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그리고 절망스러운……..
세 번째 만남이었다.
나루에겐 전화가 없었다.가끔씩 메일함에 쪽지를 남겨 둔다거나 혹은 기억속에서 지워질만 하면 콜렉트콜로 걸어오는 전화가 전부였기에 한 번을 만난다는 것도 남들처럼 한가롭고 여유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두 번째 만남이 있었던 날은 나루의 생일이었다. 그녀는 생일 선물로 내게 핸드폰을 사달라고 했다. 나 역시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없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터이지만 수중에 있는 돈이래봐야 혹 갈지도 모르는 여관의 대실료와 밥값정도였으니 선뜻 그 부탁을 들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내 주민증을 이용하여 할부로라도 사주기를 부탁했고 나는 그것마저도 아내의 부담스럼 감시망을 의식하여 거절하였다.나루는 나의 거절에 먼저 사과를 하였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것도 하나 들어 주지 못하는 내 처지에 대해 한심스러웠고 풀죽은듯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어 먼 발치에 시선만 오물짝 거려야 했다.
나루의 삶은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보아왔던 대부분의 여자들과는 사뭇 달랐다.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모습이 나를 간혹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집을 도망쳐 나와 자기 뜻가는대로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불뚝불뚝 일어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가 그녀를 범할라치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품이 예사롭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힘으로야 그녀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몸을 탐하려 할 때 느껴지던 그 서늘함의 정체를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그녀를 아직은 잘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현재는 나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녀의 통장으로 한달에 두어번 삼만원에서 오만원의 돈을 보내 주면 그녀는 그것이 무에 그리 고마운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곤 했다.
아르바이트할 자리를 찾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딘가 안주하여 반듯하게 일처리를 할 만큼 그녀에겐 그런 여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내주는 한달 1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도 그녀의 씀씀이에 비추어 보면 가당찮은 일이기도 했다. 그녀와의 전화는 항상 일상적인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 속에 가끔씩 엇나가는 말을 툭툭 내던질 때면 가슴이 철렁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죽음’ 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냉기는 한 겨울 냉방에서 느껴지는 한기보다 더한 기세로 내 온 몸에 소름으로 번져갔다. 그러면서도 다시 해맑게 웃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늘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빠 빠…”
아직도 그녀를 만날 때면 나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무에 그리 신나는 일이 있는지 한 참 달든 표정으로 나를 부를 때면 나는 그녀의 얼굴보다 먼저 옆 자리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는 버릇이 생겨났다. 그녀의 웃음띤 얼굴이나 목소리는 그녀의 옷차림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편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눈에 띄는 옷차림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오빠 근데 나 확 깨거든. 나 보고 웃지마…”
그녀가 1차로 경고를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보통 애들 보다 좀 튀는 줄로만 알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던 내가 잘못이었다, 일도 일찍 끝나고 나른하던 차에 컴퓨터를 열었던 것이 그녀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가끔씩 텔레비전을 통해 채팅중독으로 제 생활을 못하는 주부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채팅 사이트에 회원 등록만 해두고 잊고 지냈던 것이 갑자기 생각이 들어 그 사이트에 들어갔다. 채팅방을 열고 “ 짐 만날 수 있는 여자분- 쪽지 주세요”라고 적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5분을 기다려도 별 소식이 없기에 역시나 하며 나가려는 순간 쪽지가 하나 날라왔다.
“몇살이세여?”
나이를 묻는 순간 나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라 순간 당황을 하였는데 엉겁결에 29세”라고 답장을 보냈다. 내가 남들보다 많이 어려보이긴 하지만 무려 10살이나 줄인 것은 혹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실수를 한 것 같아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어딘데요 거기가? 그리고 만나면 머 하실 건데요?”
그녀의 쪽지에 진실 반 거짓 반을 적절히 섞어 답을 보내기를 몇번, 진짜로 만날 약속까지 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갓 20이 되었는데 내가 살아온 시간의 꼭 절반에 가까운 시간밖에 살지 않은 그녀와 만날 약속을 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이를 속인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고 차라리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면서도 나의 행동은 무언가에 끌리듯 빨라지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도 닦고 속옷도 갈아 입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약속 시간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 이발도 하였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스물 아홉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른 두세살까지는 웃으면서 봐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왕 벌어진일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어깨를 펴고 좀더 당당히 걸음을 약속장소로 ?グ若?
그렇게 해서 나온 약속장소엔 그녀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았었다.
“오빠 와있어?”
