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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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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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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BY ich63 2002-12-09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몸은 천근만근 가라앉건만 가게를 나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물론 가게문 하루 닫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 마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추스려 일으켰다. 남편은 모레나 되어야 돌아올 것이다. 이럴때 남편생각이 나다니. 그러고도 남편을 필요로 하는 내가 뻔뻔스럽게 여겨졌다. 아니 추접스럽기까지 했다.
월요일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몸이 어슬어슬 춥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뼈까지 아프다.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독감이 온 것인가.하필이면 올해는 독감예방접종도 하지 않았는데.보건소에서 해년해마다 아이들 독감을 맞혔는데 올해는 보건소에서 어르신들만 접종하신댄다. 세금은 걷어서 다 어디에 쓰는지 높으신 양반네들 외유하시는데 다 쓰시는지. 그것도 세명이면 삼만 구천원이라 넘어가보려했더니 결국 병원비가 더 들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간판불을 내리고 손님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운전은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리 운전을 불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결국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선배. 나 좀. 나 아퍼."
"어디니?"
"가게"
선배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 나는 카운터에 엎드려 있었다.
문이 열리며 선배가 들어섰다. 내 이마를 짚어보곤 얼굴을 찡그린다.
"언제부터 아팠어?"
"아까. 집에 가서부터."
"그럼 쉬지."
"글쎄 말이야. 나 집에 까지 좀 데려다 줘. 아무래도 대리운전 보다는 선배가 나을 것 같아서"
내 목소리는 벌써 잠겨서 나왔다.
"병원으로 가야겠다."
"집에 가서 한 숨 자면 괜찮아."
집으로 가면 누가 널 간호해 주니? 어른이 한명도 없는데. 아무 소리도 하지마. 속상하니까."
선배는 정말 화가 난 것 같다. 괜히 전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응급실엔 사람들로 붐볐다.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간호사가 오더니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묻는다. 독감같다고 했더니 체온계만 꽂아놓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한참 후에 간호사가 와서 이것 저것 묻고는 당직 선생님을 부른다.
"어떤가요?"
"독감이네요. 입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집에 사람이 없어서. 입원시켜주세요."
"간호사, 여기 입원환자."

병실이 없는 탓에 일인실로 옮겼다. 기운이 없어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약기운에 잠이 스르르 든다.
아침 회진 시간인가보다. 한무리의 의사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이것 저것 묻고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눈다. 선배는 옆에 서 있다. 마치 보호자 인양.
의사들이 나가자 선배는 이불깃을 다시 덮어주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가세요. 출근해야죠. 내 핸드폰 좀 가져다 줘요."
"괜찮겠어? 나 갔다가 일찍올게."
"그러지 마요. 이젠 괜찮아."
나는 핸드폰에 모닝콜을 맞춰놓고 다시 잠들었다.
띠링띠링 모닝콜 소리에 잠을 깼다.
한참을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금은 외출중입니다......"
전화기를 외출로 눌러놓고 나왔나보다.세번이나 전화가 끊긴후에야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조금 아파서 병원에 있거든. 누나 깨워서 아침 콘 후레이크 타 먹고 학교가. 학교갔다와서 엄마에게 핸드폰해. 알았지"
전화를 끊고나니 눈물이 주루루 흘렀다. 아이들은 닭모이같은 후레이크를 타먹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고 대충 옷찾아 입고 학교 갈것이다. 내가 지은 죄를 애들이 받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두고 도망가는 여자들이 거의 존경스럽다. 아침 한끼 챙겨주지 못하는 것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그녀들의 가슴은 무엇으로 되어 있기에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것일까? 남편에게는 또 뭐라 할것인가. 내 마음이 불편해도 남편에겐 비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무리 관대한 남편이라도 용납하긴 힘들 테니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