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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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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모를때


BY 김隱秘 2002-12-03

00 나도 나를 몰라 00

침묵이 흘렀다. 한찬동안 말을 기다렸다 난..
아무말도 하지않는 송화자의 숨소리가 감으로 들려 왔다.

"말해..괜찮아.."

전화는 따그닥 끊겨버렸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래, 분명히 그 애야.. 왜 전화를 했을까?
돈이 필요해서겠지..아니면 설마 같이 살자는 건 아닐테고
갈 곳이 없어서 전화 했나...
어제 연구소에서 만났던 원조 소녀라는 생각이 확연한 건 헤어질때 나와 나누었던
눈빛 때문이다. 무언가 강하게 열망하고 있는 소녀의 눈과 나의 묵시적 승락 같은게 있었잖은가..영화 같은 소설 같은 그런 에술적인 그런 재회가 이루어 지려나 조금은 기대했지만...
언제든지 갈 곳이 없으면 오라고 했었다. 혼자 산다고도 했었다. 부담 없이 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왜 소녀는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는가..?
전화를 되짚어 금방 통화한 전화로 통화를 누른다. 신호가 간다. 고객이 통화중 어쩌고 저쩌고 한다...
담배를 한 개피 빼서 물었다. 불을 붙인다. 답답한 가슴속으로 니코틴을 함유한 연기가 폐부를 돌아 나오면 좀 가슴이 안정이 된다. 베란다 쪽에 이모가 사다놓은 란 하나가 마침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생명의 소리를 낸다.
담배가 다 타 갈 즈음 현관 인터폰이 소리를 내고 민아가 들어 닥친다. 까만 스커트에 붉은색 투피스가 너무 선정적이다.

"오빠, 보고 싶드라.."

우린 오랜만에 꼬옥 포옹했다. 그녀의 향기가 나를 자극 했다. 어제 연구소에서 빈방을 지키고 돌아온 탓인가 화근한 바람이 몸을 돋운다.

"오빠, 집 깨끗하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게 이 집에 들어 오는 여자들의 심리인가 보다. 하기야 홀아비 사는 집에 무슨 관심이 그리 많으랴.
홀아비 냄새 난다고 사다준 향수 주머니가 그 역할을 나름대로 해서인지 오는 사람마다 그런 소리를 하니 듣기 싫지는 않지만 진심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야, 너 금방 왔다. 어디로 왔어?"
"응, 청원아이시로 빠져서 겁나 밟았지. 오빠 얼굴이 어른거려서 눈썹 휘날리도록 온거아냐 ㅎㅎ"
"그러다 사고난다 너, 나야 괜잖지만 네 남편 생각을 해야지..."

농반진반 그 말의 의미는 민아 남편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여하간 민아를 독점하지 못해하는 나의 심정의 일단 아니겠는가

"오빠, 그 사람 얘기 하지마. 기분 나빠..나 말고 그 여자하고 잘 노는라고 여적 오지도 않는데 왜 내가 그 남자 얘기를 들어야 해"

민아의 혈압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 같았다.
민아의 현재 심정을 확인하긴 했지만 좀은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민아의 결혼 생활이 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 구석에서 웃고 있는게 보였다. 늘 사람의 앞과 뒤는 다르고 진실과 거짓은 함께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자 이리와 좀 앉아. 온다고 하길래 청소도 다 해놓고 이불도 잘 올려 놨거든 흉 볼까봐.."
"그런거 같으네.. 많이 좋아졌네. 이제 신부만 있으면 되겠네요"

민아의 말에 조금은 비꼬는 마음이 들어 있는듯 들렸다.

주방 쪽에 서서 무얼하고 있나 봤더니 들고온 과일을 접시에 깍고 까서 담는다.
작은 쟁반에 올려진 과일과 비스켓 그리고 커피까지 금새 그렇게 준비한 민아는 이제 이야기할 차례라는 듯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오빠, 오늘 우리 갈데가 있는데..?"
"또 어딜가?"