몇 년은 만난 친근한 애인사이 같은 말투가 귀에 거슬리진 않았지만 너무도 쉽게 가깝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때 그녀에게서 온 전와의 첫마디를 나는 어?F게 받아들여야 하는것인지 좀체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근데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보지? 난 좀 나이들어 보이는데…..”
나는 참 우스꽝스런 말을 하고 말았다. 젊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그런 말을 한 것이긴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을 속이는 말 뽄새 치고는 참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오빠 걱정 말아 내가 들어서면 금방 알아볼 테니까…. 글구 난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 더 좋아…”
그녀의 생각이 정말 그러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 마음은 한결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많은 부담을 갖고 있어서 였던지 먼저 시킨 음료수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도 주테할수 없었던 부담감이 그녀의 말 한 마디로 어느 정도는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커피숍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그녀를 한순간에 알아볼 수 있었다. 놀래 자빠질 정도의 옷차림이 나의 시선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까지 모두 빨아들이고 있었다. 머리스타일은 금방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마구 흐트러져 있었고 그 흐트러진 머리??사이로 무지개 색의 염색이 되어있어으며 한 쪽은 치럼하게 느러뜨리고 한쩍은 금방 퍼머를 한듯 보글보글했다. 머리 스타일부터 정신이 없었다. 볼은 홍조를 띈 것처럼 발갛게 분을 발랐고 안경은 노란색 썬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귀걸이는 시디크기만한 링을 달고 있었다.
옷차림은 더욱 가관이었다. 빨간 색 윗도리까지는 좋았는데 가슴에 벙어리 장갑 두개가 달려 있었고 배꼽은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한 쪽 소매는 반쯤 잘라져 있었다. 아랫도리는 바지를 입은건지 치마를 입은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다 찢어진 청바지 위에 희색 주름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단 한번도 상상으로도 봐 본적이 없는 그런 차림새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면서 나의 나이 따윈 생각도 안 하는 것인지 이름부터 물어 보았고 자신의 차림새에 관해 꼬치꼬치 물어 보앗다.
“난 별루 부담 안 되는데….”
사실 엄청난 부담이 되는 옷차림이었지만 나의 거짓에 대한 의문을 가져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와 애기를 시작한 지 채 10분이 안 되었을 때 그녀는 신발을 벗고 소파위에 편한 자세로 비뚜름히 누워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가벼움이 내 기분을 그렇게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더욱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없이 나른하고 무료하기만 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치고는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그녀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침없는 욕지거리 역시 귀여운 속삭임으로 들렸다.
내 스스로는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커가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쩔수없이 보수적인 아버지가 되고 마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녀의 말품이나 행동거지 역시 내 평상적인 잣대로 보자면 당연히 버릇없고 싹없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녀 앞에서 나는 조금씩 평상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게는 아내와 열세살난 딸아이와 열살난 아들 녀석이 있다.아내는 살림하는 여자로만 치자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여자였다. 살림하는 대회가 있다면 나가서도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나와는 아무래도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인지 별로 관심도 덜하고 말도 없다. 서로 말이 없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서로 하는 일에 전혀 간섭을 안 하니 부부끼리 그럴수도 있는것인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 분란이 인다거나 큰소리치며 사움을 한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 따로 활동을 한다. 아이들과 어디 놀러를 가도 아내가 데리고 가거나 내가 데리고 가거나 한 사람은 꼭 집을 지킨다. 집에 무슨 대단한 물건이라도 있어서 그런거라면 서로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런것도 아니어서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 부부사이에 살벌한 냉기가 흐른다고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들 나름대로 도드라지지 않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 같다.
나루와의 만나면서 가장 신경쓰이는 일이 있다면 아내의 부담스런 감시망이라기 보다는 딸애의 눈빛이었다. 알고 있는 눈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맘이 편치 않은 걸 보면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엇다. 물론 나루하고 나하고 사이에 아직 섹스를 한다거나 서로 부둥켜 안고 사랑을 속삭인다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 나는 나루를 그저 평범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곤혹스러울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나루의 삶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처음 만남부터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토해나온 그녀의 삶은 편하게 이해하기엔 어려운 것이었다.
“오빠 나 다음달에는 경찰서에 있을거야.”
“경찰서?”
그녀의 입에서 너움도 태연스럽게 나온 경찰서라는 말에 나는 별스럽지않게 그저 지나가는 말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경찰서는 왜?”
”조사받아야 하거든.”
“조사라니? 머 일 저질렀어?”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입에 시선을 모으고 다음말을 기다렸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선밴데 몇 대 갈겼는데….재수없어..”
