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요지경 000
예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삼촌, 고마워요..아직 믿어지지 않아요...쫌 생각해 보고.."
예나의 눈빛을 관찰하는동안 나의 눈은 그녀가 왜 나의 청을 거절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렇기도 하겠지. 이상한 자리에서 만난 인연 나부랭이 하나로 학교를 보내 주겠다느니 횡설수설 대고 있고, 그것도 혼자사는 홀애비의 말이니 어찌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겠는가.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형편에 그가 나를 믿는다는건 억지라고 생각 했다. 하기야 하루에도 수백번 변하는게 사람인데..나도 예나를 언제까지나 친조카로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 않은가...
"언제고 오고 싶으면 와, 학교가 가고 싶거나, 살기가 힘들면..."
난 그녀의 가방든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내 맘속 한구석에서는 < 꼴에 값하네 > 하는 비판과 조소가 킥킥거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다.
금방 성자가 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나를 만나서 나를 조금은 돌아볼 수 있었는데...
예나는 그렇게 가고 나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바람이 구름이 태양이 피고지고 피고지고 세월이 그렇게 가지만 산은 물은 모양을 유지한채 늘 역사를 머금고 존재하는 것처럼 외로움에 이골난 나만 바람에 기대고 서 있는 것이려니
한 지붕 아래서 밥상을 놓고 희망을 줄 것 같았던 시간이 못내 아쉬워 난 돈을 한웅큼 쥐어 주었다. 굳이 금액을 따지자면 한 30만원은 될테지...또 어디선가 나를 조소하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주제에 무슨 자선사업가라도 돼냐 돈을 주는 이유가 뭐야? 혹시, 낚시밥 아냐..?
나도 모르지. 이 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냥 예나에게 주고 싶은 행동뿐이걸...
<출근을 해야지..>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이사님, 호출이예요"
"누구?"
"네, 사모님이요."
접견실로 갔다. 란같은 사모님이 앉아 있었다. 늘상 봐도 고고함을 잃지 않은 여자. 세상을 미소로 다스릴 것 같은 여자. 은은한 향기가 펑기는 여자. 그래 저런 여자가 성박사 같은 장애인과 일생을 산다는 건 좀 불행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그런 생각 보다는 그들의 생활이 더 궁금 했던적이 있었던 것 같다. 지지리도 못난 주제에 무언가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도 이상한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의 전력(?)때문에 난 비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핀잔을 친구들에게 종종 들었고 업신여김을 받기도 했던 경력이 있지 않은가..
"부르셨습니까..?"
'네, 앉으세요"
이내 녹차가 나왔다.
"녹차가 사람게 좋다대요. 드세요^^"
"네, 오늘 사모님 분위기가 너무 고우시네요. 숨이 차게.."
"ㅎㅎㅎ 참 표현이 재밋네요. 이사님은 저를 늘 좋게만 봐주시는 것 같애요^^"
"네, 사모님같으신분 어디 없어요 ?"
"농담도 잘하시네 ^^ 싫지는 않네요"
"아닙니다. 사실이예요..."
이 말만큼은 진실이었다, 그녀는 미인이다. 많은 사람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지만 이 여자의 미적인 분류는 남들과 좀 다르다. 어쩌면 그녀가 그 미모에 멋진 남자와 산다면 별로 돋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남편이 장애자가 아니던가..
남자들은 가끔 미인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를 보면서 너무 짝이 기울다던지, 아니면 운수가 좋은 남자라든지, 여복이 많다든지 하면서 < 자식, 꼴에 마누라는 이쁘네> 하면서 삐쭉거리는 예가 있지 않은가 제 마누라는 여자 취급도 않고....
"다음주 금요일에 김포공항에 저와 같이 나가야 겠어요.."
"네? 공항이요?"
"네, 사장님이 유럽 가시거든요. 저번에 제가 한번 말씀드린것 같은데.."
"네...."
