. 아니라고는 할수 없지.. 침목도 침목이지만.. 3일의 휴가는 누구한테나 오는 기회가 아니잖아?"
"하긴.. 나두 일주일.. 아니 한 3일만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셨으면 좋겠다"
"왜에~~ 오빠 무슨 고민있어? 그렇치 않아도 요즘 영~~ 기운도 없어 보이고 얼굴살도 많이 축나고..."
"내가?"
"응.."
얘길 하지 못했지만 몇시간씩 미주를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것이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데...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소모가 되긴 하나보다
항상 보는 자신의 얼굴이라 어떻게 변했는지 몰랐는데 ... 혜영의 물음에 순간 태훈은 뜨끔한 맘이 들었다
"그런건 아니구.. 그냥 4분기 마무리 하고 내년것도 슬슬 건드려야 하고 또 승진 시험이 있고 하니까 힘들었나 보다.."
"웅~~ "
"괜찮아 ... 오빠 건강해"
"그래... 몸 잘 챙기고... 오빠~ 우리 단풍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단풍?"
"응... 전주에 은주하고 용식이 하고 단풍구경갔다는데 너무 좋데.. 나두 가고 싶어"
"그래 이번주는 힘들고 담주엔 꼭 가자"
"약속이다?"
"알았어..."
"오빠 그러지 말고 집에 들어갔다 가라.. 아빤 아직 안들어 오셨구 .. 엄마하고 나뿐인데.."
"아냐.. 집에가서 할께 있어.. 담에 갈께..."
"그럴래?"
조금 실망한 혜영의 표정을 놓치지 않은 태훈은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해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미안해..."
"아냐.. 괜찮아... 조심해서 운전하고.."
"그래.. 가서 전화할께"
"응...."
차에서 내린 혜영은 태훈의 차가 안보일때 까지
쌀쌀한 가을의 저녁바람을 맞으면서
양손을 겨드랑이에 꼬옥~~ 끼고는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간다
"누구니?"
"엄마 나.."
"밖에 나갔다 왔어?
"으응~~~ 오빠가 요 앞에 왔다고 해서 잠깐..."
"혜영아 일루 와바"
"왜에 엄마?"
소파에 털석 주저 앉아 텔레비젼 리모콘을 집어든 혜영은
부른 엄마의 얼굴보단 텔레비젼에 먼저 시선을 고정시킨다
"태훈이네 집에서 별 얘기 없어?"
"뭔 얘기?"
"부모님 만나자는 얘기"
"아니.. 없던데"
"그래?"
"으응~~ 왜에?"
"아니... 그냥... 아빠가 태훈이 보고 어른들 만나자고 했다던데.. 말이 없어서"
"피~~~~ 엄만 내가 빨리 시집가는게 좋아?"
"얘는... 양쪽 집도 왔다 갔으니까 말이 나와야 할때가 되서 그런거지... 그럼.. 넌 평생 엄마하고 아빠하고 살래?"
"아니..... 때가 되면 가야지... 내가 하자있는 것도 아니고 왜 노처녀로 살아... 으으~~ 난 싫어"
"에고... 저 주책... 결혼생활이 그리 좋은건줄만 아네..."
"좋치...... 사랑하는 사람하고 사는데 왜 안좋아? 엄만 아빠하고 사는게 싫어?"
"에휴~~~~~ 저 철부지가 무슨 시집을 간다고..."
"치.. 엄마눈에나 철부지지 밖에 나가면 아니네 뭐..."
혜영은 엄마의 걱정어린 말에 아무렇치 않게 혓바닥을 내밀곤 방으로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이제오니.. 오늘은 더 늦었네? 저녁은 먹었니?"
"아뇨.. 죄송해요 어머니.. 찬밥 있으면 좀 주세요"
"이시간까지 밥도 못먹구 뭐했니?"
"그냥요.. 옷 갈아 입고 내려올께요"
"그래 빨리 챙겨줄께"
옷을 갈아 입고 나오자 벌써 식탁엔 늦은 저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요?"
"니 아버지 오늘 제주도에 가셨다"
"제주도요"
"그래.. 잘은 모르지만 콘도지을 땅 때문인 모양이더라... 자리가 좋다는 땅이 있는데 그 땅 주인이 팔 기미가 있다는구나.."
"네에..."
"태훈아~~~~"
밥 한수저를 가득 담아 먹는 태훈을 보고 어머님이 애잔하게 부르신다
"네"
"혜영이 말이다..."
