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 지 오년, 나는 자꾸 십년 전에 꾸던 꿈을 다시 꾼다. 생산직에 일을 하던 그 때에 나는 늘 잠이 깊지 못 했다. 눈을 감으면 내가 거대한 아메바로 변신하여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스르르 허물어져 내리는 꿈을 꾸었다. 십년에 변하던 강산을 하루에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빨리 가는 세상. 하루는 짧은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바쁜 것 같지는 않은 전업주부. 하면 표도 나지 않는데 하지 않으면 너무너무 표가 나는 집안 일들,,들.. 식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명랑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자니 자꾸만 푼수가 되어가는 것 같은 찜찜함. 이것은 아니야.
목욕탕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면 늘 누군가가 뒤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크고 검은 그림자가 뒤에 서서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주눅이 들어 벌벌 떨다가 구겨져 버린다. 거울 속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나는 또한 거울 밖의 나이기도 해서 나는 한발작도 띌 수가 없다. 때로는 거울 속의 그 여자가 나를 단단하고 물기없는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눈길을 돌리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천천히 거울 속에서 걸어나와 내 손을 잡는다. 그 여자의 손은 차갑우면서도 부드럽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그렇게 나는 녹아내려 목욕탕 바닥에 흘러내린다. 그리고 개수구멍으로 빠져 들어가서 사라지고 만다. 아무도 듣지 못 한 희미한 비명만이 개수구멍 근처에 맴돈다.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부드러우며 "유능하기까지 한" 그 여자는 이제 내 자리를 대신한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개수구멍을 통해 흘러나와 썩은 냄새가 나는 하수구를 지나 좀 넓은 하수도와 좁은 개울, 좀 넓은 강, 그리고 마침내 머지않아 바다에 도착 할 것이다.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인어처럼 나의 형상은 남아있지 않지만 나의 정신은 말짱하다. 나는 내가 곧 바다에 이르리라는 것을 안다. 머지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