"준비는 다 시켜 놓을테니까 가시기마 하면 돼요..믿을만한 분이 없어서 이사님을 부른 거에요. 우리 회사가 아직 신뢰할 인물을 아직 많이 확보하지 못해서..중요한 얘기를 나눌만한 분들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이사님께서 적극 앞장서 주세요."
갑자기 뭔가 으쓱해졌지만 그 사이로 불안이 스며 들어 왔다.
차를 다 마실즈음 용무는끝났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 민다. 손의 감촉을 확인하면서 우린 서로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우연한 기회에 아시아의 별이라는 대스타 여우와 손을 잡아볼 기회가 있었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녀의 앞에만 서면 너무도 아름다운 미모와 명성(?)에 작아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원래 사람이 좀 다르다고 자부해온 지라 그런 괴설을 믿지 않는다고 객기를 부린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객기 였다. 나도 그랬다. 정말 그랬었다.
정치판에 몸담아 본건 아니지만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어느해 선배의 선거운동을 하느라고 유세장에 경호한답시고 따라 다닌적이 있었다. 연단의 속을 들여다 보고 주변을 점검하고 수상한 사람, 계란 던질 사람이 있는가 눈여겨 보며 검은 안경을 쓰고 대단한 것처럼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이 날 유명한 그 여우가 그곳에 선배의 찬조차 왔었고 그녀의 손싸인(?)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정말 그 앞에 서니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황송함 같은 것이 내 몸을 쪼그라뜨리는 걸 부인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유세장에 유명 연예인은 물론 눈길을 끌 수 있는 소위 튀는(?)사람들이 청중을 동원하기 위한 소품(?)으로 사용 되지 않는가. 어짜피 이 세상이 튀는 것으로 가득하고 여간 찔러야 눈하나 깜짝 않는 세상이니 자극제가 되는 특효약이 없이는 사람을 미혹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을...하여 혹자는 이 시대를 Three S시대라 하지 않는가.
지난 6월인가 우리 민족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 바로 Sport 아닌가. 우리 민족 뿐이랴. 골프다 농구다. 축구다. 세상은 다 스포츠에 얼리고 돌려 날마다 게재되는 기사들로 일희일비 하지 않는가. 스포츠가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래서 스포츠 스타들은 우상이 되었으며 그 속에 우리는 생활의 절대적 비중을 의지 하고 있지 않은가.
또 하나의 S는 무엇인가. 바로 스크린이다. 바로 영상에 사로 잡혀 우리는 날마다 그 틀속으로 들어가 눈의 만족을 취하고 살고 있다. 시각의 만족이 없이는 아무도 설득 시킬 수 없다. 잠잠하고 일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하여 필이 와야 성공인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은가. 여우의 그림. 남자의 멋진 선전 속에 우리는 그들을 흉내내며 그들을 나의 표본으로 삼아 살고 있지 않은가. 스크린이 우리를 압도하고 어디든 스크린이 없는 곳은 없다. 다 눈으로 보는 스크린 속에서 자아를 정립해 가고 있다고 할까...
마지막 또 하나의 S는 가장 심각하고 누구나 뿌리칠 수 없는 sex가 그것이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은은한 미덕인 보일듯이의 미덕은 간데 없고 서양의 문화보다 더한 타락한 걸레들이 자연스럽게 개방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범벅이 되지 않았는가.