그녀의 말엔 조금치의 긴장감도 묻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우스개소리를 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물기 없는 목소리가 그러했고 변화없이 무덤덤한 표정이 그랬다.
“얼마나 팼길래?”
“견적이 천오백 나왔어. 합의 했으니가 조사만 받구 나오면 돼”
”뭐 천오백?”
합의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입에서 나온 돈 액수는 합의 금을 말하는 듯 싶었다. 천오백만원이라는 얘기를 그렇게 쉽게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그정도 금액에 합의를 봤다면 상대가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 뻔한데도 어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가하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랬는데?”
나는 애써 속마음을 감추며 무관심한듯 물어보았다.
“씨벌 존나 싸가지 없게 하잖아.그래서 얘기하자구 공사장으로 불러서 쇠파이프로 휘둘렀는데 몇대 맞구 그냥 까지잖아.”
그녀의 시선은 이미 그정도 일쯤이야 하는 것처럼 싱그러웠다. 싱그럽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때가 묻어있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 속에 악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는데도 그녀에세서 그런 험악한 사건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다니. 나는 한동안 그녀의 말을 받아주질 못했다.
“괜찮아 이젠. 아빠 몰래 집 전세금 빼서 합의 봤는데 경찰서에서 나와서 조사 받으래. 아무튼 다음달에 오빠 혹시 못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알아”
“응! 어…”
그녀는 그런식이었다. 평온한 듯하면서 내 맘을 일순간에 흐트러놓았다. 그녀에게 가까이 접근 하였다 싶으면 어느새 그녀는 내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녀에게서 멀어저야 도겠다 맘 먹는 순간 다시 손을 뻗치는 그런 여자였다.
첫음 만났던 날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마셨고 포켓볼을 한 시간 정도 쳤다. 당구장의 시선들이 온통 나와 그녀에게 쏠려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법 많이 해 본듯한 솜씨로 큐대를 만졌다.당구를 치고 나와 나는 그녀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 몹시 피곤한 척을 했다.
“ 몸이 너무 피곤해서 들어가 잤으면 좋겠다.”
그말 속에는 물론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했으면 한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뜻을 알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인지 그녀의 입에서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오빠 피곤하면 그럼 겜방가자 우리. 겜방의자 편하니까 오빠는 거기가서 그냥 내 옆에 앉아 있기만 해.”
”거긴 너무 시끄럽고 어지럽잖아”
물론 피시방은 어지럽고 시끄러워 정신이 산란해진다. 하지만 내가 그말을 했던 것은 피시방이 아닌 좀더 안락한 침대가 있는 여관이나 그래도 안돼면 비디오방 같은데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럼 어떻하지. 내가 영화를 싫어해서 비디오방두 별룬데….”
그녀의 눈치가 이미 나의 속 안을 들여다 본 것만 같이 나는 몰래한 일을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 상황에서 “그래도 비디오방이나 가자.”라고 말 할 수도 없었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만 셈이었다.
“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겜방가자. 요즘 겜방두 조용한데 많아”
나는 그러지 말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루와 나는 결국 피시방으로 갔고 그녀의 말대로 나는 그녀가 하는 화상채팅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앙ㅅ던 것이었다. 그날 난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여관이나 비디오방으로 데려가 섹스를 하고 난 후 모르는 체 그녀와 소식을 끊어 버리는 것만 줄곧 생각했다. 피시방에서 나왔을 때 시간은 어느새 밤 열 한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아내의 성화를 들을 만큼 서로 관심을 갖는 존재도 아니구 해서 나느 이미 그녀와 여관으로가서 외박을 하는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이었다. 그녀 역시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녀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할 만큼 관심을 갖는 부모님도 아닌듯했다.
“ 이제 어디가냐? 오늘 되게 많이 피곤하다 그만 들어가서 자야되겠다.”
나는 점더 정확하고 노골적인 어조로 말했다.
“오빠 그렇게 피곤해?”
”엉. 요즘 무리를 좀 했나봐 일이 많아서. 오늘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처음 만나는 여자한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그리 예의에 맞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불끈불끈 일어나는 성욕이 주체하기 어려운 시점까지 올라오고야 말았다. 생각같아서는 “너 오늘 나랑 섹스하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나와 덜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자야겠다는 말만으로도 내 의도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생각했다.
“오빠 그럼 집으로 갈거야?”
“아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여관에서 자지 머….”
