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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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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BY ich63 2002-12-01

"우리 비디오보자. 뭐 볼래?"
선배는 비디오테이프를 한묶음 들고 나왔다.
"너하고 단둘이서만 보내고 싶어서 비디오 빌려왔어. 야외나가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서 말아야."
"그렇다고 웬 비디오를 이렇게 많이 빌려왔어요?"
"너 취향도 모르고 또 니가 봤을 수도 있고 해서. 더 빌려오고 싶었는데 괜히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는 것 같아 이것만 빌려왔어."
"반지의 제왕 봐요. 애들과 볼려고 했는 데 시간이 안맞아서 못 봤거든. 선배 보고 싶은 것도 하나 골라봐요. 빌려온거 반은 못 보더라도 반의 반은 봐야되지 않겠어요?"
반지의 제왕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사람들이 떠들어 대던 것이 마케팅의 힘이 아니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아니면 내 취향이 상식적이지 않았던지.
"재미없다. 선배가 고른 것 보자."
비디오가 덜컥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화면이 바뀌었다.
"달마야 놀자네."
"봤어? "
"재미있었어. 한번 더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보자.응 "
나는 은근하게 말했다. 속으로 너무 느끼하군 이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쇼파에 앉아 재미있게 비디오를 감상했다. 특히 깨진 독에 물채우기 대목에선 그 기지에 감탄을 했다.
비디오가 끝나자 또다른 영화가 시작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 선배도 동감해.
선배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이건 안봤나 보네."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쯤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시계를 찾아본다. 선배는 모른 체한다.
"오늘 나한테 시간 빌려준 걸로 아는데. 잡아먹지 않을테니 염려마."
허둥대는 내가 거슬리는 지 선배가 한마디 했다.
할수 없이 비디오를 볼수 밖에 없었다. 내용은 거의 포르노 수준이었다. 저여자 남편은 자기 아내의 실체를 알까? 하기사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대단한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하나 한편으론 남자가 매달려서 결혼했으면 좁은 집에서 불편하게 살았을 망정 행복해 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라 사랑없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가 맞는 제목일 것 같다.
화면이 선정적으로 바뀜에 따라 어깨위에 있던 선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더니 이내 수도물 흐르는 소리, 세수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행이 따로 없도다. 마음 가는 여인네를 옆에 두고도 안지도 못하는 심정. 나는 괜히 죄스러워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선배는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짜증을 내었다.
"날 못믿어. 못믿냐고."
"그게 아니라 선배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선배는 나를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아니야. 너를 갖지 못해 힘든 것보다 널 아예 못보는 게 더 무서운 내 맘 아니?" 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할수 없이 다시 주저 앉았고 선배는 생각났다는 듯이 선물 상자를 꺼냈다.
"봐.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고른 다고 골랐는데."
"어머. 이쁘네. 언제 샀어? "
"어제.그거 사고 영화보러 간거였어."
"이쁘다. 선배에게 이런 면도 있었어. 난 선배가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예요."
"이리줘봐. 내가 찔러 줄게.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어. 사랑하는 여자 머리 다듬다가 핀 찔러 주는 거."
선배는 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묶어선 핀으로 고정해 주었다.
"생각처럼 싶지 않네"
거울을 본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5살짜리 여자애가 자기머리를 처음으로 묶은 것처럼 보였다.
"선배만 괜찮으면 갈때까진 이러고 있을게."
선배는 "이쁜데 뭘"이라며 동감을 표했고 우린 다시 다른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