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가족나들이를 했다. 아이들은 차만 타면 잔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갖게 하고 싶어 남편을 졸랐는데
또 헛수고 했지 싶다. 여행을 자주 가지 않아서 인지
아이들은 어디가는 걸 귀찮아 한다. 집에서 TV보거나 컴퓨터
게임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또 남편탓인것만 같다.
자기혼자 따로 놀았으니 아이들이 즐길줄 모른다고.
나도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남편도 졸리는지 창문을
조금 열더니 TV를 켠다. 잠결에 실눈을 뜨고 보니 TV가 바뀌었다.
잠이 확깬다.
"언제 바꿨어? 그건 또 얼마야? 마누라는 돈때문에
절절매는데 ..... 그러고 싶어?"
"공사비를 안줘서 공사비대신 가져왔어."
남편은 하드웨어 사는 것을 좋아한다. 소프트웨어엔 별관심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자랑할 수 있는 것
그런것들을 산다. 자동차도 할부가 끝나기도 전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바꾸려한다. 가스비가 싸서 몇년타면 차값이
빠진다고 설득하고 가스는 연비가 낮아 지금처럼 가스값이
오르면 휘발유차나 마찬가지라며 경유차로 바꿔야 겠다고
한다.장난감 사 달라고 떼 쓰는 아이같다. 안된다고 못을
박다가도 워낙 집요하여 결국 두손두발 들게 된다. 결국 사고
싶은 것은 사는 사람이다. 오디오, 비디오 카메라등등 없는
것이 없다. 좁은 집에 방방이 오디오다.거실에, 아들방에, 딸방에.
"대신 술,담배 안하잖아."
누군하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마음을 달래려고 밖을 바라보았다.
'새들이 참 많이 날아다니네'
가로수 위로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슨 새인지
유심히 살펴받더니 생명없는 새였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낙엽이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나무위에 새들이 앉았다가 우수수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잠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황량한 가을의 모습이 내 스러진 육체와도 같았다.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돈돈 하는 나의 모습도 아이들때문에
절절매는 엄마로서의 모습도. 내가 발버둥친다고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아졌다.
결혼전, 아니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난 니힐리스트였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고 욕심도 없었다. 허무주의자.내 걸 갖는
다는 것도 무의미했다. 남들이 욕심내면 다 줬다. 책만 빼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많이 바뀌었다. 적어도 내 아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자기의 꿈을 접게 하고 싶진 않았다. 포기를
배우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무수히 포기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일들. 사랑했던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난 겁이 너무
많았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못했고
중도에 포기하면 더 비참할까봐 시작조차 못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절망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런 이유로 악바리로 사는 동안 남편은 점점 더 책임감을
잃어갔다. 상황이 나아진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큰집으로
이사하는데 여전히 우리는 이사를 꿈꿀 수 조차 없다. 요즘들어
집이 너무 좁고 갑갑하다. 정리도 하기 싫고 먼지가 쌓여도
손도 대기 싫다. 활력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