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은 가슴이 답답하여 담배를 연거푸 두대나 피었다. 아내는 아이영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교육환경이 얼마나 좋은 지 자기 얘기만 실컷 하더니 아이 데리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맥주나 한잔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냉장고도 텅텅 비어 있었다. 여자가 없는 집안은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세탁물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해 어떤 때는 빨래바구니에 던져둔 와이셔츠를 다시 꺼내 입고 출근한 적도 있었고 반찬이 없어 맨밥에 김만 싸서 먹은 적도 있었다.일민은 쇼핑이라도 나갔다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동차키를 집어들었다.
할인매장은 일요일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옛날엔 남자혼자 시장보러 오면 이상한 눈으로 보곤했는데 몇년사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아이교육을 위해 엄마와 아이는 외국으로 떠나고 남자들은 돈버는 기계로 변해버린 탓도 있고 쉽게 이혼한 탓도 있었다. 이것저것 반찬거리와 과일을 사고 주류코너로 갔을 때였다. 서인이 맥주를 담고 있었고 옆엔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아는 체를 해야하나 마나 고민하는데 서인이 나를 보더니 알은체를 했다.
"상진아, 인사드려. 엄마 대학선배야."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이에요."
"잘생겼네. 둘이서 나온거야?"
일민은 상진을 쓰다듬다가 서인을 보고 물었다.
"아뇨. 딸은 지하에서 책보고 있어요."
"남편은?"
"일요일엔 공차러 가요. 아내와 자식보다 축구가 더 좋은 사람이에요. 오죽하면 결혼식날도 공차고 왔을까."
"축구잘하나 보네. "
"남자들 끼리 모여노는 재미죠 뭐. 축구끝나면 밥먹고 목욕하고 어떤날은 저녁까지 고스톱,카드놀이하고 안와요. 아마 오늘도 그런가봐요."
서인은 불만스러워 보였다. 아들이 눈치를 주자 서인은 웃으며 말했다.
"아들없는 남자는 참 불행한것같아요. 아들이 아빠 험담을 못하게해요. 항상 아빠 힘들겠다며 완벽한 아빠편이죠.참 든든한 빽이에요."
"아빠가 잘하니까 그렇겠지. 아저씨가 장난감하나 사 줘야겠다.뭐 사러 갈까?"
서인이 만류할 사이도 없이 일민은 상진을 데리고 장난감코너로 갔다. 서인은 할수없이 졸래졸래 따라갔다.
이것저것 고르는 모습이 보기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