섹스가 없는 곳엔 돈도 없고, 섹스와 연관 되지 않는 장사는 망하고 오직 여자를 이용한 장사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가 어디에 가서 잠을 자도 아니, 정상적 부부가 아내와 잠을 잔다해도 그것이 CCTV를 통해 방영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미아리라는 곳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매매춘이 행해진단다. 우리지역 대전에도 역앞에 가면 아직도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있다. 역기능만을 이야기 한다면 모두가 윤리적으로 부당하지만 순기능도 있지 않을까? 분출하지 못하는 성과. 절제하지 못하는 성의 도피처가 되지 않는다고는 못하지 않을까..그러다고 그것을 합리화 할 수 야 없겠지만 단도로 두부를 자르는 비판이 먹혀들지는 않는 곳이 그 현장 아닌가. 어디든 밥 먹는데는 섹스도 존재하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거리로 아니 꼭 해소 되어야 할 일로 자리하는 건 아마도 인간사의 필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은 한 수 더 떠서 여자를 위한 남성의 몸파는 현장이 심심치 않게 기사화 되고 있는 걸 우리는 관심있게 바라보는게 현실이다. 언젠가 본 기억이 있다. 이런 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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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하룻밤 별천지= 리버사이드 호텔..나이트 르뽀>
하룻밤 열정을 불태우기 위한 불나방들이 불야성을 이룬 호텔 입구를 꽉메운다.. 20대 초반의 청춘남녀는 리버 나이트로, 20~30대 직장인들은 에쿠스로, 30~40대 직장인은 스카이로 동선을 잡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다.
소위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30~50대가 주 고객인 리버수퍼나이트 밤새도록 벌어지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다. 부킹은 손님이 그만할 때까지 란 신조로 무장된 60여명의 웨이터 손에 이끌려 테이블과 룸을 오가는 인간 군상의 물결로 정신이 없다. 환락의 별천지가 따로 없다. 김포에서 왔다는 30~40대의 여성들은 이곳만의 특별한 부킹안주를 주문하자 스테이지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찍힘을 당한 30대 남자 2명이 곧바로 웨이터 손에 이끌려 곧바로 건너온다./ 부천에서 양장점을 한다는 유부녀 양 모씨(38)는 이곳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좋고, 특히 남자들과 어울려도 뒤탈이 없어서 편하다며 남편도 어디선가 아가씨 끼고 술 한잔 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섯번째 부킹을 기다리고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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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발바닥 지압도 그렇고, 머리에서 발 끝까지 돈이 되는 곳에는 늘 성과 관련한 비리(?)가 독버섯으로 무성한 세상이 된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담배를 한대 문다. 긴장을 많이 했었나 보다. 란 같은 여자가 유세장에서 만난 영화배우처럼 그렇게 격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걸까.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무슨.....
00000 윤식이의 새로운 비기 00000
퇴근길이 많이 붐볐다. 대전의 인구가 150만이 육박하는 즈음의 러시아워는 짜증이 난다. 연말을 맞이하면 묵은 친구들이 생각 나는 것은 연어 심리 때문일까..밀리는 차 속에서 피는 담배는 답답함의 위로가 되지만 차 속을 냄새로 찌들게 하기에 담배를 좀체 피우지 않지만 오늘은 다르다.
란같은 여자는 왜 나를 공항까지 동행하자고 했을까? 남편의 외국 출장길에 굳이 노하우도 없는 나를 보고 배웅을 하라고 하는건지...
하기야, 회사가 초창기를 조금 지났으니 사람이 없긴하지만 그렇다고 랄라리인 내가 이사 직함을 가진 것도 황송한데 실세라고 여겨지는 사모님과 가까이 지낸다는 건 아무래도 분에 넘치는 예우라는게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길이 영 풀이지 않고 차들은 더 꼬리에 차온다. 담배 한개피를 꺼내려는 찰라 핸드폰이 울렸다.
" 야, 나야 윤식이.."
" 어떻게 된거여? "
" 뭐가? "
" 왜 소식이 없어.."
" 뭐, 아직 별 진전도 없고해서.."
자식은 꼭 사무적인 것만 따지는 습성이 있다. 오랜동안 불알친구로 지냈지만 용무가 없으면 결코 전화든 편지든 안하는 놈이다.
" 근데 오늘은 왜 전화 했어?"
" 응, 지금 나 너한테 가는중이야.."
" 어딘데?"
" 응, 나 지금 신탄진.."
" 알았어..집으로 와라. 퇴근중이니까..."
몇달 안보는 사이에 윤식이는 얼굴이 좀 부은 것처럼 살집이 붙어 있었다.
"술 한잔 할래..?"
"그래, 오늘은 여기서 너하고 자고 가야겠다. 술좀 푸고.."
