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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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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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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BY 올리브 2002-11-04

** 신세계(?) ***


<그녀>

'크림' 오빠가 접속을 끝내고도 난 그대로 컴퓨터에 남아 있었다.
문득 왜 아직까지 난 컴퓨터 동호회에 집착하는가 싶었다.

방학이 되기전 마음속에서 몇번이나 준비한 계획표가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산된다는 것을
학창시절 내내 반복하며 경험해왔었지.
막상 방학이 되면 내가 계획하지 못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난 일들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것인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리하여 그 일에 잠시 정신이 빠져 시간을 보내다가
방학 막바지에 오면 나의 불쌍한 계획들을 보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딴일에 빠져 보낸 시간들을 원망하거나 후회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시절을 채워줄수있던 추억 하나하나가 소중한 시기였으니...
인생도 그런거겠지.
수많은 계획과 마음의 다짐들을 뒤로 하고 튀어나오는 복병과 같은 사건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달랐다.
어린시절의 방학 계획표와는 달리 인생의 계획표는
내가 미처 하지못한 일에 대한 철저한 배상을 요구했다.
심각한 자괴감과 후회 그리고 실패까지...
그래서인지 스물의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것이 항상 두려웠다.
음식점도 새로운 곳보다는 이전의 갔던 곳의 입맛이 더 편했다.
비록 새롭고 신선하지 않더라도...
인간관계또한 그랬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이전의 친구에게 마음씀을 중요시해야된다고 믿으며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 나도 서서히 기성세대들의 안주에 편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한 유부녀에게 '사랑'이라는건 참 모순덩어리일지도 모른다.
내 몸에 있는 남은 한방울의 사랑까지도 다 짜내면서
가족들에게 주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사랑에 목말라 아니,
당장이라도 수혈받아야만 하는 메마른 존재들은 아닐지...
남편은 바깥일에 바쁘고 힘들어 어떤때는 내가 주는 사랑도 받을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아직은 받는거에 익숙한 존재들이라
그들이 가끔씩 주는 사랑은 정말 값지지만 언제나 허기를 느낀다.
삶이란 항상 공허했다.
채원진듯하면서도 항상 비워있었고
가진듯해도 결국 내것이 아닌듯
이전에 내가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하긴했었지하는
아련한 추억의 끝자락을 잡는 느낌만이 나의 서른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만난 인터넷은 신세계였다.
온전한 나자신으로 돌아갈수있는 공간...
나의 스무살의 꿈을 꿀수있도록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것 같았다.
잃었던 감성들을 살아움직이게 도와주었으며
하루하루 나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여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무살의 그 시절처럼....

그래서일까?
쉽게 세상에 노출되기도 했다.
유부들에게 금기시까지도 되는 이성과의 만남도 그리 복잡고 힘든것이 아니였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만날수있었고 사랑도 할수있었다.
아니, '사랑'만은 아니다.
사실 "채팅"에서는 참 하기 힘든일이 '사랑'이지싶다.
난 곧잘 '채팅맨'라는 표현을 쓰곤했다.
누가 그랬다.
'채팅맨'이 가장 꺼리는 여자...
ㅡ혼자있는 여자(미혼이 아닌 어떠한 이유로든지 이혼,별거 주말부부등등..)
ㅡ남편과 사이가 나쁜 여자
훗~ 참 우습지 않는가.
물론 그 사람 생각이 틀릴수도 있는데 곰곰히 들으면 일리가 있다.
이 두 대상은 즐기기(?)에는 뭔가 뒷탈이 남는다는 소리이다.
가볍게 만나서 즐기고는 싶은데 그러다가 감정이라도 생기면
유부인 '채팅맨'들이 쉽게 끝내지 못하는 상황을 가진 경우라는거다.
물론 공감한다.
그들 눈엔 여자들 역시 '채팅녀'이지 않는가?
인터넷에 와서 게임과 동호회활동등 아무리 떳떳하게 있더라 해도
채팅사이트라는 곳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는가?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호기심이일지만 견디기 힘든일 또한 그런것이였다.
수많은 사람과의 격이 없는 대화.
낯선 이성과의 대화.
가볍게 보고 가볍게 보이는...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나면 요령이 생긴다.
수신거부 하는법이랑 동호회 가입이라는것도 하게되고 그러면
쓸데없이 나자신이 노출되어 귀찮은 일들이 줄어드는것이다.
내가 원하는것만 할수있는 자유로움이 생긴다.
역시 세상에는 쉽게 얻는것은 없었다.
이렇듯 너무나 많은 사람과 상황들속에서 다가오는 감정들을
너무 쉽게 때로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이성일때는 더욱 그런것 같았다.
단순한 호의에도 예민하게 경직했고 사소한 감정에 나자신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일찍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다행히 잘 비켜나갔었다.
지난 여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