반찬도 집지 못한 맨밥을 꿀꺽 삼키곤 어머니를 쳐다본다
"아버지는 영.. 반기는거 같지 않더구나..."
"어머님이 조금더 설득 해주세요"
"나야 하는데 까진 하지만.. 아버지가 뭐 어디 그런사람이니?"
"혜영인 혜영이일 뿐이예요... "
"그래그래~~ 그거야 나도 알지"
"그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하신다는건 이유가 되지 않아요... 물론 미주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아픔이 있고 정도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그리고 혜영인 아주 좋은애예요 또 사랑스럽구요..."
"그래....."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말의 허리를 잘라 버린다
늦은 저녁 자신때문에 제대로 밥 수저를 푸지 못하는것이 미안한지
어여 먹으라는 말을 하고 주방을 빠져 나가신다
무슨맛인지도 모르는 태훈은 그저 입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밥 한끼 안먹는다고 삶이 마감되는것도 아니데
배고픔이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힘들어서
먹는 자신이 별수 없는 하찮은 인간이라 느껴지기도 하고
차려주신 어머님의 성의가 있는 밥상인데
태훈은 그냥 그렇게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하면서 삼킬 뿐이였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타가지고 2층으로 올라온 태훈은
침대 밑에서 무언가 작은 상자를 꺼낸다
한참동안 만지지 않았던 상자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는데
미주와 만나고 난 후 부턴
매일 매일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본다
<정말... 내가 미주를 잊지 못한건가? 혜영을 사랑하면서... 혜영이와 결혼을 할것인데... 이 추억의 상자에 미련이 남아 있는건 왜일까?>
그녀의 사진
함께한 사진
서로에게 보냈던 편지
짝을 맞춰 서로의 손가락에 끼웠던 반지
태훈이 힘들어한 지난시절 끄적였던 일기장
작지만 그 상자안에는 지난 시절의 미주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미주를 만난날부터 다시 시작된 일기는
년도수가 지나도 한참은 지난 현재부터 다시 쓰게 되었다
(오늘도 허탕을 쳤지만 널 다시 만날수 있다는 기대를 져버리지 못했어.. 널 보면 어떤 무엇을 다시 시작하는것도 아닌데.. 이런 내 자신이 참 웃끼기도 하다
나 참 웃낀 놈이다... 널 기다리고는 혜영이를 만나고 왔거든
진짜 웃끼지?
미주야..... 왠지 너의 불행이 나때문에 시작된거 같아서 너에게 미안한 맘이 든다
그날 만났을때 너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는데
그때 내가 술을 그렇게 먹지 않았더라면
널 그 자리에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아무일도 없을텐데
그럼 우린 지금 아마도 결혼해서 자식하나는 있을텐데
또 널 잊을려고 발버둥 쳤었는데
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널 찾을려고 하는 내 모습은
온통 모순 덩어리 뿐이다
미주야? 도데체 어디있는거니? 네 연락처라도 알면 이렇게 불편하진 않을텐데... 내가 죄가 많은가 보다
너에게도
또 지금 내게 있는 혜영에게도
너에게 혜영이를 보여주고 싶어
그래도 될런지.....
아마 너도 보면 놀랄꺼야
네 동생해도 모르는 사람들은 믿을꺼야
그런 아이가 내 옆에 있는데
왜 나는 너를 보고싶어 하는걸까
아버지가 생각하는 걱정이
지금 이런 내 맘인가 보다
미주야.........)
일기장을 덮는 태훈은
어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그 노트위에 적는것일지도 모른다
추억이란.......
아름답고 생각하면 좋은것이긴 하지만
그 추억에 얽매여 이렇게 현실을 구분짓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또 냉철하게 맺고 끊지 못하는 행동이
이해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며
설득시킨후에도 미주에 대한 자신의 이런 감정은 어떻게 마무리져야 하며
그 걱정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면
자신은 미주와 혜영에게 정말 아픔을 되새겨 주는 꼴이 될텐데...
<아냐... 미주는 그리움과 아픔의 연민이고 혜영이는 사랑의 대상자야>
이제 그만 미주를 찾는것은 포기하려 마음을 먹는다
정말 우연이라면 그 다시 만나는 것은 그 동네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도 만날수 있을테니까
그때는 자연스럽게 기쁘게 인사하고 돌아서야지
정말 그런날이 온다면.......
태훈을 상자를 침대 밑에 집어 넣고
혜영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