"너 뭐가 잘 되는거냐? 나하고 잠을 자고 간다니.."
"그래, 잘되고 있지. 자 이거부터 받아 넣어둬라.."
그가 내 놓은 것은 장난감 같은 작은 총이었다.
"이게 새로 나온거야. 전에 것은 필름 비슷한 것을 넣어야 되지만 이건 그냥 디지털이야"
뭔소리인지 잘 이해는 안되었지만 디지털이라면 편한거겠지.
"이게 말하자면 만화에 나오는 광선총이라고 할까...이걸 가지고 우리가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의 몸에만 쏴주면 되는거거든.."
"야, 근데..이거 범죄행위 아니냐..?"
"글쎄..이걸 가지고 나쁜일에 써서 들통나면 범죄가 되겠지만..우린 이걸 가지고 좋은 정보로 쓰려고 하니까 염려마.."
대충 아우트라인의 개념정도를 이해하고 있는 내게 윤식이는 좀더 자세히 이 총의 용도와 광선총을 어떻게 발사하고 결과가 성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참으로 알수는 없지만 만화를 생각하니 이해가 쉽게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몰카의 한단계 발전된, 아니 한단계보다 대 약진한 그런 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렌즈안으로 들어가야 사진이 찍히는 몰카는 상대의 움직임을 잡을 수 없고 제한된 공간에서만의 사물을 포착하는 것이지만 윤식이가 준 이 총을 통하여 관찰대상의 모든 영역을 감지하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이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이고 사회가 받는 도덕적 충격등을 고려하여 공표되지도 못하며 암암리에 개발중인, 말하자면 실험대상의 기술이라는 수준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야, 저번에 옥순이 건은 어떻게 된거야?"
"응, 지금 아마 움직이고 있겠지.."
"잘 되긴 된거야?"
"아마 그런가봐. 연구팀에서 아무말 없으니까.."
"그럼 네가 직접 관여하는건 아니고?"
"야, 내가 무슨 기술이 있냐. 시키는대로만 하는거지.."
"그래, 그런데..옥순이 청주에서 빵집 한다는데 너 알아?"
난 넌지시 떠 보았다. 그가 술잔을 비우며 담배를 찾는다. 옥순이에게 특히 민감한 그다.
"알지..정말 불가사의지..옥순이가 왜 혼자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건 네가 너무 소극적으로 ...?."
"아냐, 내가 적극적으로 해 보기도 했고. 애원도 해 봤어. 무슨 이유냐고 물어도 보고, 할짓은 다했고...인정사정 다 동원 했지만 혼자 살겠다는데...."
그렇게 죽고 못살았던 둘 사이에 뭐가 있는걸까?
옥순이의 내면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걸까?
둘다 망친 인생이 되고 있지 않은가. 윤식이도 혼자 옥순이도 혼자...참으로 우리 천개동 친구들중에 그래도 잘나갈 것으로 예상한 우리 셋이는 왜 혼자사는 풍상을 겪고 있을까..?
예전 들은 얘기를 떠올리면
우리마을 앞산에 여자의 음부 형상을 한 골짜기가 있었는데 이름을 바람골이라고 했다.
이 바람골에 나무를 자르면 동네 여자가 바람이 나서 나가든지 아니면 수절하던 과부가 나무 동티로 홍살문을 부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나무할 곳이 없어도 바람골의 나무는 절대 자르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동네에 새로온 머슴 하나가 일을 저질렀겠다.
민둥산에 가서 나무를 하자니 힘들고 먼 곳까지 가려니 힘들고 보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바람골에서 나무를 했겠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정말 이 마을에는 여자가 도망가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공회당에 살던 천복이 아내가 말티고개 공사장에 일하는 인부와 눈이 맞아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아이들도 눈에 안보였던 모양이다. 더구다나 착하고 순진하기 그지 없는 그 여자의 대 탈선에 마을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이런일은 놀랄만한 일 정도가 아닌 충격이었고 누군가 바람골에 나무를 벤것이라는 단정으로 범인(?)을 찾은바 영구라는 머슴의 짓인것이 밝혀졌고 그는 멍석말이를 당하여 ?겨 난 것이다. 참으로 그 사건이 우연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징크스는 늘 인간사에 접합 되어 존재함이 틀림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야, 근데 이번엔 이 총을 쏠 대상자를 네가 설정하도록 해라.."
