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선배도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나는 말이야, 결혼하고 처음에 참 좋았어. 내 집이 생긴 것도 그렇고 내 가구 내 식구 온전한 내 것이 생긴게 너무 좋았어. 뿌리내리지 못하고 너무 오래동안 떠돌아 다녀서 그랬나봐. 고등학교때부터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집을 나와 자취다, 친척집이다 떠돌아 다니다가 제자리를 찾았으니 얼마나 뿌듯해. 지금도 가끔 그래. 새벽녘 가게 일 끝나고 집에 들어서서 이방 저방 아이들 잠들어 있는 것 보면 눈물이 나올 것처럼 감동이 와. 이곳이 온전한 내 자리구나. 이 아이들에게는 외로움을 모르게 하고 싶다. 완전한 내 것들. 남자들도 이런 마음이 있나?"
선배는 대답대신 생각에 잠겼다.
"한번씩 남편이 싫어질때 그런 생각도 해 봤었어. 만약 선배와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대답은 노였어. 선배와의 결혼 생활은 힘들었을 것 같아. 사랑한 만큼 더 힘들게 노력해야 했을 것이고 사랑의 깊이 만큼 더 의심하며 원망하며 살았을 것 같아. 우리는. "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첫키스라고 얘기했을때 선배 믿지 않았잖아. 선배는 내게 신뢰감이 없었던 거야. 신뢰감이 없는 부부가 얼마나 가겠어. 그런 면에서 우리 남편은 대단해. 아내를 의심할 줄 모른다니까. 설마 자기가 딴짓하겠냐 항상 오케이야. 여행이나 모임 다. 어떤땐 사랑이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남편이 널 사랑은 하니?"
"글쎄, 그렇다고 봐야지."
"그렇다고 보다니?"
"선배는 아는 것과 느낌 중 어떤 것을 더 믿어?"
"아는 것을 더 믿지."
"그럼 사랑하는 거네."
"무슨 소리야."
"결혼초부터 늘 고민해 온 문제야.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기까지 하는 걸 알긴하는데 느낌이 안 오는 거야.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참 불행한 느낌이야. 처음엔 남편탓인줄 알았어. 그러다 한순간 내 마음이 그 사람을 향해 다 열리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이 한 번 들고 나니까 정말 그런것 같은 거야. 내 마음 한켠을 여전히 비워두고 있는 느낌. 아마 죽을 때까지 영원히 그러면 어떡하지.그래서 늘 외로운 가봐."
"서인아, 그 부분 내가 채우면 안되는 거니? 나도 외롭고 늘 허기 지긴 마찬가지였는데. 아내와 잘때도 니 생각 참 많이 했어. 그러다 어느날 해선 안되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지. 절정의 순간에 니 이름을 불렀던 거야. 아내는 너무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키곤 한동안 날 째려보더니 아이와 수속을 밟고 캐나다로 떠나버렸어.더이상 껍데기로 살기 싫다면서. 아마 아내는 그전부터 내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봐.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지."
"선배는 붙잡지도 않았어. 술집여자라고 빌지."
"그럴수도 있었지만 널 술집여자로 만들긴 싫었어."
나는 선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선배의 얼굴을 만지작 거렸다. 선배도 팔을 뻗어 나를 안았고 우리는 긴 입맞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