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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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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


BY 김隱秘 2002-12-24

0000 여운 0000

별장 하늘의 근두운을 타고 날아본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그림자가 빛으로 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속삭이며 빛을 본다. 그래서 그걸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다. 늘 경건해야 되고 요부 같아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실제의 사람들은 어두움 속에서 피는 아름다운 빛을 사모하여 서로의 살을 문질러 태우고 있지 않는가.
확실한 빛을 내지 못한 사람들은 늘 기웃거린다. 인내하며 기다리고 애를 써 보다가 결국 그들은 서로가 불을 지필 수 없음을 알면 무슨 핑계를 대서 새로운 불을 얻으려 하지 않는가.. 때론 우린 돈으로 그걸 사려한다. 황홀한 불을 찾아 헤메고 기웃거린다. 마취가 된 사람들은 더러는 착각을 일으키고 집안에 둔 전광석화 같은 불을 팽개치고 정말 보잘것 없는 곳으로 제 몸을 던지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지 않던가...
지금까지 내가 어두움 속에서 얻었던 불은 늘 그랬다. 그림자 속에서 찾았다고 생각한 빛은 잠시잠깐의 번개불처럼 번쩍이다가 결국 어둠으로 다시 오곤 했었다. 그러나 몸매가 환상적이지 못하고 얼굴이 곱지 않고 입술이 정열적이지 못하다고 판단 했던 미망인 순미에게서 얻은 것은 이제껏 내가 가졌던 어느 불보다 환희였고 기쁨이고 초롱초롱한 불이고 정말 내가 찾던 희망의 불이였다. 이제 어쩌면 나도 사랑의 고기를 나누어 먹는 법을 알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대가 나를 무척 기분 좋게 했다.

밤을 새우고 싶었지만 동거자들의 눈치 때문에 우린 매무새를 고치고 작품실을 나와 산책길을 걸었다. 그녀의 손이 손난로처럼 따끈하다. 가슴도 따습더니 손도 참 따스하네...

"선생님, 오늘은 돌아 가세요"
"알았소"

아직도 고이 남아 있는 여운을 난 떨치고 싶지 않았다. 대개의 남자들은 사정을 한 후에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내겐 적용 되지 않았다. 정말 나의 몸 속의 혼같은 씨앗을 밭에다 심고 돌아오는 농부의 심정이 지금일까...

난 그를 되 포옹을 하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별장을 벗어 났다. 회사차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흘끗 본다.

"집에 ..."

차가 이내 미끄러진다.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이 평화롭다. 일시에 모든 걱정이 날아 갔나보다. 순미의 얼굴과 연출했던 대사와 극본들이 리플레이 된다. 눈을 감으면 정말 포말처럼 일어 오르는 순간이 영원히 잊지 못할 비망의 활동사진으로 가슴에 박힌다.

<이제 나도 정착하여 살아보자. 방황을 끝내고 이제라도 인생을 쓰는거야..>>

"다 왔습니다."

난 차에서 내렸다. 새로생긴 우 라는 24시 편의점이 오픈을 한 모양이다. 나래이터 아가씨들이 궁둥짝을 흔들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들을 쳐다보던 나는 픽 웃었다. 참 몸매 좋네..
속에서 그랬다. 내 속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게 남자의 마음이지...아니 남자만 그럴라고 여자는 갈대랬잖아...사람 나름이라고...글쎄 정립이 안됐다. 담배를 하나 빼물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 섰다.
소주나 한병 먹자..혼자면 어때..오징어 포를 곁들여 들고 나온다. 아까와는 다르게 금새 내 마음이 추워지기 시작 했다. 둔곡리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 거기가 나의 집인 것 같았다. 갈 곳이 거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남자가 여자를 소유한 후의 생리가 아닐까.. 그래, 난 갈데가 있어..그녀는 내거야..
답배맛이 무척 좋았다. 깡소주를 한잔하고 푹 쉬고 싶었다.

집은 여전히 조용하겠지. 불꺼진 채로 그냥 있겠지.
대문 앞에 섰다. 순간 까맣고 긴 차가 차가 내 옆에와 급정거를 한다.
차문이 열리고..

"야, 마침 있었구나!"

윤식이었다.

"야, 내일 온다고 했잖아?"
"응, 오늘 일찍 왔어. 술도 좀 먹고, 또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그래, 알았다. 참 잘됐다. 오늘 심심한 참인데.."