"뭐, 내가?"
"그래..네 주변에 좀 이상한 여자나 희귀한 사람이면 더욱 좋지.."
윤식이의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내게 나타난 대상자는 바로 란같은 여자다.
그렇지, 장애인 남편에 란같이 고고하고 아름다운 미인은 바로 희귀한 여자가 아닌가..
"알았어..이게 나쁜짓은 아니랬지..?"
"그럼, 이건 그냥 실험용이야. 그리고 철저히 보안이 유지 되니까..안그러면 다 죽지.."
윤식이는 새로운 총을 나에게 주고 술이 취해 밤을 새고, 지나온 추억의 비빔밥을 먹고 가버렸다.
00000 이메일 0000
이메일이 왔다.
< 오빠, 잘 지내지? 나야 민아야. 보고 싶지도 않은가보네. 나도 그래..오빠가 지긋지긋하게 보기 싫어지네. 부디 잘살아. 나 다음주 금요일날 11시 비행기로 떠난다. 속 시원하지..공항까지 나와 달라곤 안하겠어. 그리고 지금껏 있었던 것들은 다 잊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자구. 오빠와 나의 가슴에 흔적으로 남은 상처를 그냥 스스로 치료하며 살거야. 세월이 가면 잊어 지겠지. 그 사람을 꼭 붙잡고 치를 떨며 살께..오빠! 미안하다. 두고 떠나서...언제 만날 수 있을까..슬퍼 나! 지금이라도 달려 가고프지만 이제는 참기로 했어. 나이 많아 늘고 내가 힘이 없을 때, 오빠도 나를 안아줘도 아무런 느김이 없을 때, 내가 오빠를 안아도 아무도 염려하지 않을 때, 그때 돌아 오고 싶어. 너무 슬퍼. 오빠는 왜 그랬어. 결혼이라도 빨리 했으면 내가 이렇게 오빠에게 예속 되지는 않았을 텐데..
오빠, 다음주 금요일 11시 비행기로 나 간다...
오빠를 영 못볼지도 몰라. 잊어 버릴지도 몰라. 오빠의 속에서 빠져 나와 이제 다른 남자의 속으로 들어 갈지도 몰라. 내 영혼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들어 갈지도 몰라.
오빠! 따스한 것은 오래 기억 되겠지? 오빠! 잊어버려. 이름을 지워줘..고향에도 가지말고 나하고 갔던데는 아무데도 가지마.
오빠! 나 다음주 금요일 11시 비행기로 간다. 그 날까지 오빠를 생각하려고 해. 회개하려고 해. 기도하려고 해. 새로운 가슴이 되게 다 씻으려고 해. 망각의 강에 목욕하려고 해. 오빠의 기운을 다 벗고 이제 새사람 될께..
오빠! 슬퍼하지마. 그리고 새 사람 찾아서 꼭 행복하게 살아...(하략)>>
많은 얘기들을 써 놓은 메일이엇다. 그동안의 애기들, 추억들, 밤새 쓴 모양이었다. 눈물과 쓰라린 회한의 메일이었다. 어디서 부터 무엇을 애기할줄 몰라하는 민아의 가슴이 거기 있었다.
담배 반갑을 다 피웠다 난. 온 방이 연기로 자욱하고 이대로 숨을 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 자리한 폐부의 반쪽이 도려나가는 것 같았다.
사람을 보내고 기약을 할 수 없다는 것처럼 슬픔이 있는가. 헤어짐이 슬픈게 아니라 기약이 없는게 슬픔이 아닌가. 언제 어는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니 그 것도 나의 그림자처럼 맴돌던 그녀를 이젠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니....
