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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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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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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khl7137 2002-11-10


그 후 민규는 잠잠해졌다.
일주일이 넘도록 전화는 물론이고 어디에도 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시간이 흐를수록 희경의 기분도 변해갔다. 처음에는 안도감이었고 그 다음에는 궁금증, 그리고 초조함...
일주일을 넘기자 화가 치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민규에게로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말...
그 말이 게속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하면서 희경의 마음을 혼란속으로 자빠뜨리고 있었다.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와 그럴 가치가 없다는 단호함. 그 두 길에서 그녀가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가을도 이제는 겨울에 밀리는 듯 떨어져 날리는 낙엽들이 허전하고 외로워 보였다. 살을 파고 드는 바람도 이제는 따스함이라곤 없는 제법 찬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희경은 창가를 흐리는 커피잔의 온기를 막기라도 하듯 두손으로 모아 쥐었다.그리고 생각을 했다.
과거를 묶어둘 수는 없었다. 너무 오랜 세월 과거의 문을 걸어 잠그고 근처에 가는 것 조차 꺼려 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과거와 맞서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사실 앞에서 희경은 적잖이 자신을 책망했다. 좀더 성숙된 감정으로 대응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했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도 없고 나아가 미래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민규의 말대로 그에게도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기회를 주고 서로의 인연이 거기까지 였음을...!

[그래서 그 놈을 만나겠다고?]
은영은 만규와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픈 상처 쑤셔대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내게 하고픈 말이 있는가봐. 그게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도...서로 깨끗이 털어 버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정말...만나 볼거야?]
[계속 이런 기분으로 지낼 수는 없어. 확실히 하고 싶어.]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러고보면 너희들 인연도 참 질기다.]
[그런가?...질긴 인연이었다면 끊어지지 않았겠지.]
잠시 은영이 무언가를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계속 고민하길래 내가 물어 물어서 정아 소식 알아냈어. 이제와서 새삼 얘기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어쩌면 니가 그 사람 만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하지 않아도 돼.]
[들어 둬. 걔, 벌써 결혼했대. 우리한텐 민규씨와 금방이라도 결혼할 것 처럼 떠들어 놓고선...]
은영이가 민규 이름을 부른 건 그 때 사건 이후 처음 이었다.

민규는 처음부터 정아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어딘가모르게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순수함 뒤에 감춰진 차가운 기운을 읽었다고나 할까...정아가 희경의 친구만 아니라면 상대를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간간히 정아가 던져오는 유혹의 눈빛을 희경만 몰랐지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희경에게 정아가 어떤 여잔지 얘기해 주는 것도 우습고해서 민규는 그저 자신이 정아를 무시하는데 그치고 있었다.
일이 터진 건 동아리방 농구 시합이 있던 날이었다. 시합이 끝나고 회포도 풀겸 회식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정아가 낀 것이다. 다른 선배의 애인 자격으로 온 것이다. 그 때 희경은 정기적으로 가는 봉사일 때문에 올 수가 없었다.
그 날, 정아는 민규에게 고백을 했다. 사랑했다고. 그러나 이제는 희경을 봐서라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짝사랑은 그만둔다고.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때의 정아 모습은 여태껏 오해를 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인간적이고 상처 받아 보였기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술을 사 달라는 청을 거절하지 못했었다.
그것이 계획적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다음 날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민규는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정아를 보고 까무라치게 놀란 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자신 또한 알몸이었는데다 미처 수습하기도 전에 희경과 은영이 들어 선 것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무언가 변명도 하기 전에 희경은 결별을 선언하고는 학교도 휴학한 채 시골로 가 버렸다. 하긴 변명을 하기엔 상황이 너무나 분명했다.
분명, 무언가 의식속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민규를 잡았지만 기억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아에게 목덜미를 잡힌 민규는 그저 정아가 소름끼칠 뿐이었다.
그 후 노골적으로 정아는 민규 애인 행세를 했지만 민규는 정아를 냉정하게 외면을 했다. 어떤 방법을 써던 희경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찾았으나 철저히 외면을 당했고 대신 은영을 찾았다. 그러나 민규는 은영에게서 정아가 찾아와서 한 새빨간 거짓말과 그로인해 희경이 유산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분노로 이를 갈며 그 길로 정아를 찾아 협박과 위협을 가하며 실토하게끔 만들었다.
정아는 희경보다 자신이 먼저 민규를 사랑했으며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건 불공평하다고 했다. 해서 그 날 술을 마시면서 그가 화장실 간 틈을 타 수면제를 탔다고 했다. 그런 상태니 섹스를 했다는 건 거짓말이고 다음 날 희경이 찾아 올 걸 안 정아가 시간을 맞추어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민규는 여자에게 손찌검을 했다. 그보다 더한 짓도 하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터라 뺨 한대로 끝을 봤다.
희경이 받았을 충격과 고통때문에 민규는 감히 희경을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택한 건 미루어 두었던 군대에 가는 일이었다.

[제대 후 민규씨 네 소식 알아내려고 꽤 애썼나봐...정아 걔, 무서운 애라고 내가 경고했었지? 그러고도 지가 민규씨 찼다고 떠들고 다닌 꼴좀 봐. 신랑이 누군지 불쌍하지 않니?]

오해는 침묵에서 비롯된다.
희경은 자신의 잘못이 컸음을 알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용감했더라면, 민규의 사랑을 믿었더라면 그 상황과 맞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민규가 자신을 배신한 게 아니라 자신이 민규의 사랑을 배신한 것이 아닌가!
최소한 민규의 말을 들으려고만 했어도 긴 시간 오해를 하면서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걸...
희경은 또다른 후회로 마음이 아팠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아마 겨울을 알리려는 가 보다.
손님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정리를 했다.
샷다를 내리려는 순간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말없이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응시했다.
겨울비에 젖은 남자의 눈빛이 아련하게 빛났다.
[커피...한 잔 줄 수 있겠소?]
망설이듯 남자가 입을 뗐다.
여자는 샷다를 잡았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렇잖아도 커피를 함께 마실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남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래...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자.
중요한 건 현재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는 현재 이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