만날때마다 갈데가 있다고 해서 따라 갔지만 늘 우린 서로를 탐닉하는 장소에 갔었고 추억을 씹는 곳에서 활활 타오르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 서로가 무너져 주기를 고대하며 시간을 보냈지 않은가.
어쩌면 인간은 태어 날 때부터, 아니 창조의 순간부터 핑계를 대는 습성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교회 주일학교에 다닐때 나를 지극히 아꺄주는 은희라는 선생님이 있었다.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 어떤 토요일인가 학생예배(모임)에 가지 않고 집에서 동리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였나보다. 집으로 찾아온 선생님은 우리 할머니에게 나의 행방을 물어 보았고 할머니는 찾아 온 사람이 예수쟁이라는 사실을 아시고는 노발대발 하시며 절대 교회를 보낼 수 없다고 1시간 이상 나무라셨단다. 그러나 은희 선생님은 그렇게 혼나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3시간을 기다린 끝에 나를 만나고는 "다음주 토요 학생예배는 꼭 나와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은희 선생님을 통하여 수없이 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이 지금도 탁한 공기 속에서 살아 숨쉬는는 것을 느끼면, 참으로 어린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곤한다.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어 살았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에덴이라는 동산에서 그들은 벌거벗은채 순수한 모습 그대로 살았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사자도 풀을 뜯고 토끼도 풀을 뜯고,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도 없고, 시기도 없고 질투도 없고, 질병도 없고 한숨도 없는 낙원이었다.
그러나 늘 행복은 깨지기 위해서 있는 것일까.
호사다마의 동물 뱀은 마음이 연약하고 섬세한 여자 하와에게 접근 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이렇듯 사람은 핑계를 댄다. 아담은 하와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하고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민아와 나도 그런 것이 아닐까..서로가 깨어지기를 바라면서 상대가 불쌍하고 딱해서 우린 그런 짓을 저질렀노라고 합리화 하려는 마음이 늘 가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또 어디로 가자는 걸까? 궁금 했다. 민아가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유부녀이고 어짜피 우린 임시로 보관된 한 순간의 꽃송이에 불과하지 영원히 한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 잖는가..
하기야 세상 사람이 도덕성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아서 불륜을 저지르겠는가.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한번쯤이야, 나만은 어쩔 수 없었어. 사랑하는데 무슨 죄가 돼...좋아하면 그만이지..별별 핑계를 다 동원해서 자신 속에서 울부짖는 지금까지의 교육과 소리와 양심을 잡아 가두고 우린 빈 수레를 끌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내곤 하지 않는가..

"오래 걸려? 가는데가..."

나는 그 곳이 어딘지 알고 싶었다.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그리고 둘만의 시간 속에 다가올 육신적 환락과 유희의 마당에서 펼쳐질 끼룩거리는 날개짓이며 꽃을 피우고자 애쓰는 순간 순간의 그림들. 이조의 명화 신윤복의 그림이 주는 음탕함 속으로 민아와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서서히 나의 다른 걱정을 몰아내고 있었다. 부푼 가슴은 늘 둘만의 불꽃놀이는 얼마나 화려할까..

"오빠, 아 해 먹여 줄께.."
"먹어..."
"괜찮아, 먹여주고 싶네. ^^"

그녀는 내게 귤을 까 입에 넣어 주었다. 너무 탄력적인 그녀의 동산과 립스틱을로 페인팅한 입술, 우유빛 같은 피부가 내 가슴을 떨게 한다. 민아가 동생이라는 생각이 자꾸 지워지기 시작 했다. 하나님이 내게 묻는다면 "네가 어찌 인륜을 져버리고 즐거움을 따라 이세벨의 길로 갔느냐고 묻는다면 어쩔수 없었다고 답할 수 밖에 변명거리가 없다고 생각 했다.

"오빠, 차 들어.."
"응, 아까 한잔 먹었는데.."
"응, 그래.. 그러면 둘이 나누자.."
"아냐, 그냥 먹어도 되지 뭐.."
"근데 오빠, 이모는 시집가서 잘 산대?"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겠지 깨가 쏟아지겠지. 돈많은 영감 놀리며 살겠지..
그런 생각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오빠, 뭐 기분 나쁜거 있어?"
"아..아니..그렇게 보여..민아 네가 왔는데 무슨 기분이 나빠..아냐"
"자 다 먹었으니까 치우고 어서 가자. 오빠.."

민아가 다과상을 들고 주방으로 갈 때 핸드폰이 기회를 엿본듯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의 감이 금방 왔다.

"말해..아무말이라도 해봐!"

내 목소리가 커졌나 보다. 민아가 치우다 말고 힐끗 돌아 본다.

"저..어제..."
"응, 알고 있어. 말해봐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줄께.."
"저...거기 가도 되요....?"
"응? 뭐라고.. 여기 온다고 언제..?"

난 다급하게 물었다.

"네..오라고 하면 언제든지 가고 싶어요. 그냥.."

머리가 띵했다. 망치로 얻어 맞은 기분이다. 어떤 말을 해야 될지 금방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알았어. 아무때나 와도 좋은데 오늘은..아니 지금은 어딜 좀 가야하거든 내가 다시 전화 할테니까 꼭 받아야 돼 알겠지?"

상대쪽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오후에 전화할께 꼭 기다려 알겠지..?"

나는 자꾸 같은 말을 하면서 꼭 전화를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빠, 무슨 전화야. 나 때문에 그래. 나 괜찮아. 지금 바쁘면 그 사람 만나. 누군지 모르지만..."
"아니야, 그게 아니야..."

무언가 변명을 하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우수웠는지, 아니면 이상 했는지 민아가 민망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든 나는 민아의 난감해 하는 표정을 다독여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원조소녀에 대해 이렇게 과민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나도 나를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