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기둥서방이다.아니 적어도 지금 내게는 그런 생각이 든다.기둥서방이 별건가. 돈벌어 주지 않고 마누라 피 빨아 먹으면서 사는 사람아닌가. 내가 감정이 격해져 있는 건 인정한다. 몇시간 지나지 않아 남편품을 파고 들며 해해거릴수도 있다. 하나 지금은, 그래 지금 기분은 그렇다. 난 기둥서방하고 살고 있다고. 그 기둥서방은 기둥서방으로서 기능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맥주의 맛이 싸아하다. 한 캔으로 부족하여 냉장고에서 한캔을 더 꺼낸다. 오늘은 취하고 싶다.
밤이 이슥해지고 불빛만으로 사물을 알아볼수 있는 시간이 오면 나는 화장을 시작한다.밤에 출근하는 여자가 되어버린지 2년반도 지났다.
내게는 노래방이 하나 있다. 나의 사업장이자 우리 가족의 주 수입원이다. 가끔 그 곳은 내가 알아왔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내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어서 오세요."
손님이 오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한다. 하나 때론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다.그런 손님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을 밀치며 한떼의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왔다. 우리 가게 단골손님이다. 나는 방번호를 알려주고 시간을 넣어주었다. 그들은 무슨일인지 의아해하며 그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계속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노래방 가시라니까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들은 욕을 하면서 나갔다.
"씨발, 아가씨없는 노래방이 어딨어. 아줌마, 장사 그렇게 할거면 때려쳐."
최악의 날이었다. 가끔씩 손님들이 주정을 부리긴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이해할수 있을 정도의 주정이었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개새끼"
"저 혹시..."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흰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틀림없는 그였다. 작은 키.짙은 눈썹.눈빛은 세월따라 많이 흐려졌군.가슴아래가 갑자기 조여오고 머리속에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윙윙. 우연이라도 한번은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 내 첫입술을 가져간 사람. 날 버린 사람.
하지만 아니다. 여기서는, 지금은 정말 아니었다.이렇게 안좋을때.
"선배님"
"니가 왜 여기에?"
"제 가게예요."
"남편은 뭐하고?"
그의 목소리엔 노여움이 묻어났다.
"남편은 다른일해요. 일이 아직 덜 끝났나봐요.좀있으면 올거예요."
나는 허둥대고 있었다.
"아이는?"
"둘이요. 딸, 아들 ."
"그럼 누가 봐줘?"
"애들끼리 있어요. 잘시간이잖아요."
변명하는 듯한 내 말투에 나 스스로에 화가 났다. 선배눈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로 보이는 듯했다.
......
"전화번호 하나 적어라. 다음에 한번 만나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가 불러주는대로 번호를 누르고 저장시켰다.저장이 되자 단축번호가 떴다. 108번. 108번이라. 아직도 그는 나의 번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