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난 유서린 네게 관심많아...내가 지금까지 느껴온 이성은 네가 첨이고 아마 끝까지 너 뿐일 거야.....말 안하면 끝까지 모를것 같아 말해두는 거야....이젠 더 이상 내 감정을 숨길 수 없으니까....나혼자만 괴로워 하는 것도 이젠 힘드니까.....네 대답은 ...아직 듣고 싶지않아.....날 싫어한데도 난 상관없어...내감정은 내 것이니까....억지라고 욕해도 괜찮아...."
세현이 고백은 날 많이 놀라게 하고 있었지만 이젠 첨보단 많이 진정이되어 가고 있었다.
많은 말을 쉬지 않고 한번에 고백하는 세현이 탓도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마치 준비된 대본이라도 읽는 것처럼 세현인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학교 제일의 바람인 윤세현의 고백은 날 당황스럽게 하긴 했지만 왠지 싫은 기분은 아니였다.
토요일날 처음으로 세현일 의식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감이 둔해서 인지....난 나도 모르게 세현일 의식해온게 그날이 처음이 아닌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세현일 의식해 온것 같았다.
앞머리칼이 길어 짙은 눈섭을 덮고 있었던 봄날의 세현이의 모습에 혼자서 가슴 뛰었던 기억....
비 오는날 저녁 독서실 옥상에서 담밸 입에 물고 있던 세현이의 옆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설레였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때그때 마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거지 난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세현이의 여러가지 모습을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그런 내 감정을 잘 숨기고 있었던 것은.....세현인 나와는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라는 자기 암시가 컸던 탓일것이다.
늘 학교의 인기 많은 여자애들과 함께인 세현일 보며 난 내게서 세현일 제외 시키고 있었나 보다....나완 너무도 안 어울릴 거라고...
버스를 타고 함께 내렸다.
세현인 우리집에서 두어정거장 더 가야 하는데 ....날 따라서 내렸다.
재색 더불 재킷에 손을 찌른체 걷고 있던 세현이 아파트 입구쪽에서 발길을 돌리며 날 봤다.
"잠깐....얘기좀 더 할래...?"
"........."
"이대론 찜찜해서 그래....넌...아무렇지도 않아...?"
세현이 말에 난 고개만 끄떡였다.
이렇게 아무런 결론도 없이 들어가긴 나도 찜찜했다.
매일 한교실에서 볼텐데 볼때마다 어색한건 정말 아니였다.
그렇다고 무슨 결론을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세현이 아파트 옆의 공원으로 먼저 들어섰다.
벌써 6시가 넘어서인지 공원은 어둑어둑 했다.
희미한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가을이라 심어놓은 작은 국화들이 이젠 찬 날씨탓에 많이들 시들었고 간간히 얼어도 있었다.
공원 관리인이 없기 때문인가....
벤취로 가서 먼저 앉으며 세현이 말했다.
"많이 놀랍지.....전혀 그런 내색 않하다가 갑자기 관심있다고 떠들어대고...."
"....좀 ...그렇지...."
"근데...너도 나 한테 영 맘이 없는건 아니지 않냐...?"
"......뭐....?"
"발 뺌할 생각마....이런말 내가 직접 말하긴 뭐하지만....너 가끔 날 잘 훔쳐 보곤하잖아.....아냐..?"
정말 ...쥐구멍이 어디 있는걸까..?
그럼 얜 지금까지 내가 자길 보고 있었다는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얼굴이 화끈 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세현이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필요했다.
"나...알고 있었어...네 시선 느끼면서 얼마나 떨리고 긴장 했는지 몰라...네가 날 보고 있다는걸 알땐 눈 한번 깜빡이기도 힘들었다구...넌 몰랐겠지만....가끔은 연출된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구...몰랐지...?"
멋적어 하며 작게 웃는 세현일 보며 난 부끄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려고도 했다.
"어때 한번 사귀어 볼래...?너도 알다시피 난 사귀어 본 여자친군 네가 첨이야.....그냥 여러명이서 한꺼번에 사귀는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느껴서 사귀는 친군 네가 첨이라구......"
수줍은 듯 말하는 세현인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왔던 남자애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찬 바람에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는 모습...
가끔씩 훔쳐 보던 얼굴과 비슷하긴 하지만...그 모습들은 늘 자신에 차있던 당당한 모습이였는데....지금은 웬지....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얼굴이였다.
"왜...대답이 없어....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대답이 있어야 할것 아냐......"
