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여자 셋 000
영화로웠던 잎새는 한 줄기 제 역할을 감당하면 낙엽이 되어 사람의 발아래 밟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가보다. 눈발이 몇번 날리고 김장 배추를 실은 차가 왔다 갔다 하고 나면 겨울이다. 없는 사람, 외로운 사람, 살을 부빌 수 없는 사람들의 겨울은 늘 춥다. 거리에 나가도 바라볼 풍경도 변변치 않고 책을 읽기엔 마음에 여유가 없다. 하루 하루 하루살이처럼 앵앵거리다 한주가 가고 한주가 모여 한달이 되고, 또 새해가 오고 가면 사람들은 그걸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천년을 살 것처럼, 인생은 영원한 것처럼 그리 살지만 어느 60대 후반 사장님의 말대로 미스코리아를 봐도 끔적도 안하고 첫사랑 같은 소녀가 옆에 온대도 마음뿐이지 몸은 미동도 아니하니 그로부터 인생이 끝난줄을 깨달았다나...
인생에 있어서 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비길대 없이 중요한대도 사람들은 그걸 자꾸 가리려하고 그걸 솔직히 말하지 못하므로 인해 불행의 진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은가...
왜 내가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할까..? 혼자사는 사람들은 늘 그래..제 갈비뼈를 찾느라고
**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때 세상의 것을 다 만드시고 이를 지배할 주인공으로 아담이라는 사람을 만들었는데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외로워 보여 그를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들었으니 여자는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찌라는 내용을 귀가 닳도록 교회에 다닐때 들은적이 있다. *****
직장인지 뭔지 연구소인지 실험소인지 출근을 하지 않고 갈데가 없는 날이라 그렇겠지..
커피가 먹고 싶어 불을 켠다. 금새 김이 송송거리고 봉지 커피 하나를 넣고 젖는다.
하얀 물에 녹아져 제 색을 내면 이제 내가 먹을 차례다. 색깔을 보고 커피의 맛을 대충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술을 좋아하면서 커피를 먹는 걸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술보다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빈 가슴을 채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걸 알고부터 색도에 따라 나를 위로하는 강도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있으면 늘 잡념이 모여 욕구가 되고 욕구는 출구를 찾기 위해 버등거리게 마련인가보다. 더구다나 초겨울의 문턱은 사람들의 마음 조차도 허전하게 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민아가 전화 해달라고 했는데.**
망설임의 끝에 통화를 누른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민아의 미소와 그녀의 꿈길에 대한 기억들이 지도처럼 펼쳐진다. 참 비옥하고 좋은 땅이었지. 옥토에 자라는 무성한 그리움의 풀밭과 포근하게 장식한 동산에 붉게 피어난 꽃 몽오리....흐르는 냇물을 따라 해안선처럼 펼쳐진 곡선의 예술.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탐험하고 만 슬픈 노루는 철조망이 쳐진 그 곳에 가지 말아야 됨을 알지만, 어느 지점에 가면 철조망의 가시가 잘리워져 있음을 알기에 자꾸 그 언덕을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닌가..
"여보세요, 오빠네..."
"응, 잘 지내지?"
"오늘 뭐해. 옥순이 언니꺼는 뭐 어떻게 된대?"
"아직..연락 없어."
"뭐할거야 오늘?"
"할일 없지"
"그럼, 내가 갈까?"
"어디로...?"
"오빠네로"
"그래 기다릴께.."
나는 몸을 좀 다듬기(?) 위하여 화장실로 들어 간다.
따듯한 물을 틀어 본다. 몸이 나이탓에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을 스스로 해본다.
몸에 바디샴푸를 바르고 거품을 내 본다.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거품을 내본다. 부글부글한 거품 속에 내가 감겨져 있다.
거울을 본다. 민아는 지금쯤 차를 몰고 달려 오겠지.
외로울 때 남자들은 스쳐간 여자들을 생각하는 걸까? 유독 나만이 그런걸까? 그렇지는 않겠지...
많지는 않지만 살을 스치며 비밀의 문에 들어 갔던, 아무에게나 알려 주지 않는 비밀스런 자리를 서로 허락하며 잠시든 얼마간이든 얼굴을 아래위로 맡대고 어떤 필요에 의해서든 어설픈 사랑이라도 나누었던 얼굴들이 잊힐리야 있겠는가. 남자든 여자든 그냥 가슴에 숨기고 사는 것 뿐이겠지...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사가 생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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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출하는 2002 성담론] "섹스가 밥먹는 것과 뭐가 달라요>>
10대의 성이 갈길 모르는 풋풋한 아우성이라면 20대의 성은 육(肉)의 성(聲)이다. 그들은 자기 욕구에 솔직하고 당당히 주장한다. 우리 시대,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해방된 20대가 생각하는 섹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난 시대의 억압과 단호히 결별한 그들에게 섹스는 무엇보다 당당한 주체다. 그들에게 성이란 노골적으로 기호화돼 자신의 의견을 충격적으로 제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그들은 섹스라는 통로를 통해 가볍게혹은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경험후 비로소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만나는 동안 다른 이와의 성 관계만 없다면 그것이 순결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섹스는 그냥 물 마시듯 자연스런 생활일 뿐이다.” “처음엔 순결을 잃은 것이 많이 걱정스러웠으나 지금은 안 그렇다. 다른 사람들과 갖는성 관계를 통해 재미있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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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얼굴이 스쳐 지난 간다. 시집 가서 그렇게 좋은 모양이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돈많은 영감 만나드니 이날 다가도록 전화 한통화 없고. 그렇게 딱 해 죽는다며 괭이 광 드나들듯 하며 나중에는 자기가 친이모가 아니라고 말까지 해 주던 이모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괜히 배신당한 것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그 돈많고 평안한 영감 품에서 히히낙락 하고 있을테지.. 참으로 인생속에 남녀란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렇더라도 한번쯤은 이모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 오늘은 안되겠지만 전화라도 해 보아야지..
민아가 다가오는 아침, 이모를 떠올리며 난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전신 거울에 나신을 들이대고 있다. 아무도 없는 방. 발가벗은 남자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시간이 10시를 넘어 반을 가리킨다. 텔레비젼에서는 미국의 주가가 경기지표가 발표되는 목요일과 인텔사의 실적발표가 있는 금요일이 어쩌고저쩌고 쫑알대고 있다.
이불을 가지런히 얹고 작은 청소기를 돌린다. 최소한의 예의니까...
티비 체널이 맘에 안들어 돌리려는 틈새에 전화가 온다. 민아인가...
발신자 번호를 보니 알 수가 없다.
누구지..?
전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가녀린 목소리. 인연 있는 목소리. 새벽 풀잎에 내린 이슬같이 촉촉한 목소리
"저..."
그랬다. 기다린 전화였다. 정말 기다린 전화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