나는 쇼파에 머리를 쳐 박았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아~~아~`으~~"
벼락 맞은 내몸이 나딩굴어 졌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난 마구 쇼파를 두드리며 치를 떨었다. 정말 이럴 수 뿐이 없는거야. 이게 뭐야 너무 하잖아. 나 나 나 나좀 살려줘!
눈물이 범벅이 된 내가 거기 담배를 또 찾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이.....
00000 공항의 배웅과 이별0000
한 주일이 금방 지났다. 사장의 유럽방문 길을 배웅하러 가는 날이 바로 민아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라니. 그것도 사장의 비행기와 30분 차이이니 민아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운명의 그분이 내게 준 것일까....
"사모님, 마침 제 동생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데..11시 비행기거든요. 사장님 배웅하고 잠깐 제게 시간을 좀 주셔야겠습니다."
"그러세요. 사장님 떠나고 나면 다 자유시간인데요 뭐 ^^"
사장은 별로 말이 없었다. 계속 무슨 책을 일고 있었다. 주위의 환경이나 차량의 이동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듯 했다.
"여보, 이사님 잘 아시죠?"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 굴지 말라는 투다. 란 같은 여자도 말없이 앞만 주시하면서 뭔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사장의 여행길이 평안하라고 기도하는 것이겠지.
내 생각은 지금의 상황보다는 민아 생각으로 차 있다. 인생길 험한 길을 살고 살아 늘 마음에 두고 접고 살아온 여자. 시집을 안갔을 때나 시집을 갔을 때나 나를 떠나 보내지 못해 맴돌던 그녀가 이제 세상에 떠밀려 가는구나 생각하니 내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 어서 잊고 돌아서 나를 추스려야지. 그런데 누구와 짝이 된단 말인가. 나 같은 양아치(?)를 누가 감싸줄 여자가 있겠는가. 요즘처럼 남자와 사는 것이 거추장(?)스럽다는 세상에서야 남자가 무슨 생색 낼 조건이겠는가.
예전에야 밥먹는 방편으로 남자에 예속되어 옴짝 달싹 못하고 살던 여인들이었지만 지금에야 모든 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자 못지 않아 졌지 않은가.
일찍 출발한 탓에 9시 좀 넘어 공항에 도착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니 시간이 남는다.
무슨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자니 답답하다. 담배 잿털이 앞에 가서 연신 담배를 피워 대고 서 있는 내 꼴이 처량했던지 기사가 커피 한잔을 빼서 가지고 온다.
"뭐하고 계셔요?"
"네. 그냥 얘기 나누시네요.."
"근데 저분들 언제 결혼 했어요?"
"네? 글쎄요. 들리는 얘기로는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하던데..."
"친척?"
"잘은 모르고. 누가 그러는데 두분이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냈대요."
이윽고 안내 방송이 나오고 수행비서 한사람과 성박사, 즉 사장이 비행기를 타러 올라 간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틈새에 끼인 성사장의 모습이 새삼 을씨년 스러웠지만 대견해 보이기도 하는 것은 내가 워낙 사회성이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가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기생충 같이 살지마. 저 사람을 보란말이야. 불구의 몸으로도 얼마나 떳떳하냐.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하는 짓거리가 사람이 할짓을 해야지 쯧쯧...
하기야 열심히 살지 않고 허망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가슴이 비어 있다. 조그만 소리에도 텅텅 소리가 나기 일쑤다. 빈대궁 속에서 우는 영혼의 슬픈 탄식이랄까....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란 같은 여자와 난 나란히 서서 사장의 비행기를 배웅 했다.
"다녀오세요. 기사님하고 기다릴께요..."
"끝나는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염려 마시고 잘 보내고 오세요. 서운하시겠다..."
그녀의 말대로 서운하기 그지 없다. 어쨋건 한 시대 몇십년을 의지하며 살아온 여인을 아주 이별해야 하는 지금의 심정은 더 없이 찹잡하다.
