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야..뭐해? 왜 그렇게 욕실에 오래있어? 희수가 말했다.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너무나 놀래서 잠시 휘청거렸다.
욕실문을 살며시 열고 들여다보던 희수는 넘어지려는 나를 잡았다.
어제 너무 무리했나? 한번밖에 안했는데? 희수가 말했다.
아냐..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래..내가 말한다.
뭐? 만족못했다는 얘기군. 색녀...희수가 말했다.
못살아...내가 말한다.
힘들다구 살려달라구 할땐 언제구..아침되니깐 오리발이네..희수가 말했다.
내가 언제? 내가 말한다.
흐음..또 하고 싶어? 욕실에서 뜨거운 정사? 좋지..희수가 말했다.
나는 샤워기로 물을 희수향해 뿌리며..
정신차리고 얼른 씻기나해요..이렇게 말한다.
희수는 배시시 웃는다.
희수의 웃는 얼굴은 언제나 티없이 맑다.
정우 역시 그랬다.
희수의 웃는 얼굴위에 정우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욕실을 나왔다.
희수를 회사앞에 내려주고, 옷을 갈아입기위해 집에 왔다.
문을 따고 들어가니, 엄마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새벽마다 방안에 앉아 소리내 기도하신다.
그 기도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내 하나의 분신..지수의 뺨에 뽀뽀한다.
이제 왔어? 애 깨기전에 안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애가 알면 민망하잖아...엄마가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는다.
엄마는 내 아픔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정우와 이혼했다는 말에도 엄마는 가만계셨다.
왜인지 이유를 묻지도 않고..그저...
그럼 지수는 내가 봐야겠네..그렇게 말했다.
정우와 결혼한다고 했을때도, 엄마는 까다로운 집안같던데..괜찮겠니.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결혼생활내내 정우의 사랑을 먹고살았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정우를 믿었다.
회사에서 직원들 여행간다고 할때도.
아무이유없이 혼자 여행하고싶다고 할때도.
친구만난다고 하고서 술도 먹지않고 맨정신으로 들어왔을때도.
와이셔츠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보고 정우가 술집애가 일부러 장난한거라고 했을때도.
주말이면 최대한 정우를 배려하여, 실컷 조용히 자라고
지수를 데리고 공원에 놀러갔었다.
아침마다 정우가 허기를 느낄 오후를 위해 빵을 구워 들려보냈었다.
가끔 정우가 바람핀 친구들 이야기를 할때면,
나는 그 와이프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믿음의 결과는 정우의 배신으로 끝이 났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이란건 절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랑은 눈을 가린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지금도...
매일 나는 정우의 맑은 웃음을 본다.
사무실 내 책상위에서 정우는 언제나 나를 향해 웃고있다.
나쁜놈...미친놈...그년이 그렇게 좋아? 그년한테도 그런 웃음을 웃었어? 그년이 니가 좋대? 나만큼 널 배려해줄 수 있을거같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매일 정우의 사진을 보며 저주의 말을 하는 것으로 내 일과를 시작한다.
동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나야..지난번 니가 기획한 프로젝트..누구한테 넘겼어? 동하가 말했다.
아니..그건 왜? 아직 완성안?獰?.내가 말한다.
그거..희수형한테 보이지그래? 동하가 말했다.
왜? 완성된거두 아니구 부끄러운데? 내가 말한다.
아냐..괜찮던데? 동하가 말했다.
그럼 너한테 파일보낼테니, 좀 고쳐서 니가 보여줘라..내가 말한다.
그래..내가 좀 볼께...동하가 말했다.
동하는 내 초등학교동창이다.
내가 싱글이 된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을 해와서 몇십년만에 처음 봤다.
초등학교동창이라는 끈은 너무나 신기하다.
몇십년을 훌쩍 뛰어넘어서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동하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 도움을 주겠다며, 희수를 소개해주었었다.
내가 기획서를 들고 처음으로 희수의 회사에 찾아갔을때,
희수는 졸린눈으로 나를 위아래 쳐다보더니..
거기 책상위에 두고 가세요..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질문하실거 없나요? 이렇게 말했다.
네? 없어요..희수가 말했다.
여긴 손님한테 물한잔도 안줘요? 내가 말했다.
싸가지없는 사장이군...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그런가? 김비서..여기 물 한잔...희수가 말했다.
정말 물한잔이라니...저런 짠돌이...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왕쪼잔에 버릇없고 싸가지도 없는 저런 자식을 소개하다니..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디가 어떻게 되요? 희수가 물었다.
알아서 뭐하게요? 사장이 아니라 제비인가? 나는 말했다.