차 트렁크가 열린다. 꺼내는 것은 항공 가방이다.
차에다 대고 뭐라고 지껄이니까 이내 떠나는 차 안을 보니 까만 안경을 쓴 운전자와 다른 두사람이 있는데 모두 까만 양복을 입고 머리는 체육형 헤어 스타일이다.
조폭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겁냐?"
"아니, 별로.."
"근데, 답지 않게 가방을 가지고 다녀..?"
"응...이게 그거야.."

그거라는 것은 바로 옥순이와 란같은 여자에게 내가 설치(?)한 비기, 즉 광선총을 맞은 두사람의 추적 기록 CD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 CD는 과연 어던 모습으로 내개 보여질 것인가. 아마도 몰카정도 되지 않을까..
세상의 통신 기술이 한 없이 발전하다보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도청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제 사람몸에 추적을 연결해 주는 광선만 투과 시킨다면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영상으로 기록 된다는 말인가...
스스로 개발한 기술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사슬을 차고 자력멸망하는건 아닐까.
제다리를 감고 넘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의 편익을 위하여 개발한 수많은 이기들이 이제는 인생을 ?아내고 실업자를 양산하는 흉물로 다가와 자리잡지 않았는가...

인간 교만에 대하여 성경의 기록이 이랬단다. 무슨 탑을 쌓다가 하나님이 이를 다 흩었다고 하던데...아, 그랬다. 시날이라는 평지에 사람이 쌓아올린 바벨탑의 사건이 생각 났다. 어릴적 에 다니던 교회에서 담임 여자 선생님이 여러번 되뇌이던 바벨탑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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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 >>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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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탑을 쌓다가 결국 실패하고 마는 내용인데..지금 우리의 인생들이 하는 짓이 그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윤식이와 난 가방을 끌고 들어 갔다. 방이 썰렁하다. 보일러를 연속으로 돌리고 온도를 높인다.

"자, 우선 앉아라. 먹을 것도 없거. 우선 쐬주나 한잔 하지 뭐..?"
"그래, 깡소주 먹는게 내 취미 아니냐.."

나는 소주잔을 두개 놓아서 상을 가지고 왔다. 봉지에서 오징어와 소주를 꺼내 놓는다.

"야, 가방 이쪽으로 우선 밀어 놔"
"그래, 그럼 우선 한잔하자..그리고 전화해 뭐 배달하는데 있을거 아냐.."
"알았어.."

난 냉장고에 붙어 있는 병따개를 들여다 보면서 배달주문을 했다. 넉넉한 안주를 청했다. 싱싱한 횟감에 매운탕까지 배달해 주는 집에서는 단골인 나를 잘 알아봐 준다. 늘 넉넉히 팁까지 준 덕에 말이 너무 싹싹하다.

"야, 우선 한잔씩 하지..."

우린 단랑 놓인 술상 위로 초라한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참 웃기는 건배였던지 둘다 킥킥 웃고 말았다.

"야임마, 너 혼자 살지좀 마라"
"나는 그렇고 어쩔껴?"
"나, 나야 어짜피 포기 했지.."
"포기하다니.."
"옥순이, 고거 뭔가 내 맘이 시원하게 날 싫어하는 이유가 밝혀지기 전에는 나먼저 못가.."

그랬다. 윤식이는 본래 오기가 대단한 놈이다. 옥니도 보통 옥니가 아니다. 저를 좋다고 죽자사자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변해버린 옥순이의 진심을 알기 전에야...더구다나 그녀가 시집을 간것도 아니고 혼자 산다는데 다른 여자하고 결혼을 할 수 있겠는가..

옥순이는 수시로 주소를 옮겼고 이를 찾아낼 때마다 옥순이는 자기를 잊어 버리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가 어찌 쉽게 단년할 수 있겠는가.. 이유를 물어도 말해 주지 않고 자기는 갈길이 따로 잇다고만 했다는데...애원도 해보고 엄포도 놔보고 했지만 도저히 옥순이의 진심을 알 수가 없었단다.

윤식이와 난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간에 기병이 좀 갔는지 그가 가방을 연다. 몇개의 잭이 있었다. 여기 저기를 능란한 솜씨로 찾는 윤식이를 본다. 참으로 진지하다. 정말 저 기게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줄것인지 자못 궁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