민아는 내가 올줄 모르고 있겠지. 예정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틈새에 난 끼어 앉아 민아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시계를 들여다 보며 비행기의 안내 사이판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어땠을까..모두들 분주한 사람들 틈에 나만이 허허한 꼴로 사람을 보내는 것 같다.
무어라 말해야 할까..잘가 정말 잘가 그렇게 말할까..아니면 흔한말로 사랑했노라고 할까.
아니면 아무말 없이 등을 어루만져 주어야 할까...그래, 그냥 축하한다고 해야지...
드디어 눈 조리개 속으로 민아가 보이기 시작 했다. 까만 색 옷을 입은 그녀가 정말 늘씬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였다. 하기야 시댁에서 배웅을 나올리도 없고 그렇다고 그녀가 친정에 알릴 사람이 특히 있는 것도 아니고...
"민아!"
난 톡 튀어 나갔다. 그녀가 기겁을 한다.
"오빠!"
"정말 가는구나!"
그녀의 눈에 금방 이슬이 홈초롬이 고인다.
나는 머리를 숙여 땅을 봤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땅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오빠, 뭐하러 왔어..."
"우리 사장이 10시에 유럽 갔거든..겸사겸사.."
"그랬구나...오빠, 미안해"
"뭐가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오빠, 제발 잘살아 응, 알았지"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도 울고 있었나보다. 민아가 내 눈물을 닦아준다.
정말 살면서 이렇게 이별의 눈물을 흘려 본 것이 있었던가. 그녀의 검정색 차림이 내가 보는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니...
멘트가 흘러 나왔다. 빨리 비행기에 오르라는 방송이다.
민아와 나는 이별의 포옹을 했다. 민아의 보드라운 몸이 나의 가슴에 안기는 순간 정말 나의 가슴은 너무도 아팟다. 이제 잊어야 한다니...그녀도 울먹이고 있었다.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가 있었지.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의 영원한 그림자 여인 민아는 바다를 건너 가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제부터 나 같은 더러운 쓰레기에서 벗어나 측은지심을 접고 새로운 행복을 쌓겠지. 아니, 그래 주기를 간절히 바라야지..참 착하고 고운, 그리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을 가진 여자였어.
잘가. 정말 고마웠어 잘가 정말 정말 잘가라 잘가 잘가 잘가 잘가라........
어느새 전화를 받고 기사는 와 있었다. 란 같은 여자도 긴장이 완화된 모습이다.
"가다가 어디 좋은데 있으면 밥먹고 가죠, 이기사님"
"네..어디로 가실까요..?"
"글쎄, 이사님 잘 아시는데 있으세요?"
식도락가도 아니고 그저 술이나 퍼먹는 주제에 잘 아는데가 있을라고
"없어요. 사모님이 잘 아시는대로 가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래요, 말씀이 아주 기분좋으네요. 이기사님, 그러면 가다가 유성에 가면 거 뭐드라 칠면조요리 잘하는 집 있죠. 거기로 가시면 좋겠네요"
차는 고속도로로 미끄러 진다.
민아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무언가 나의 자리를 찾아야지.
휴게소에 차가 멈췄다. 기사가 화장실에 가나보다.
"이사님,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네요. 동생분 보내시고 나니까 서운하신 모양이죠?"
"네, 서운하네요.."
"털어 버리세요. 이별이 없다면 인생의 참맛이 있을라구요..."
맞는 말이지. 이별이 없다면 인생이 아니지. 누구든 태어나 죽지 않나. 그녀의 말이 위로가 된다. 이별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지...
난 오가는 사람들을 비취는 태양 빛을 본다. 그래. 그림자만 있는게 인생은 아니잖아. 주어진 것중에 이젠 환한 것을 좀 잡아 봐야지.. 란 같은 여자 사모님이 내맘을 아는지 등 뒤에서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나의 운명은 어디로 기수를 돌려랴 하는건가...알 수 없는 시간 속에 란 같은 여자와 내가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 화장실로 난 남자 화장실로 걸어 기고 있었다.
(속히 종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