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처음 제안 한 것은 강희였다. 그 날은 마침 토요일이라 도서관이 일찍 파했다. 당연히 동생들도 일찍 집에 왔겠지만 나는 미현이와 함께 강희네 집으로 갔다. 저녁 식사 시간 전에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강희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같이 시험공부를 했다. 일학기말 고사가 열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막상 같이 모여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모여서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암기과목의 예상 문제를 놓고 묻고 답하기를 두 시간쯤 하다가 우리는 바람 좀 쐴 겸하여 구포역으로 나왔다. 입장권을 사지 않으면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땡땡 문방구가 있는 건널목으로 갔다. 하드-바 하나씩을 입에 문 우리들은 땡땡 문방구의 평상에 앉아서 기차가 지나다니고 건널목의 차단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강희가 우리 여름방학에 여행갈까, 라고 한 것이다. 미현이가 그것 멋지다, 그런데 어디로 가려고? 라고 물었고 강희가 속초, 라고 짧게 대답하는 순간 기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속초, 그 말의 울림은 기차의 경적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고 미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도 미현이의 얼굴 표정을 옆눈으로 할끗할끗 살피면서 되도록 시선을 운동화의 낡은 코에 집중을 하려고 애썼다.
“이것 봐, 우리는 내년이면 3학년이 돼. 아마도 연합고사 준비하느라고 일년내내 책하고만 씨름을 해야 할 거야. 선배들 말로는 겨울 방학부터 벌써 그렇게 준비들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올 여름방학을 지나면 우리의 자유는 끝인거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만 강희야, 너거 엄마랑 아버지가 허락을 하시겠나?”
나는 다른 쪽으로 둘러서 유보의 표현을 했다. 허락을 받아내야지, 라고 강희는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나는 속으로 강희가 좀 눈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내는 어쩔 수 없구나, 지 생각만 하네. 하면서. 강희도 미현이에 대하여 어느만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비밀을 공유하면서 우정을 쌓는다. 친구란 같은 비밀을 가진 동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제 삼의 누군가와 공유하거나 발설하게 되면 우정은 끝이다. 절교, 그것은 배신에 대한 가장 큰 형벌이다. 어찌되었거나 강희가 미현이의 비밀을 함께 나누어가졌으면서 미현이의 아픈 상처를 헤집는다는 생각에 나는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하였다. 나는 니가 그렇게 나오면 미현이가 난처하지 않냐고 직접적으로 말을 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미현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을 할 까봐 쉽게 뱉어 놓을 수 없기도 했다. 미현이가 하드-바의 막대에 묻은 크림을 입안에 넣고 쪽쪽 빨아서 사탕처럼 먹고는 막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일어섰다. 나도 엉겹결에 일어섰다. 가자, 미현이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강희가 따라 나섰다. 나는 뒤 따라 가면서 강희에게 소곤거렸다. 야, 니는 어째 그러냐, 미현이에 대하여 니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니가 몰라서 지금 속초 얘기를 꺼내냐, 라고 살짝살짝 얘기를 했다. 강희는 이것은 극복해야 하는 과제야, 미현이처럼 강하고 당당한 애가 엄마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 하고 평생을 보내야 겠냐, 라고 내 말을 받았다. 나는 강희의 대답이 더 어이가 없어서 잠시 강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얘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나, 하고. 그러면서 나는 다시 우리는 이제 겨우 중학생이야, 평생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됐어, 어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어. 라고 말을 했다. 이 때 쯤은 나도 좀 많이 화가 났다. 강희의 얼굴도 흥분 탓인지 더위 탓인지 불그래했다. 아마 내 얼굴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미현이는 앞서 가는데 강희와 나는 길가에 버티고 서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