희수는 피식 웃더니..그게 아니고, 기획서 읽어보고 맘에들면 연락하려구요...이렇게 말했다.
전화는 뒀다 뭐하시게요? 거기 전화번호 있어요. 나는 말했다.
희수가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성의없는 희수에 너무나 실망해서,
메일주소와 메신저 아이디를 남기고 얼른 사무실을 나왔다.
갑자기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정우가 있을때는, 어떤 비굴한 상황에서도 난 떳떳할 수 있었는데..
세상에 나혼자 버려진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띵똥...
메신저에 누가 들어왔다.
졸린하루? 나는 의아했다.
공주병 걸린 아줌마...잘 갔어요? 졸린하루가 물었다.
누구신데요? 내가 물었다.
아..저..아까 그 좋은기획에 김희수입니다. 졸린하루가 말했다.
아..그 싸가지없는 사장이요? 내가 말했다.
하하하..역시 생각대로군..졸린하루가 말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아뇨..아깐 너무나 졸려서 결례한거같군요..밤에 오셨으면 잘해드렸을텐데..졸린하루가 말했다.
밤의 황제인가요? 웃겨..내가 말했다.
넌 동하만 아니었으면, 상대도 안할 놈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일주일동안 일이많아서 야근할건데..그쪽 아줌마도 그렇다면서요? 졸린하루가 말했다.
전 일하면서 메신저 잘 안해요. 내가 말했다.
하하하...그래도 일관계면 안할수 없을텐데? 졸린하루가 말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아무래도 나랑 딱인거같은데..
짧은시간에 친해지면 더 좋고...ㅋㅋ 졸린하루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동하에게 전화했다.
그런 싸가지랑 같이 일하라고? 내가 말했다.
그래도 그방면에서는 최고야..동하가 말했다.
미친놈..내가 말했다.
그 선배..혼자야..일하면서 사귀면 좋지 뭐..동하가 말했다.
넌 왜 맨날 갖다붙이냐? 내가 껌이야? 아무대나 붙이게? 내가 말했다.
그 선배..진짜 괜찮은 사람이야..졸려서 그런모양인데..동하가 말했다.
그날 이후로 희수는 매일밤 메신저에 들어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때로는 음악도 틀어주고, 음악창에 미나.사랑..이라는 글도 띄워놓았다.
일주일째 되던날..희수는 내게 전화를 했다.
네..김희숩니다. 희수가 말했다.
아..네..웬일? 내가 말했다.
한번 보자구요..외로운사람끼리..호흡도 같이하고..희수가 말했다.
미친놈아냐? 완전 제비네. 내가 생각했다.
근데..공주치곤 목소리가 무지 아줌마네..희수가 말했다.
나는 너무나 화가나서..
만나서 쪽팔림이란게 뭔지 알려주지...생각했다.
나는 희수의 회사앞으로 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거리에 많았다.
희수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내 차로 다가와서는...
제가 운전해도 되죠? 그렇게 말했다.
그러세요..내가 말했다.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이 보이는 고수부지...
희수는 조용하고 어두운 주차장쪽으로 차를 갖다댔다.
처음이니까 조용히 얘기하고싶어서요..희수가 말했다.
아..네..내가 말했다.
희수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뭐 마실래요? 하고 물었다.
2프로요. 내가 말했다.
희수는 차에서 내려 뛰어가더니, 금방 2프로와 캔커피를 사왔다.
나는 2프로를 받아서 몇모금마시고선 차 홀더에 끼워넣었다.
역시 공주네..다 안먹고...우아떨고..희수가 말했다.
내 맘이죠..눈을 흘기며 내가 말했다.
우리 프로끼리 좀 더 솔직해지죠? 희수가 말했다.
뭐가 프로에요? 난 꽃뱀아니에요. 댁은 제비인지몰라도. 내가 말했다.
아..제비인거 인정해주니 고맙네..희수가 말했다.
솔직하시군요. 나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순수해요..희수가 말했다.
순수? 웃겨..나는 생각했다.
그냥 얘기하려니까 분위기가 좀 그렇네..나한테 안겨볼래요? 희수가 말했다.
뭐라고 얘기하려는 순간, 희수는 나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이거 놔요..내가 말했다.
가만있어요. 5분만..5분후에도 내품이 따뜻하다고 생각안되면, 놓아줄께요..희수가 말했다.
희수의 가슴에서 심장고동이 느껴졌다.
희수의 가슴은 너무나 따뜻했다.
나는 졸음이 올것만같았다.
정우의 가슴도 이렇게 따뜻했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