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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등 무거운 물건을 반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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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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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여자와 이모


BY 김隱秘 2002-11-13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이 흔들렸다.
윤식이에게 온 전화인데 감이 굉장히 멀다. 나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야, 너 뭐그리 바쁘냐? 근데 옥순이하고 뭔일 있는겨?"
"그래, 고것이 결혼을 안하것다고 혼자 살것디야"
'왜?"
"나도 모르지. 근디 뭔가 이상한데가 있어서 너한테 부탁하거야. 내가 도와줄 일이 생겼으면 도와줘야하잖냐. 내막을 알아야지...그러니까 그 부탁 꼭 들어줘야혀 알겠지"

반복되는 그의 다짐에 대해 알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터라 그러겠노라고 했다.

"옥순이 찾았냐? 나 안보이는대로 숨어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숨어?"
"나도 모르지 환장하것써야. 여하간 그거 시킨대로 하고 기다려. 그리고 너 돈 더 필요하냐?"
"야,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보내냐? 그거 무슨 돈이야. 간첩돈 아녀..?"
"야임마 그냥 맘놓고 써. 아무 탈없는 돈이니까.. 연구비로 주는거야"
"연구비? 무슨 연구비?"
"그런거 있어. 외로울텐데 놀기도 하면서 살아라"

집앞에 오니 시장기가 돈다. 뭘 먹을까..
노점에 과일이 널널하다. 찬바람을 비닐집으로 막고 앉은 행상 여인네의 꼴이 을시년스럽다.
비닐로 속에 테레비를 틀어 놓고 전기방석을 놓았는 모양이다. 궁댕이를 대고 화면과 행인을 번갈아 본다.

"귤좀 주세요"
"얼마치 드려요?"
"한박스 얼마죠?"
'네 이건 만오천원, 이건 만 이천원인데요"

맘대로 하라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난 돈을 먼저 내 밀었다.
삼만원을 주었다.

"배달되죠? 저기 저 집인데요. 시간 되는대로 갖다 주세요"

나는 집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익히 알고 있다는 듯 예를 연발하면서

"근데 두박스인가요?"
"아, 한박스 값하고 나머지는 배달비죠 ㅎㅎ"
'네? 배달비는 없는데.."
'네, 그냥 드리고 싶어서요. 추워보이시기도하고 모습이 제 여동생을 너무 닮아서.."

나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호기를 괜히 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과일상 여자는 난처해 하면서 그냥 돈을 받고는 뭔가 결심한듯 알았다고 했다.
집에가서 조금 있는데 과일상 여자가 물건을 들고 왔다. 귤 한 박스에다 사과 한봉지 아마도 3만원어치를 맞춰 가지고 온듯 했다.

"수고하셨어요. 추우신데 몸조심하세요"

그녀는 돌아서려다 말고 내 쪽으로 돌아 섰다.

"아저씨, 혼자 사시죠?"

좀 황당했다. 나를 안단 말인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춥겠네요..?"

잘라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난 음찔했다.

'왜요? 중매라도 서시려고요?"
"아니 그냥요. 늘 외로워 보이셔서.."
"그럼 저를 아세요?"
'네, 제혼자 알죠..ㅎㅎ"
"혼자 알다니??"
"제 친구가 있는데 선생님을 잘 안다던데..."
"누구죠? "
'네, 민아라고 고등학교 동기예요. 지난 동창회때 만나 얘기하다가 알았거든요. 우리 집 근처에 사신다고 해서 누군가 했는데 아저씨데요.."
'그러셨군요.진작 얘기하시지.."
"좀 어려워서요. 그럼 다음에 기회 있으면 오세요. 지금 잠깐 맡겨 놓고 와서.."

민아보다는 훨 나이가 들어 보이건만 동기라는 것이었다. 고생탓이겠지. 참 세상 좁네..
나는 현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민아의 전화번호를 저장된 번호에서 찾아 내어 누른다.

"엽세요"
"나, 오빠.."
"응, 어디야"
"집"
"일 끝났어?"
"그래.."
"피곤하겠네?"
"야, 근데 요앞에 웬 여자가 니 친구라고 하더라"
"웬여자?"
"니 고등학교 동기라던데.."
"아,, 미숙이.. 고년이 또 꼬리친거 아녀..ㅎㅎ 그렇지?"
"무슨 꼬리..?"
"여우 꼬리...그애 꼴은 그래도 남자들 붙으면 안떨어지는 매력이 있나봐. 남편이 그거잖아
병원에 몇년동안 식물인간으로 입원해 있어.."
"그래서 과일장사 하는구나..."
"응, 그전에 잘나가던 애야.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했는데 너무 환경이 막히니까 많이 망가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민아덕에 그 여자를 거의 꿰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관심이 있는건 아닌데 공연히 신경이 간다. 참으로 여자나 남자나 상대 성에 대한 관심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려운 여자를 돌봐 주고 싶은게 남자들의 기사도 정신 아닐까...

"오빠, 내일 올거야?"
"글쎄..맘 같아선 지금 가고 싶네.."
"그치 오빠, 지금와라 목마른데.."
"뭔 목이 말라 ㅎㅎ"
"응, 술이지 뭐 다른거 뭐 있어도 오빠가 뭐 해결할 일이야 ㅎㅎ"
"다른거, 다른거야 어쩌냐.. 남편 없어 시린 옆구리를..ㅎㅎ"

내일 아침 일찍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허전하다. 이제 정말 혼자 있어야 하나
보다. 담밸 물었다. 그리고 깊게 빨아 뱉어 본다. 구병산 연구소의 낮에 일이 막 돌아 간다.
노녀의 표정 표정이 날 움찔거리게 한다. 참 쥬스가 좋긴 좋아. 그 쥬스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노녀가 막판 스퍼트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 난 빙긋이 실소 했다.