"........알고 있다면서....내가 보고 있다는것 알고 있다면서...무슨 대답이 필요한건데..."
내말에 세현이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내 손을 마주 잡고 세현이 말했다.
"나 ...잘할께....정말 아주 잘해 줄께....고맙다 유서린....."
무슨 감동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오버하는 듯한 세현이 행동은 날 많이 부끄럽게도 했지만 기분을 업해 주기도 했다.
쿨 가이 답지 않은 모습이였다.
아파트 입구에 서며 세현이 말했다.
"나 이젠 참지 않을거다....너랑 매일 매일 뽀뽀 할거야....잘가"
뭐........?
뭐......?
뒤돌아서 뛰어가는 세현일 보며 난 기막혔다.
철없는 유치원 생도 아니고....
내가 알고 있던 윤세현이 저런 남자애였나.....?
저렇게 유치찬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런 아이였나...?
놀랍고도 놀라왔다.
정말 윤세현인 어떤 애인 걸까..?
지금까지 내가 세현인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혼란스러운 저녁이였다.
서희에게서 여러번 전화가왔었다고 했다.
서희 이름을 들으니 아까 버섯동자 에서의 일이 생각나 습쓸했다.
세현이의 생각을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한마디 언질도 없었다니..
생각할 수록 섭섭했다.
난 자기와 동건이 사귈때 이런저런 얘길 많이 해주었는데...
정말 서희의 행동은 날 많이 실망 시키고 섭섭케 했다.
10시쯤 영어듣기 평가 복습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며 유린 언니가 전화기를 넘겨 줬다.
귤을 쟁반 가득 담아서 들고 있는 유린 언닐 보며 난 혀를 찼다.
집에 사다놓은 귤을 혼자 다 먹어버리는 유린언니다.
손,발이 노랗게 변한 적이 여러번 있을 정도로 유린언닌 귤을 끼고 산다.
전환 서희였다.
시큰둥한 내 목소리에 서흰 많이 미안해 했다.
"너 많이 섭섭했나 보구나.....내가 전화 여러번 했는데....전화도 안해주구...."
"당연한것 아냐...난 오늘 다시 생각했어....내가 너 생각하는 만큼 니가 날 생각하지 않는다는것...."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정말 내 단짝 친구 조서희 맞냐구....?난 너한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말하는데....넌 그렇지 않잖아....?"
"그게....동건이 그애들이 말하지 말라구 부탁했단 말야...나도 쉽지 않았다구...."
"....뭐....?"
"나도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 뭐...걔들이 얼마나 말하지 말아달라구 다짐했는지 넌 모를 거야....."
"...너...정말이지....?"
"이젠 세현이가 자기 맘 털어놨는데...더이상 숨길 필요없는데 왜 거짓말을 하겠어....정말이야..."
기막혀....기가 막혀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둔한지.....새삼 깨달았다.
'너...마음 풀어....나두 그동안 그 문제만 생각하면 맘이 편치 않았단 말야....암튼 내 의돈 아니였지만 미안해...정말이야....."
계속 대답않는 내 행동이 불안했던지 서희가 걱정스런 목소릴 냈다.
"서린아...듣고 있는 거야....너 기분 많이 나쁜거 아는데....나 ..용서해줘...응..?"
"좀...기다려봐...생각 좀 정리하고.....내일 학교서 얘기하자...이만 끊을께...."
"서린아......"
"미안...."
전화를 끊고 난 생각에 잠겼다.
이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내가 그렇게 티나게 세현일 봐 왔던 걸까...?
그리고 정효도 날 맘에 두고 있다니....
세현이도 그렇지만 ....정말 몰랐다.
둘이 날보고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꿈에도 몰랐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야 할 일인가....?
아님 .....따지고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지....
하긴 따지기도 우습지 않은가..?
내가 너무 둔해서 일어난 일인걸....
정말 알수없는 기분이였다.
아침에 방송실에서 본 서희 얼굴은 말이 아니게 상해있었다.
어제 내 전화이후로 잠을 설친것 같았다.
동건이 서희 얼굴이 왜 저러냐구 내게 눈으로 물어왔지만 난 시선을 피해버렸다.
당황하는 동건이 보였지만 모른척 했다.
준비해온 원고를 넘기고 음악을 걸려고 음반을 찾았다.
오늘 선곡은 하모니카 연주곡 노르웨이의 숲으로 가다중 한곡을 골랐다.
선명한 가을하늘에 어울리는 청명한 하모니카 소리....
