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이 많은 나는 아침을 준비하지 못하는 날이 준비를 하는 날보다 많다. 그러나, 커피는 꼭 타야한다. 남편은 커피를 좋아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은 용납되어도 아침 커피를 거르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한 날은 식사를 하는 동안 커피를 타지만 그렇지 못 한 날은 일어나자마자 가스렌지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가스불을 붙인다.머리를 묶고 세수를 하고 물이 끓는 동안 남편이 즐기는 대로 커피와 프리마와 설탕을 일대일대일의 분량으로 타서 뒤섞는다. 팔팔 끓인 물을 붓고 저어서 남편에게 건네준다. 나는 꼭 손잡이가 남편의 손에 가도록 커피잔을 든다. 쟁반에 받칠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더 불안하다. 꼭 잔이 미끄러져서 쟁반으로부터 굴러떨어질 것만 같아서 좀 뜨거워도 내가 손으로 들고 건네준다.
~~것만 같아서,는 또 있다. 나는 꼭 주전자를 먼저 올리고 가스불을 켜는데 그것은 가스불을 먼저 켜고 주전자를 올리면 불꽃이 내 손을 향해서 기어올라와서 내 손을 화라락 맛있게 핥아 먹어버릴 것만 같아서이다. 커피잔에 물을 부을 때 나는 커피 주전자의 뚜껑을 다른 손으로 꼭 누르고 물을 붓는다. 어쩐지 뚜껑이 열리어 뜨거운 물이 내 발등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서이다.
매일 나는 커피가 온전히 남편의 손으로 넘어가서 남편이 후룩,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 까지 긴장을 풀지 못 한다. ~~것만 같아서, 는 나에게 늘 현실이어서 때로는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때로는 정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경우를 상상해 보고는 하는데 두 가지 가정이 있다. 하나는 내가 깜빡하고 가스불을 먼저 켜고 주전자를 올리다가 정말 손을 데이는 경우다. 남편은 나의 칠칠치 못함에 대하여 책망부터 할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남편에게는 사랑까지는 기대 할 수 없다고 하여도 약간의 애정은 있다. 적어도 심히 다쳤다면 출근을 좀 보류하더라도 병원부터 데리고 가 줄 정도의 애정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손 전체가 아니라 손가락이 좀 데인 정도라면 나는 쓰리기는 하지만 일단은 찬물에 씻고 화상연고를 바를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내가 좀 낫다. 나의 상상은 두번째 경우에서 안착을 한다. 좀 쓰린, 그러나 견딜만한 상처...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라면 좀 경한, 적당히 봉합이 가능한 상처의 선에서 끝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루는 짧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일어난다. 아직은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이를 씻기고 밥 먹여서 옷 입혀서 어린이집 차에 태우고 올라오면 아홉시가 좀 넘는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텔레비젼을 보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아침밥을 먹는다. 세탁기 돌리고 청소기 돌려서 대충 청소하고 집안 대충 치우고 둘째아이 낮잠을 재우면 좀 여유롭다. 큰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두시간쯤 시간이 빈다. 컴퓨터를 켠다. 별 의미는 없다. 전업 주부. 나를 애타게 찾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중요한 편지도 없다. 메일박스를 열면 광고가 가득하다. '사장님~~'으로 시작되는 음란성 메일이 절반이다. 수신거부를 해도 이런 메일은 수신거부 자체가 안 된다. 그만 모두 삭제를 하고 게임 좀 하다가 음악 좀 듣다가 그것도 시들하면, 컴퓨터를 끄고 텔레비젼을 켠다. 지나 간 드라마나 낡은 영화들을 반쯤 보다보면 큰 아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아이를 맞는다. 사실 엄청나게 반가운 것은 아니다. 거의 동시에 작은 아이도 낮잠에서 일어난다. 두 아이와 함께 먹을 것, 장난감, 쓰레기더미들과 씨름하고 빨래개다보면 저녁이다.
저녁먹고 치우고 아이들 재우고 나서 시계를 보면 밤중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자고 싶지 않다. 모두 잔다. 밤중에는 무슨 일을 해야하는 의무도 없다. 밤중에는 나는 자유이다. 이 자유를 어떻게 포기하나. 그리하여 남편에게 좋지않은 말이 섞인 짜증을 들을 때 까지 나는 밤을 포기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