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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gihing 2002-05-15

어느덧 10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무실 언니는 내일 아무 약속없으며 나랑 같이 '문학의 밤' 구경가겠냐고 했다.

학창시절 다른 학교에서 하는 '문학의 밤' 같은 것은 어떻게 하나 궁굼해 하면서도 한번도 다른 학교에 가 본적이 없었던 난 호기심으로 아무 계산 없이 그저 가고 싶다는 생각에
"그래 언니 같이가" "나 그런거 좋아해"

다음날 언니와 나는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ㅇㅇ부고 강당으로 고등학생이 하는 문학의 밤을 보기 위해 그리로 갔다.
그 곳에 도착하여 앞에 자리를 잡고 언제 쯤 시작하나 프로그램을 보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우현이는 내옆에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랫만이네요. 잘 오셨습니다" 강당 저쪽 끝 어디에선가 그의 여자 친구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날 언니의 동생인 성태의 기타연주와 찬조출연이 있었고 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언니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갔다. 그 곳에서 성태가 나에게 "우현이 만났죠 되게 보고 싶어 하던데"
라고 하며 건넨 그 말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그렇게 콩당콩당 뛰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의 궁금함과 관심이 자꾸 그 친구에게로 가기 시작했다.

그 뒤 며칠 후 다시 우현이는 나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조금은 당당한 어조로 "안녕하세요. 저 이 우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다음 토요일에 우리학교 축제가 있는데 놀러 오시겠어요?"
".........."
잠시 시간이 지난 뒤 "네 그러죠" 나의 두 입술 사이로 지금 바로 그 대답을 하지 않으며 끊어 버릴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을 했다.

ㅇㅇ부고에서 만난 그는 교복 차림에 체격이 워낙 커보여서인지 어리다는 느낌보다는 정감이 더 가고 강한 호기심으로 마치 대학축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축제가 거의 끝날 무렵 마무리로 '가족과 함께 춤을' 시간에 그가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와서 손을 내밀며 함께 포크댄스를 하자고 눈짓을 보냈다. 나는 잔디밭에 깔고 앉았던 수건을 들며 그가 내민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운동장 가운데로 나와 포크댄스를 가르쳐 주는대로 '산골짝이 다람쥐'에 맞춰 율동을 했고, 그 때 그 장면을 장난스레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가 있어 찰칵 사진속에 그때 그 모습이 담겨 졌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그는 교실로 들어 갔고 나는 정문쪽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 가고 있었고 잠시 후 그는 내게 YOU-YOU라고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교련복을 입은 대학생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우린 걸어서 신촌을 배회하다 그가 먼저 다방에 들어가자고 제의했고 나는 그가 어린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어할까봐 애써 어른 인것 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싫지 않아서인지 잘 길들여진 말처럼 그를 따라 다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방에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자욱한 담배연기,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젊은 대학생들로 가득차 있었고 누구 한사람 우리 둘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우린 자연스럽게 마주않아 커피 두 잔을 시켰고,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우리 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남녀공학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생활한 탓인지 여자에 대한 매너가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어리다는 느낌보다 기대고 싶어 지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부하기 힘들지"
"아니 가끔은 YOU를 생각하며, 열심히 해서 빨리 사회인이 되어 YOU가 나를 만날 때 좀더 편안하게 해 주고 싶어"
그때 그말은 마치 나의 심장부에 와 그대로 꽂히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나를 만나려고 하지"
"그냥 첫인상이 좋아서 그냥"
"여자친구 없어?"
"아니 많아 단짝인 여자친구도 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번 심장이 멎는듯 했다.
"그런데 그애는 진짜 친구야 그냥 친구"
"그래 친구! 많으며 좋지"
마음 속으로는 '그럼 나는 친구가 아니면 뭐지?'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성숙한 감성을 지닌 그와 나는 서로의 생활들이 달랐지만
만나면 싫지 않았고, 전화가 걸려오면 반가웠고, 헤어질 때는 아쉬웠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보고싶어지고 또 이 시간 그는 무엇을 하나 궁굼해 지기 시작했고 퇴근시간쯤 되어서는 혹시 하는 기다림으로 설레이기도 했다.

그와 나는 가끔 일주일에 한번이나 이주일에 한번 정도의 만남을 가졌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는 항상 그는 사복을 입고 나왔으며 어디로 갈지 미리 계획이 되어있는 사람처럼 갈 곳을 잘 알아서 나를 인도했다.

퇴근 후 덕수궁을 가자는 그의 제의에 나는 쾌히 승낙을 했고 우린 덕수궁 안을 해가 져 어둑어둑 해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자리에 앉으려 하자 그는 내게 수건을 깔고 앉으라 했고 우린 서로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나는 환경적으로 많이 달랐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나는 홀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그저 평범하게 자랐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나는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말하며 YOU를 통해 부모님에 대해 더욱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가방안에서 아주 두꺼운 함석헌의 '뜻으로 보는 역사 책'이라는 책을 꺼내며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자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며 자기를 만나지 않는 시간에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며 그 책을 나에게 주었다.
정말 나는 그 책이 두껍고 소설책이 아닌지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만 늘 나의 옆에는 그 책을 가지고 다녔다. 그와 다시 만날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