곧이어 멘트를 읽는 동건이의 듣기 좋은 허스키 목소리가 들렸다.
일학년 애들이 내게 눈짓을 보내며 웃음을 날렸다.
옆에서 내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서흴보며 난 손짓했다.
아직 방송중인데 밖으로 나가자는 내게 서흰 놀란 얼굴을 했지만...
멘트를 끝낸 동건이도 우릴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나가고 서희가 따라 나왔다.
방송실옆 베란다로 나갔다.
벽쪽에 어깰 기대며 난 서흴 봤다.
"어제....잠 설쳤지....?"
"....보면 몰라..?"
많이 섭했는지 목소리가 새침했다.
"그러게 왜 죄을지어....그애들이 말하지 말랬다고...꼭 그래야 했냐구...난 정말 섭했다구....."
"알아...하지만 네가 내입장 이였어도 그랬을거야.....자기들 감정 네가 눈치 체거나 아님 자기둘중 하나가 먼저 말하기 전엔 아무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단 말야....너무 무신경한 니 탓도 있긴 하잖아."
자기도 피해자라고 말하는 서흴 내가 조소하는 얼굴로 보자 서흰 금방 얼굴을 굳히며 울려고 했다.
난 그걸보고 얼른 얼굴을 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희 잘못도 아닌걸.....뭐...
"알았어....이젠 그만하자...잊어버릴께.....이젠 신경쓰지마..."
"...정말이지....?"
"그래....얼굴 펴.....그리구 다신 나 실망시키지마.....상처 받았단말야.....알았지.......?"
내말에 서흰 끄떡였다.
세현이와의 일에 대해 묻는 서희에게 난 그냥 한번사귀어 보기로 했다고만 말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세현이 했던 말은 차마 할수가 없었다.
비밀이 생긴 걸까....?
하지만 ....그말은....정말 하지못하겠다.
세현인 정말 이상했다.
내게 그 고백을 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딱히 무얼 바라고 있는건 아니지만.....그래도 사귀자고 고백해놓고선..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건 이해가 안되었다.
정효가 자기의 완패라고 내게 말해오면서 세현이와 예쁘게 잘 사귀라고 말해왔는데....세현이 에게선 아무런 변화나 행동도 없었다.
평소와 똑같은 매일 매일이 지나고 있었다.
부딪칠 때마다 긴장하고 의식하고 있는 내가 이젠 이상한 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으려 했던 무언가를 잡긴 했는데....손을 펴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걸 확인하고 허무해지는 그런 느낌을 요즘의 난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동건이나 정효,서희만 알고 있을뿐....다른 애들은 아무도 눈치못체고 있었다.
우리가 사귀기로 한 사실을...
모두가 알길 바라는건 아니지만....이건 아닌것 같았다....
혹시 또 장난인가....
이번엔 좀 심각한 장난말이다....
날 골려먹으려고 모두 짠 것 아닐까....?
불안한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나사가 풀려나간 사람처럼.....하루하루가 시시하고 재미 없었다.
토요일 방과후 였다.
교문을 나서는데 문자 메세지가 왔다.
세현이였다.
옆의 서희도 함께 봤다.
[3시에 공원에서 보자.....늦지 않게 나와....알았지....?]
"뭐야....데이트 신청인가 보네..."
서희의 놀리는 듯한 말에 난 작게 인상을 써보였다.
"너 많이 기다렸잖아......"
"내가 언제....."
"숨기지 않아도 돼.....나도 예전에 동건이 사귈때 매일 토요일 약속 기다렸단 말야...보통 땐 야자 때문에 늦으니까...."
동건이 얘기가 나오자 서희가 씁쓸해 했다.
금방 표정을 풀면서 서희가 말했다.
"세현이도 고전적인 방법론 인가봐....?"
"고전적인 방법이라니.....?"
"처음 만나면 영화부터 보자고 하는 기본 메뉴얼 말야....보통은 첨에 다 그렇게 시작하거든....."
그런가 보다.
영화를 보자고 할것 같다.
여럿이서 함께 영화를 본적은 여러번 있었지만......만약 오늘 영화를 본다면 처음이다.둘이서 보는 건....
왠지 생각만으로도 떨리고....긴장이 되었다.
서희와 헤어져 오면서 슈퍼에서 포카리를 샀다.
난 음료수는 포카리 밖에 안마신다.
무슨 맛인지 정체성을 알수 없는 음료수를 마신다고 정효가 늘 핀잔을 주지만 ...내 입맛엔 포카리가 제일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