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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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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올리브 2002-11-03

** 가을속으로 **


<그녀>



거리를 물들이는 은행잎의 노란빛은
어느틈엔가 공기에도 스며들어 가을을 이끌고 있었다.
여름 끝자락에 묻어있던 외로움과 혼란스러움을 채 떨쳐버리지 못하던 오후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동호회에 올라온 글들을 앞에 놓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혼자 놀면 잼있냐?//
불쑥 튀어나온 쪽지라는 이름의 네모박스
그였다.
'하필이면...'
가끔씩 채팅방에서 보던 그.
약간은 장난스럽고 무례한 그.
동호회 정기모임에 일찍 자리를 뜬 나를 책망하던 그.
시큰둥하게 또는 얄밉게 대하던 그.
하지만 정기모임 사진에 올려진
그는 해맑은 '청년'의 얼굴로 '소년'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청년'이란 말이 좋았다.
'소년'이 가지는 순수한 느낌은 간혹 나를 불안케 했고
장년의 남자가 가지는 특유의 세상에 대한 능숙함과 이기심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청년'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듯한 맑은 얼굴로
힘든 세상을 대하면서도 물러서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어있는 시기의 남자.
소녀시절 소년이란 말보다 더 나를 가슴설레이게 만든 그 단어.
난 항상 '청년'같은 남자를 꿈꾸고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청년'과 '소년'의 중간 이미지였다.
보호해주고싶은 보호받고싶은 애매모호함이 있는 이미지.
어쩌면 그의 선한 첫인상이주는 애매모호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를 일부러 무시(?)하려는 본능이 꿈틀거렸는지도 모른다.

/응..재미떠...ㅡㅡ;;....크림옵은 나 놀리면 재미떠?.../
//구래...너 비겁하게 정모때 우리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가냐? 배신자..ㅡㅡ*//
/웅 나 배신자당...우짤래?/
//저거이 한마디도 말은 안질라구...ㅜ.ㅡ//
/치.../
//모하냐?//
/보면 몰러? 놀구 이떠 대기실서...../
//집이냐?//
/그럼 아짐이 이시간에 겜방에 있냐?/
//너 정모때 일찍 갔으니 커피나 한잔 사라. 나 너거동네 지나갈일 이따//
/커피??...자판기커피는 살수이떠..길거리서../
//치사하다... 내 돈으로 사먹는다//
/진작 그럴것이징..ㅡㅡ*/
//군데...너 사진보니 머리 엄청 크던데...실제로도 머리 크냐?//
/헉~...모가 커???????/
//모리...가슴은 빈약한거 같두만....떱//
/두글래?????/
//성깔은 여전하구만....암만해도 모여라 꿈동산들이 성깔도 있나봐...//
/꿈동산????.......퍼벅!!!!!!!/
//좀있다 출발할테니 동네 다 와가면 저나할께...지둘리고 이떠~//
/켁~..내 전번 어케 아러??/
//정모때 비상연락망 이떠....바부팅이...//
/만나면 보장....두거쏘!!!!!!!!!/

항상 이런식이다.
시덥잖은 대화밖에 나눠본적이 없었다.
오늘은 왠일인지 쪽지까지 보내구.
그런데 이상한건 나였다.
왜 딱 짤라 거절하지 못하였는지...
"하필이면 서럽도록 외로운날 그를 만나게?榮쩝?..."

이렇게 나의 긴 여행은 계획없는 준비를 하며 가을속으로....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