"별대다 다 X 팔고 있구만 정신 좀 차려라 "

그만 둘까 회산가 직장인가? 이게 뭐하는 거야 도대체 정체를 모르겠어. 그런 상념속으로 들어 가자 두가지 의사가 내 안에서 싸운다.
그러나 싸움은 이내 끝난다. 난 같은 여자에게 생각이 머물자 좀더 두고 지켜보자는 신념이 나를 움켜 잡았다. 테레비젼에 눈을 판다. 야인시대가 인기가 있다더니.. 전부 세상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주먹질이다.

"딩동!"

현관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

"죄송해요...제예요."

문을 열었다. 찾아온 사람은 그 여자 였다. 골목길 과일행상하는 여자 민아친구. 이 여자가 미쳤나. 남편이 5년전에 입원 했다더니....

" 민아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참 좋으신 분이라고.. 쓸쓸하시니까 가까이서 친하게 지내라고 하던데 ㅎㅎㅎ"

손에 무슨 냄비가 하나 들려 있었다. 나는 뭐라고 의사를 말할 수 없어 다음 그녀의 동작을 기다렸다.

" 잠깐 들어 갈께요..실례인줄 알지만 친구 오빤데 어떻겠어요.."
"네... 그러세요"

난 그렇게 승락 했고 그녀는 그렇게 밀고(?) 들어 왔다.
그녀는 너스레인지 진실인지 자기가 오게된 배경설명을 나름대로 한다.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니까 두부찌개라고 해서 제가 좀 끓였어요. 저녁 날씨도 그렇고 해서 일찍 포장(행상가게인듯) 내렸거든요. 잠도 안오고 마땅히 갈데도 ?陋?해서 용기를 냈어요. 아까 오셨는데 하시는 폼이 너무 가슴에 남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ㅎㅎㅎ. 거기다가 민아한테 전화도 오고해서 염치를 무릎?㎲熾? 이해하시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고....무슨 계략이라도 있나..?

"제가 본래 비위가 좋아요. 당황하지 마세요. 민아한테 물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못된 여자 아니예요. 오빠로 삼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본래 아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누군가 기대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정말 잘 됐네요 ㅎㅎ"

그녀는 계속 분위기를 잡고 호들갑을 떨어 댄다.
나는 말한마디 못하고 멍청히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 거릴뿐이었다.

"민아 사촌 오빠라고 하셨죠. 그럼 저 한번도 못보셨나요? 친했는데 민아랑.."
"글쎄요... 오래되서 잘 모르겠네요.."

사실은 학창시절에 봤더라도 지금의 나이에 말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모를 것이고 또 만난 기억은 전혀 없었다.
나도 그냥 있기가 뭣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건성으로 던졌다.

"부군께서 편찮으시다던데.?."
'네, 오래 됐어요. 치료비는 보험에서 나오고 제가 옆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해서.. 시어머니가 와 계세요. 저는 밑천도 없고 해서 결국 행상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네요 ㅎㅎ"

남편은 포기한듯 했다. 얼른 죽었으면 싶은 말투다. 아이는 딸하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여고시절 우리살던 동네 천개동에 왔던 얘기며 민아와의 추억담을 줄줄이 늘어 놓는다. 참 비위 좋은 여자이고 넉살이 대단한 여자라서 마음에 부담이 좀 갔다. 언제 가려나 마음을 먹고 있는데 여기저기 들척여 과일을 까서 내 놓는 폼이 아주 주인 같다. 실소가 나왔다. 참 희안한 세상이네 별꼴이네 내가 왜 과일가게에는 들려가지고 저런 여자를 만나나...
후회가 되었다. 텔레비젼 처럼 여자의 얘기도 그칠줄 모르는데 개짓는 소리가 나더니 금방 벨이 울렸다

"딩동!"

나도 그녀도 깜짝 놀랐다. 누구야?
그녀가 일어선다. 그리고 나도 얼른 비키든지 숨으라는 시늉을 한다.

문을 열었다.
이모가 현관앞에 서 있었다

"응, 나 친구네 집에 갔다 오다가 들려서 가려고.. 누가 왔어?"
"네,... 민아 친구요..."
"민아 친구?"
"네.."
"'그래, 그럼 나 가야겠네."

이모가 돌아서 나가려 한다.

"아니예요. 지금 가려고 막 일어나는 중이었어요. 요 뒤에 사는데 반찬을 좀 가지고 왔대요.."

그녀가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이모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오빠가 혼자계셔서 제대로 밥도 못해 드실것 같아서 반찬 조금 갖다 주려고 왔어요. 낮에는 영 안계셔서.."
"그래요. 우리 조카 사람이 좋으니까 도와주는 사람 많아서 참 좋네"

이모의 말에 가시가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가고 이모는 겉옷을 걸면서 말했다.

"오늘은 조카 참 바쁘네. 밥은 먹었어?"
"네.."
난 괜히 이모에게 미안 했다. 민아친구 때문에 이모가 맘이 상한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모가 내게 쏟는 정에 대한 배반이라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실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건만...

"어서 결혼 해야겠지 조카..?"
"............"

이모가 작은 술상을 봐들고 내 앞으로 걸어 왔다.

"자, 한잔 해. 왜 이리 조카가 늘 마음에 걸리나 이상해 나도 모르겠어. 가슴이 답답해.."

이모는 술을 따르고 나는 공손히 술을 받고 있었다.
열한시 밤 열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