여관이라는 말까지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가 나와의 잠자리를 반승낙한 걸로만 착각하고 있었다.그녀의 표정이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오빠 그럼 여관 가지 말고 내 친구 집에 가서 자. 여관은 괜히 느낌이 안 좋잖아.”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녀가 진짜로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나보다 많이 경험하여 이미 달관한 것인지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오늘 친구가 없으니까 나랑 같이 가서 자자. 우리집은 좀 그렇구.나 혼자 산다구 남자 들이고 싶지는 않으니까….괜찮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녀가 나와의 잠자리를 승낙한다는 것인지 나의 잠자리만 만들어 준다는 것인지 나는 그녀의 말뜻을 쉽게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친구 집은 그녀의 말대로 아무도 없었다. 자취를 하고 있는 것인지 원룸형 주택의 내부가 그리 정갈하게 치워져 있지는 않았다.
“오빠 씻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할까?”
“그래”
나는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갈 것인가를 무척 고민 하였다.속옷만 입고 나간다는 것이 아직은 서둔다는 느낌이 들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빠 씻고 옷은 뭐하러 다입고 나와. 머 어때 그냥 나와두 돼. 참”
그녀의 말은 잠시 사그러들어 있었던 내 성욕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햇다
“아까 오다가 편의점에서 오빠 속옷 샀는데 맞는지 모르겠네 그걸루 갈아입어 쯤쁨하잖어”
그리고 나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고 내가 테레비젼을 잠시 보고 있을 때 그녀는 슬립가운을 걸치고 나왔다.그리고 나서 냉장고에서 캔 맥주 두병을 꺼내 하나를 내게 건네 주었다.
“오빠 내가 유혹하는 거 같지?”
나는 금세 그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싱겁게 웃엇다.
“오늘 나하고 그거 하고 싶지? 솔직히 말해?”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웅”이라고 짧게 말햇다.
“근데 오빠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 이런 상황에서 하지 못하면 오빠가 바보라는 거 아는데 오늘 그거 하면 다시는 오빠랑 나랑은 못만날거야. 그렇게 쉽게 서로의 모든걸 알고나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무언가 뒷말을 이어갈 것 같아 그녀의 입 언저리만 응시하고 있었다.
“오빠 오늘은 내가 키스만 해줄게. 키스 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해도 돼. 하지만 그게 오빠와 나의 끝이라는 것만 알아. 오빠랑 계속 만났으면 해.”
그녀와의 키스는 날카롭고 시원했으며 깔끔했다. 내 신경은 달아오를대로 달아 오르고 있었고 나의 의지는 그녀의 가슴속에 손을 얹게 했다.
“오빠 내가 한 말 농담 아니야. 선택은 오빠가 하는 것이야.”
그날 그녀와 나는 나란히 누워 서로의 손을 잡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섹스는 하지 못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못하고도 잠이 온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그 상쾌함은 한동안 아내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기분이었다.그녀는 옆에 그때까지도 누워있었다. 어느새 갈아입었던지 잠옷차림이었다. 가슴살까지 보이는 그런 잠옷이었다. 순간 욕정이 일었지만 나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은채로 그녀를 내려다 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조차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몸을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나는 그녀의 몸을 취하지 않았다. 그날 그녀는 물끄러미 내려다 보는 내 시선의 무게를 느꼈는지 눈을 뜨고 싱긋이 미소를 지어보여 주었다. 그녀와의 첫번째 외도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아니 한가지를 더 말하자면 그녀와 나는 아침에 제접 진한 키스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그순간 이후로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었다. 함부로 몸을 놀리는 여자로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녀와 헤어진 후 한 동안은 그녀 생각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했다. 하나하나 의문투성이였다. 겉모습으로 봐선 그저 버릇없고 생각없는 여자로밖엔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무언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한도없이 풀어진 듯하면서도 자기가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는 그런 여자였다.
“어빠아~~~”
한참을 그녀를 생각했다.그녀는 약속시간에 한 시간을 넘어 도착했다. 예의 그 발랄한 목소리로 손사래까지 쳐가며 나를 불렀다. 커피숍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입구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머리모양은 좀 가지런해져 있었고 옷차림도 그리 많이 튀는 것은 아니었다. 청바지가 군데군데 찢어져 있을 뿐 그녀로서는 참으로 조신하게 입고 나온 택이었다.
“오래기다렸지?”
“그래 벌써 한시간 다 됐다”
그녀는 웃음으로 약속시간에 늦은 미안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오빠 나 오늘 핸드폰 샀당.”
“어떻게?
“웅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 주민증이 떨어져 있더라 구걸로 샀지 머.재수 되게 좋은날이야 헤헤.”
그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의 상상에 항상 어깃장을 놓기라도 하듯 나를 수도없이 놀래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