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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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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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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ich63 2002-10-17

난 가슴은 너무 뜨겁고 머리는 너무 차갑다. 그 뜨거운 가슴때문에 가슴앓이를 안할때가 별로 없었고,차가운 머리때문에 사랑을 시도할수가 없었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좋아하고 짝사랑을 애용했다. 생명이 위험하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잘라내도 지장이 없을 만큼만 사랑했다. 주위엔 늘 남자가 있었으나 빠질수는 없었다.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버림받는 다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사랑하면서 이별을 생각하는 것, 시작하면서 끝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나의 불치병이다. 외롭게 자라 생긴 내 가슴의 암덩어리다.
그렇게 나의 스물일곱해가 가고 있었다. 선배는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며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난 그 친구에게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그 친구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 자식 바보야. 너 같은 여자를 마다하다니. 내가 다른 사람 다시 소개시켜 줄게"
내가 받은 상처는 없었는데 선배는 내게 후시딘에 대일밴드까지 붙여주었던 것이다. 난 선배가 나를 오랫동안 생각해 오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우린 그렇게 가까워졌다.

"나다"
선배의 첫마디는 늘 그랬다.
"나다."
난 그말이 고깝게 들리기 보다는 친근하게 들렸다. 마치 오래된 연인들처럼.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회사가 끝나고 어둠이 오면 그 때부터 우리 시간이었다. 그 때 알았다. 카페가 차마시고 술마시는 곳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돈없고 가난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선배는 아직 취업전의 졸업새반이었다. 나도 동생들 학비를 보태야 하는 가난한 장녀었다.
커튼이 쳐진 칸막이 속에서 선배는 내게 키스를 하였다. 내게 첫키스는 달콤함이 아닌 뱀이 기어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드럽지도 않고 따스하지도 않은 하나 열정은 느낄 수 있는. 행복하였다.
27살까지 남자입술 한번 느껴보지 못한 바보같은 여자가 남자의 욕망을 느낀다는 건 새로운 기쁨이었다.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정신적인 사랑이 육체적인 사랑보다 우위라고. 바보같은 말이다. 육체가 섞여야 사랑이 완성된다. 난 너무 바보같은 사랑만 해왔다.
난 순식간에 선배에게 빠져들었다.
"널 만나면 참을 수가 없어. 통제가 되질 않아. self control은 자신있었는데."
그의 솟을 대문에 내 손을 갖다대며 그는 숨가빠했다. 내 치마밑으로도 손이 들어오고 가슴도 만졌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같이 잘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열리지 못했으니까. 같이 자려는 선배를 뿌리치고 돌아온 날, 그날부터 우리의 만남은 끝이었다. 꼭 열흘만이었다. 그리곤 긴 겨울이 왔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수화기너머에선 말이없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진다.
"나야"
비교적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누구 목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알아맞춰봐"
"성수니? 성수지."
나는 너무 반가워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수는 선배랑 나랑 같은 써클친구였다. 같은 단과대학이라 우리는 자주어울려 다녔다. 그는 떡두꺼비같은 아들로 내게 불리었고 정말 친구였다.
"나다.성수전화기다렸니?"
선배였다. 실수였다. 선배가 전화하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
"잘 지내지?"
"네."
"그래 잘 지내라."
선배는 짧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덜컥
아! 다 끝났구나. 그새 마음이 변했다고 느꼈겠구나!
기다렸다는 말한마디 못하고 선배를 보내버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성수는 단지 친구일 뿐이라 아무리 얘기해도 믿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가슴넓은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한달후 성수로부터 선배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괜찮아보이더라는 말과 함께.
나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그러나 고통스럽게.
그때 같이 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