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은영은 한계령을
지나면서 어떤이가 말한것처럼 폭설로 한 열흘만이라도 이곳에
묶일 수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단 생각을 슬며시 속으로
해봤다 은영은 차창쪽으로 앉았고 현이는 복도쪽에 앉았다
현이는 은영의 손을 가볍게 잡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마치 은영의
손 솜털 하나 하나를 느끼듯이 만지작 거렸다
차창밖은 마치 눈이나 비라도 올 듯 꺼멓게 꾸물거리는 날씨였다
늦 가을이지만 저녁이 되면서 어두워지자 어쩜 눈이 올지도 모르겠
단 생각을 했다 현이와 가는 여정에 첫눈이라도 내려준다면 어쩌면
우리 앞길을 밝히는 서설이라 여기며 위안을 삼고 싶었는지도...
은영은 현이와 이렇게 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은영이 대학때 첫사랑을 했다 그 사람은대학일년 첫미팅서 만난 파트너의 친구였고 그 파트너는 마음에 들지 않아 억지 춘향식으로 나간 두번째에서 은영의 대학4년을 담아야했던 그 사람을 만났었다
은영의 파트너는 은영의 심드렁한 표정에 난감했던지 술자리로 옮기면서 그 친구를 불러내었던 것이다 한눈에 반한다고 했던가...
바로 그랬다 은영은 그래서 그 이후 마음에도 없는 파트너를 간간히 만났고 그리고 그때마다 교묘히 그 친구를 끌어내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은영에게 그럴 마음을 품을 수 없던 상황이였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떠들고 술을 마셨지만 은영의 가슴은 혼자서 속앓이을 하며그렇게 대학1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학년이 되어 그 파트너와는 연락이 끊겼고 은영은 우연히 은영의 운명이라 느낀 그 사람을 만났고, 서로 가끔 연락이나 하자면서 연락처를 주고 받았었다
그렇지만 처음 설정처럼 그 사람도 은영과 같은 마음일수는 없었다 그리고 삼학년이 되어서 서로의 마음과 생각들을 수없이 나눈 후에 그 남자도 은영을 사랑하게 되었다 은영은 그 사랑이 은영의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일거라고 굳게 믿었었다 사학년 이학기쯤에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되버린 그 남자가 은영에게 이별을 고했다 목사님이셨던 아버지와 그 시절 최초의 생명의 전화를 운영하시는 어머님이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정지었던 집안까지 아는집 동창과의 결혼을 말씀하셨고 미국가서도 계속 같이 공부하게끔 해 놓으셨다는 거였다
은영은 그 사람을 따라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종교적인 거였기에 떠나는 사랑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떠나보낸 후 은영은 오랜동안의 동면속에 들어갔다 사랑했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고 그것이 유일한 것이라는 믿음을 은영은 결코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속에 빠지고 혼자만의 시간속에서 실어증으로 육개월을 보내고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의 권유로 성당을 다니면서 차츰 그 아픔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다 은영에게 있어서 이별은 삶의 존재이유를 가져가버렸던 최초의 사건이었다 걷고 있어도 발은 땅에 닿지가 않았고 느닷없이 흐르는 황당한 눈물이 빈번했고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어둠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후로 대학을 졸업한 은영은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십수년을 남들과 다름없이, 나름대로의 행복한 가정을 꾸려 온것이다
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